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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중국이 품은 아프리카 야망

지난 14일 취임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첫 해외순방은 상징적이다. 러시아를 거쳐 아프리카의 탄자니아·남아프리카공화국·콩고민주공화국을 3월 22~30일 순방했다.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정상회의에도 참석했다. 러시아를 찾아 미국에 대항하는 전선을 다진 뒤 아프리카를 놓고 미국과 경쟁하는 일정이다. 주요 2개국(G2)이 된 중국의 ‘항미’ 또는 ‘극미’ 행보라고 할 수 있다. 시 주석 시대 중국의 대외 정책 지향점이 읽힌다.



특히 탄자니아 방문은 역사적·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세계전략과 맞물린다. 중국의 과거 영광이 묻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해안의 중세 무역항에선 물론 내륙의 사파리에서도 중국 명나라 때 도자기 파편이 흔하다. 이 빠진 명나라 도자기를 여태 생활용품으로 쓰는 사파리 부족도 있다. 유럽과 중국 간의 도자기 무역이 남긴 유물일 수도 있겠지만 명나라 때 환관 출신 정화(1371~1433)의 대항해가 남긴 흔적일 가능성도 크다. 정화는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대함대를 이끌고 동남아와 인도·아라비아를 거쳐 동아프리카까지 항해했다.



정화 함대는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를 거쳐 1414년 탄자니아 바로 북쪽 케냐의 중세 무역항 말린디에 기항했다. 아랍과 아프리카가 상아·향료·노예 등을 교역하던 항구다. 말린디의 군주는 기린과 함께 부하를 정화 함대에 태워 보냈다. 중국 기록에는 마림지(麻林地) 또는 마림적(馬林迪)으로 적혀 있다.



사실 동아프리카 해안의 케냐와 그 남쪽의 탄자니아·모잠비크는 같은 스와힐리어를 쓰는 동일 언어·문화권으로 제국주의 시대 이전에는 한 나라나 다름없었다. 스와힐리 해안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분할 점령한 영국(케냐·잔지바르)·독일(탕가니카)·포르투갈(모잠비크)에 의해 여러 나라로 갈리는 운명을 겪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령 동아프리카 식민지는 갈기갈기 찢겨 탕가니카는 대부분 영국의 보호령으로, 그 남부는 포르투갈령 모잠비크로, 서부는 벨기에령 콩고로 각각 전리품으로 넘어갔다. 벨기에령으로 넘어간 지역은 나중에 르완다와 부룬디로 독립했다. 탄자니아는 독일 식민지였던 탕가니카와 영국 식민지였던 잔지바르 섬이 합쳐 생긴 나라다. 주민들의 정체성과는 무관하게 서양세력의 편의에 따라 나라가 나뉜 것이다.



케냐의 말린디는 1498년 포르투갈의 항해가 바스쿠 다 가마의 방문을 받았다. 유럽에서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까지 항해한 최초의 유럽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개척한 이 항로는 이후 서양 세력의 동양 진출의 통로 역할을 했다. 동서양의 항해가가 84년의 시차를 두고 동아프리카의 같은 항구를 찾았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정화 이후 해상무역을 중단하고 바다로 나가는 문을 닫아버린 중국과, 줄기차게 해상 무역을 추구한 서양은 그 뒤 서로 상반된 운명을 겪었다. 현대 중국이 특히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19세기 서양 제국주의의 침탈을 겪었다.



따라서 시 주석의 탄자니아 방문은 역사적이다. 과거 정화의 대항해로 글로벌 제국에 다가갔던 영광을 21세기에 재현하고 싶은 중국의 야망이 묻어난다. 다시는 외세에 밀리지 않겠다는 중화민족의 다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이 과연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아프리카의 친구로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시 주석 시대에 중국이 곧 부닥칠 과제가 될 것이다.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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