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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처조카 서울 망명…北 발칵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 이한영(사진)씨가 1982년 한국으로 망명하는 과정에서 펼쳐졌던 서울 호송작전의 전모가 정부 외교문서에 의해 31년 만에 드러났다. 이씨는 김정일의 첫 번째 동거녀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의 아들로, 97년 북한 공작원에 의해 경기도 분당에서 피격당해 숨진 비운의 인물이다. 31일 공개된 당시 외교문건 ‘북한 공작원 김영철 망명사건’에 따르면 이 사건은 ‘몽블랑’이란 암호명으로 불렸다.



작전 전모 31년 만에 공개
당시 ‘김영철’ 가명 사용
정부 처음엔 신원 모른 듯
북한 “가출 외교관 찾는다”

 본명이 이일남인 이씨는 김영철이란 가명으로 82년 9월 28일 오전 9시50분(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주재 한국대표부에 망명을 요청했다.



 서울 외무부(현 외교부)에 ‘몽블랑 보고’란 비밀 전문(電文)이 타전된 건 약 9시간 뒤인 82년 9월 28일 오후 7시(현지시간). 제네바 대표부는 전문에서 “28일 오전 9시50분 북괴 공작원 김영철로부터 전화로 아국 귀순 요청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전문은 “김영철은 제네바대 병설 어학속성과 연수를 위해 체류 중인 북한 당 연락부 무소속 공작원”이라며 “이민영·이일남 명의의 여권도 소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가 평양 로열패밀리란 사실을 처음에는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씨는 이후 프랑스→벨기에→독일→필리핀→대만 등 5개국을 거쳐 10월 1일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서울 보고 후 제네바 대표부 담당 공사와 참사관 등 6명은 이씨를 데리고 자동차 2대에 나눠 탄 채 국경을 넘어 가장 가까운 국제공항이 있는 프랑스 리옹으로 향했다. 대표부는 ‘주재국(스위스) 밖으로 긴급 호송한 배경’을 묻는 외무장관의 물음에 “김영철이 주재국을 통한 귀순을 극력 반대했고 (북측 귀가 점검 시간인) 13시 전에 프랑스로 출국하기를 강력히 희망했다”고 답신했다.



 이에 외무부 본부는 “제3국의 아국 공관에 망명을 요청한 것으로 해서 김영철을 합법적으로 서울로 호송하는 방법을 검토하라”고 훈령을 내렸다. 이씨 일행은 하루 뒤인 29일 오전 4시50분(현지시간) 파리의 한국대사관에 도착해 가명의 여행증명서를 발급받고 10분 만에 공관을 떠났다. 그러곤 당일 오전 10시30분 벨기에 한국대사관에 도착했다.



 외무부는 벨기에 정부에 망명을 요청하려 했지만, 벨기에 주재 대사가 본국의 전문이 도착하기 전 이씨 일행을 필리핀을 통해 서울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씨 일행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30일 오후 5시10분 마닐라에 도착한 뒤 대만을 경유해 10월 1일 오후 4시30분 대한항공 KE616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제네바 북한 대표부는 발칵 뒤집혔다. 10월 7일 신현림 북한 공사는 우리 측에 “28일 가출해 소식이 없는 19세 북한 외교관 아이를 찾는 데 도와 달라. 처음에는 남한 측이 장난놀음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에 도착해 있던 ‘김영철’은 이한영으로 개명한 상태였다. 한영(韓永)은 ‘한국에 영원히 살고 싶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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