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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에 ‘친국’의 상처…아픈 경험이 버티기 인사로 연결?

지난달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장관 임명장 수여식. 박근혜 대통령이 각 부처 장관들과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인사스타일의 심리학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6일 아침, 서울 송파구 오금동에 위치한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의 아파트는 적막했다. 초인종을 누르니 여동생이 나와 “일찍 나갔다… 어디 갔는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윤 후보자의 휴대전화는 이틀째 불통이었다. 전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선 윤 후보자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 무산됐다. 그는 이날 여야가 잡아놓은 청문회에 불참하며 ‘신상 발언’을 포기했다.



민주통합당 김영록 간사는 “윤 후보자는 해수부 직원들을 통솔할 능력이 없다”며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그럼에도 청와대 관계자는 6일 “기류에 변화가 없다”며 임명 강행 의사를 내비쳤다. 능력에 앞서 믿는 사람을 쓰고, 낙점하면 의혹이 아무리 제기돼도 좀체 뒤집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재확인된 사례다.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도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독특하다. 그런 심리적 배경을 박 대통령과 함께 호흡해온 친박(親朴) 정치인들에게 들어봤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박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 ‘내정하신 인사에 이런 이런 문제가 발견됐다’는 보고를 받으면 ‘확실한가요?’ ‘근거가 있나요?’하고 캐묻곤 했다. ‘물증은 없지만 소문이 안 좋고 언론도 부정적’이라고 답변해도 그런 보고를 일축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박 대통령은 젊은 나이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시절부터 모함을 당해왔다는 피해의식이 있다. 자신은 물론 자신이 낙점한 인사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까지도 자신을 겨냥한 중상모략이라 여기는 경우가 있다.”



친박 중진 인사=“그런 트라우마의 밑바닥엔 퍼스트레이디 시절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신문당한 ‘친국’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1977년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최태민이란 목사가 큰 영애(박 대통령)를 이용해 전횡을 저지르고 있다’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격노한 박 전 대통령은 박 대통령을 포함한 관련자들을 직접 청와대에 불러 ‘친국(친히 신문)’을 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친국’ 문제가 이슈화될 가능성이 보이자 친박 의원들로 구성된 경선 대응팀은 박근혜 대통령(당시 경선 후보)에게 진상을 설명해줄 것을 요청했다. 박 대통령도 적극적으로 응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에 따르면 이른바 ‘친국 현장’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중심으로 최태민 목사, 김재규 부장이 테이블 건너편에 마주 앉았다. 조사를 맡았던 중정 수사관도 동석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A4 용지 절반 크기 종이에 적힌 김 부장의 보고서를 직접 읽었다. “최태민이 1976년경 모처에서 기업인을 만나 금품을 수수했으며 같은해 정계 인사를 만나 인사청탁을 들었고….” 문장을 읽어 내려가던 박정희 대통령은 ‘이런 얘기가 사실인가?’라고 최 목사에게 캐물었다. 최 목사는 “아니다”고 부인했다.



그러자 박정희 대통령은 얼굴을 찌푸리며 김 부장에게 “보고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 확실한 증거가 있느냐”고 추궁했다. 김 부장이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고 답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화를 내며 테이블 위의 기물을 집어던졌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그 보고는 김재규의 날조였다. 그 증거로 김재규는 아버지를 사살하지 않았느냐. 그것만 봐도 그 보고는 날조요, 나에 대한 모략임이 드러난다”고 의원들에게 강조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당시 ‘사살’이란 표현을 써가며 분노감과 함께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친박 의원은 “25세의 어린 나이에 그런 모진 일을 겪으면서 ‘세상은 나를 이용해 뭔가 챙기려는 사람들의 모략이 판치는 곳’이란 생각을 하게 됐고 이게 인사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또 다른 친박 인사는 “박 대통령이 당 대표를 하던 시절부터 누가 먼저 보고하느냐가 중요했다”고 지적했다. “처음 보고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일단 인사 결정을 내린 다음엔 나중에 문제점이 제기돼도 좀체 뒤집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초동 보고의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박 대표 주변의 ‘4대 천왕’으로 불리는 소수의 측근들에게만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고위직 인사 관련 언론 보도에 피해의식

그러나 박 대통령은 문제점이 명백하게 발견되면 신속하게 해당 인사를 경질하는 과단성도 동시에 보여줬다고 친박 인사들은 덧붙인다. 한나라당 시절 공천심사위원을 맡았던 김재원 의원은 “박 대통령은 판단력이 빨라 팩트(사실)를 보고하면 즉각 조치하더라”고 전했다.



‘정치인 2세 세습 인사’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의 생각은 다른 정치인들과 뚜렷하게 다르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세였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장녀와 이방호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차녀가 서울시 의원 후보 공천을 받으려 했다. 공천심사에 참여했던 친박계 A의원은 이에 반대했다. A의원은 “내가 친박이라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소신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얼마 뒤 A의원은 한나라당 동료 의원들과 함께 박근혜 의원(당시)과 식사를 했다. 동료 의원들이 박근혜 의원에게 “A의원이 최 위원장과 이 전 총장의 딸을 공천하라는 압박에 맞서 소신 있게 막고 있다”며 A의원을 치켜세웠다. 말없이 듣던 박 의원은 A의원에게 “두 사람의 능력은 어떤가요?”라고 물었다. A의원이 “능력은 좋은 여성들이지만 아버지 후광으로 정실 공천을 시킬 수는 없기에…”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박 의원은 “능력이 있으면 누구 자식이건 써야지, 그런 이유만으로 공천을 막는 건 또 다른 의미의 차별 아닌가요”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A의원은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식은땀만 흘렸고 분위기는 싸늘해졌다고 한다. 친박 인사는 “박 대통령은 능력이 있어도 혈연·학연·지연을 고려해 인사 안배를 해야 한다는 관행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며 “비록 정적이라도 자신 같은 ‘2세 정치인’에 대해선 호감을 갖고 있거나, 이들에 대한 차별은 안 된다는 의식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위직 인사와 관련한 언론 보도에 피해의식이 많은 점도 두드러진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자신이 지명한 김용준 총리 후보자(당시)가 언론의 집요한 의혹 제기 끝에 사퇴하자 “물러나더라도 인민재판식 문제제기엔 반드시 유감을 표명하라”고 지시했다. 김 총리 후보자가 이튿날 자료 준비 등으로 입장 표명이 늦어지자 박 대통령은 김 후보자에게 연락해 “왜 입장을 내지 않느냐. 빨리 하라”고 재차 지시했다. 급해진 김 후보자는 윤창중 당시 인수위 대변인과 상의해 기자들에게 e메일로 사안별로 소명했다. 인수위 관계자들은 “어차피 물러난 분이 기자들에게 유감을 표시하면 대통령 당선인에게 부담만 더할 것”이라 우려했지만 박 대통령의 뜻이 워낙 강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주변의 인사 청탁은 원천 봉쇄하는 면모를 보인다고 친박 의원들은 입을 모은다. 의원 시절 박 대통령은 동료 의원이 식사를 제의해도 단 둘이 식사하는 자리는 일절 거절하고, 셋 이상이 식사하는 자리만 응했다고 한다. ‘독대’ 자리에서 청탁이 나올 여지를 처음부터 차단한 것이다. 주요 언론사의 대표와 껄끄러운 사이였던 동료 의원이 박 대통령에게 “그 언론사 대표와 잘 아는 사이신데 전화 한 통만 해달라”고 부탁했다가 박 대통령이 침묵하는 바람에 민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자리를 떴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분석 심리학 전문가인 이나미 박사(정신과 전문의)는 “박 대통령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최측근의 총에 숨진 아픔을 겪어 일반인에 비해 쉽게 타인을 믿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러다 보니 깨끗하고 관리가 잘된 소수 측근들의 울타리에 갇힐 가능성이 있다. 반면 ‘수첩 인사’는 박 대통령이 타인의 말을 경청해 인사에 반영한다는 의미여서 오히려 좋은 덕성이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강찬호·류정화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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