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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를 가다 <10> 다울라기리

네팔 중서부에 자리 잡은 다울라기리(Dhaulagiri·8167m)는 히말라야 8000m 봉우리 중에서 가장 먼저 유럽 대륙에 알려졌다. 인도 평원에서 바라보면 우뚝 솟은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특히 눈으로 뒤덮인 정상부의 석회암 봉우리는 흰 망토를 걸친 코끼리의 형상을 하고 있다. 사실 다울라기리는 ‘트레킹 피크’로는 인기가 없다. 찾는 사람이 없어 숙박시설 등이 부족하며 길 또한 험하다. 그런 점 때문에 고생을 사서 하고 싶은 트레커들이 더러 찾기도 한다.



빙퇴석 덮힌 캠프 가는 길, 10년차 가이드도 겁을 냈다

헬리콥터를 타고 안나푸르나(8091m)로 이동하는 중에 촬영한 다울라기리(8167m) 남면. 육중한 석회암 덩어리로 정상으로 가는 모든 루트가 험난하다.


한때는 세계 최고의 산으로 군림



1809년, 다울라기리를 측량한 영국인 웹 소령은 산의 높이가 ‘8187m’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믿지 않았다. 그때까지 히말라야 설산보다 신대륙을 탐낸 유럽인들은 남미 안데스산맥의 침보라소(6310m)가 제일 높다고 믿고 있었다. 이후 계속된 인도 측량국에 의해 히말라야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었다. 다울라기리보다 더 높은 칸첸중가(8586m)의 존재가 드러나기까지 약 30년 동안 이 봉우리는 세계 최고의 산으로 군림했다.



1953년, 스위스원정대가 다울라기리 ‘정복’을 위해 서쪽으로 접근했다. 3년 전 이 산에 최초로 도전장을 던졌지만 실패한 프랑스원정대가 택한 북쪽보다 더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북벽은 춥고 경사가 심했다. 유럽에서 배를 타고 인도 델리로 들어온 이들은 이후 경비행기와 기차를 타고 네팔 국경까지 접근한 뒤 걸어서 포카라(Pokhara·830m)까지 이동했다. 원정대는 근래 트레커들로 북적이는 포카라 서쪽 베니(Beni·830m)를 거쳐 므약디(Myagdi) 계곡에 진입한 뒤 무디(Mudi·1720m) 마을에서 현지 짐꾼을 고용해 카라반을 시작했다. 절벽을 깎아 만든 협로를 지나 위험천만한 통나무다리를 건너 밀림지대를 뚫고 나가야만 했다. 꼬막 16일 걸려 해발 3500m지점에 도달, 이후 본격적인 등반에 나섰다. 등반은 결국 실패했으나 다울라기리 탐사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다울라기리 산 아래에 사는 머거르족 아이들.
지난해 12월, 우리 일행은 스위스원정대의 카라반 루트를 따라 다울라기리로 들어갔다. 포카라에서 베니까지는 수시로 버스가 다닌다. 베니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다르방(Darbang·1110m)까지 올라갔다. 예전에는 이곳이 트레킹 시작점이었지만 최근 불도저와 굴착기를 이용해 하천을 밀고 절벽을 깎아 찻길을 만들었다. 다르방 버스정류장에는 인도산 스쿨버스가 여러 대 늘어서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 한 대를 골라잡아 전세를 냈다. 8000루피(약 10만원)를 내고 렌트했지만 버스는 손님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섰다. 사람은 물론 닭과 염소까지 실었다. 염소는 힌두사원의 제단에 바쳐질 제수용이었다.



다르방에서 다라파니(Dharapani·1560m)까지는 약 8㎞, 버스 덕분에 하루 발품을 벌었다. 반면 히말라야에서 걷는 길이 짧아지고 있다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했다. 해발 1560m, 아직 히말라야 기운을 느낄 수는 없었다. 서울에서 추운 겨울을 보낸 우리에게 아열대지역의 12월 날씨는 봄날 같았다. 한낮, 긴팔보다는 반팔 차림이 적당할 정도로 푸근했다.



계곡물 만나는 곳은 거머리 천지



다라파니부터 지루한 걸음이 시작됐다. 이곳까지 접근은 용이했지만 베이스캠프(4750m)까지 가는 여정은 녹록지 않다. 현지 가이드 크리슈나는 “다울라기리를 찾는 트레커는 일 년에 몇 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네팔에서 10 년가량 가이드를 한 그도 이곳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다 보니 숙박 등 여행 인프라가 태부족이었다.



1 절벽을 깎아 만든 아슬아슬한 길. 2 맨발로 생활하는 현지 주민. 하룻밤을 묵는 동안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3 400~500kg의 쇠줄을 끌고가는 사람들.


다라파니에서 서너 시간을 올라가면 시방(Sibang·1780m)이다. 언덕에 서면 다울라기리의 끝자락이 살짝 보이는 마을이다. 체트리(Chetri)족, 머거르(Mugur)족 등 다양한 종족이 살고 있다. 잠잘 곳을 찾지 못해 헤매던 중 산에서 땔나무를 지고 오는 로리타 체트리(32)를 만났다. 일행과 마주치자마자 “오늘 어디서 잘 거냐?”며 물은 뒤 이내 우리 일행을 자기 집으로 몰아넣었다. 눈치 빠른 아낙은 방 하나에 300루피(약 4000원) 하는 ‘다울라기리호텔’의 안주인이었다.



로리타가 저녁밥을 지을 때쯤, 마을 초등학교 선생님 사와르 체트리(31)가 찾아왔다. 체트리는 왕정 시절, 네팔의 지배계층이었다. 같은 종족이어서인지 자주 어울린다고 했다. 학교 선생님과 호텔 주인. 둘은 마주 앉아 궁벽한 오지에서 지내야 하는 처지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대뜸 그들에게 “다울라기리를 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물었지만 대답은 기대 이하였다. “그런 생각해 본 적 없는데….”



하루를 더 걸어 무디, 또 하루를 걸어 바가르(Bagar·2080m)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과 마을 사이는 약 10~15㎞. 중간에 계곡이 합수되는 ‘주케바니’라는 지점이 있는데, ‘거머리 물’이라는 뜻이란다. 히말라야 거머리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쥐도 새도 모르게 피를 빤다. 간혹 습한 곳에 털썩 주저앉아 일어나 보면 발목에 선혈이 낭자한 경우가 있다. 거머리 물이란 말을 듣고 나니 아무래도 발목에 신경이 쓰였다.



무디·바가르에서는 게스트하우스가 문을 닫아 민가의 처마 밑에서 밥을 해 먹고 야영을 했다. 바가르에서 묵은 노부부의 집은 므약디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다. 본인 나이를 모르는, 아니 어떤 것을 물어도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는 노인은 맨발로 신우대 밭을 헤치고 다니며 땔나무를 했다. 시커멓고 단단한 발바닥은 신발이 필요 없어 보였다.



먼발치에서만 바라본 ‘눈의 거처’



깎아지른 다울라기리 서벽 아래 이탈리안 베이스캠프. 베이스캠프(4750m)까지는 이틀을 더 가야 했지만,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트레킹 4일째 되는 날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대나무 두께의 쇠줄을 끌고 가는 일단의 무리에게 길을 내줬다. 약 30m의 쇠줄은 족히400~500㎏은 될 것 같았다. 9명이 차례로 늘어서 양 어깨에 지고 질서정연하게 산 위로 올리고 있었다. 수송대는 4분대를 이뤘다. 알고 보니 시방에서 꼬박 하루거리에 있는 도반 카르카(Dorban Kharka·2520m)의 계곡에 다리를 놓기 위해 자재를 운반하는 중이었다.



분대원 중에는 아낙이 2명 끼어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사내들에 비해 기력이 달렸다. 거지 차림에 머리는 삘기처럼 산발을 하고 쇠줄을 끄는 아낙의 표정엔 오만 가지 고통이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시포스가 떠올랐다. 언덕 위로 돌을 굴려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 시시포스. 신화 속 시시포스가 눈앞에 있었다. 모진 광경을 바라보는 마음이 영 불편해 멀리서 지켜봤다. 카메라를 갖다대기가 민망했다.



도반 카르카엔 오두막뿐이다. 여기부터 진정한 오지다. 이곳에서 이틀을 더 걸으면 ‘이탈리안 베이스캠프(3660m)’가 나온다. 다울라기리에 오르는 전초기지다. 이후로는 빙퇴석 눈으로 뒤덮인 빙하가 시작된다. 빙하를 따라 대여섯 시간은 걸어야 비로소 진정한 베이스캠프에 당도할 수 있다.



우리 일행은 이탈리안 베이스캠프에서 멈춰 섰다. 현지 가이드와 짐꾼들 모두 “겨울에는 눈 때문에 길이 막힌다”고 손사래를 쳤다. 다행히 오두막이 한 채 있어 칼바람을 피해 야영할 수 있었다.



이튿날 도망치듯 산을 내려왔다. 등 뒤로 흰 눈을 가득 인 다울라기리의 서벽이 서 있었다. 다울리기리는 ‘희다’는 뜻의 ‘다바라(Dhavala)’와 ‘산’이라는 뜻의 ‘기리(Giri)’가 합쳐진 말이다. 눈의 거처라는 뜻의 히말라야와 같은 의미다.



●다울라기리 트레킹 정보



카트만두에서 차를 타고 갈 수도 있으며 포카라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뒤 버스를 타고 베니·다르방을 거쳐 다라파니까지 갈 수 있다. 다라파니에서 이탈리안 베이스캠프까지는 6일 정도 걸린다. 간혹 모험을 즐기는 트레커들은 다울라기리 서쪽으로
진입해 북쪽 ‘프렌치 패스(5360m)’를 넘기도 한다. 패스를 넘어가면 안나푸르나 북쪽이다. 다울라기리 트레킹 적기는 봄·가을, 인적이 드물어 혼자는 위험하다. 국내 ‘M투어’에서 여행상품을 팔고 있다. 02-773-5950.



다울라기리(네팔)=김영주 기자 사진=이창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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