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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최악의 시나리오를 비켜갈 예방외교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라는 시구처럼 4월로 들어서는데도 우리가 당면한 도전이나 위기는 겨울추위처럼 준엄하기만 하다. 여전히 꼬여 있는 국내의 답답한 상황들은 차치하고, 북한 핵으로 유발된 한반도의 전운은 계속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일본재건이니셔티브재단이 며칠 전 출간한 ‘일본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보고서에서도 북한 핵에서 비롯된 동아시아 핵 도미노의 위협을 극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는 비단 일본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그리고 미국에까지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어 국제사회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책임은 남북으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 민족에 더해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외교정책 한계와 실패를 지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세계 최대강국으로 자리 잡은 미국이 유럽 우선의 전통과 아랍-이스라엘 대결을 포함한 중동사태의 시급성에 밀려 외교정책 우선순위를 거의 자동적으로 결정해온 결과 한반도 문제가 외교현안의 주안점이 될 수 없었다. 결국 한반도 문제의 본질과 북한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미국의 이해부족, 무성의한 대처가 오늘의 위기를 키워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이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더해 워싱턴도 불바다에 휩쓸릴 수 있다는 협박으로 다소 바뀌기 시작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생산을 이대로 방치하고 간다면 230년의 미국외교사에 최대 실패로 기록될 것”이라는 하버드대학 그레이엄 앨리슨(Allison) 교수의 10년 전 경고를 적극 수용했다면 오늘의 파국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북한의 핵무장을 저지하려는 국제적 노력이 실패한 데는 미국의 태만 못지않게 중국정책의 모호함도 크게 기여했다. 이미 초강대국으로 발전한 중국이 북한을 한·미 동맹의 압력을 차단하는 이른바 완충국가로 지목했던 냉전시대의 정책을 한·중 관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진전되었음에도 20년을 그대로 견지해온 것은 시대착오적인 안일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더해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가 중국을 유일 핵보유국으로 수용하는 상황에서 북한 핵무장을 적극 저지하지 않음으로써 핵확산 도미노 현상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정왕(Zheng Wang) 교수가 지적했듯이 중국은 전통과 관행에 안주한 나머지 시대의 추이에 대처하는 명확한 외교정책을 수립하지 못한 채 대북관계, 특히 북핵 문제에 임해 왔는지도 모른다.



 늦게나마 미국과 중국이 나름대로 대북한 핵정책의 한계와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타개책을 모색하려는 듯 보여 다행이다.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평화적 해결책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설득, 압력, 타협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외교의 부활을 추진하는 길밖에 없다. 40년 전 키신저-저우언라이 비밀협상으로 냉전의 판도가 바뀐 이후 미·중 간에 괄목할 만한 외교노력이 없었던 것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독일 문제의 해결이 유럽의 평화를 가져왔듯이 아시아의 평화로운 발전을 위해서는 북한 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공동의 인식을 다져야 되겠다.



 그러한 외교적 돌파구를 뚫기 위해서는 관련국들, 특히 미국과 중국이 북한체제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전형적 전체주의국가나 공산주의국가가 아닌 특수한 예외국가다. 그렇기에 국제관례와는 동떨어진 과격하고 기형적인 북한의 행동양태는 파국을 자초하는 병리적 현상으로 치부되어 정상적 교섭이나 타협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판단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60여 년에 걸친 북한체제의 생존과정을 살펴보면 바로 그 생존을 위해서는 냉정한 이해타산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실리추구에 과감했음을 알 수 있다. 생존을 위한 협상의 문조차 닫아버리는 자살지향적 체제는 아닌 것이 북한이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사태가 위험수위를 넘어설 때가 바로 미국과 중국이 외교적 해결책을 고안해 강력히 추진해야 할 시점이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



 마침 한반도 문제의 관련 당사국인 6자 모두에서 최고지도자가 새롭게 선출되거나 재선에 성공해 새 정상 팀이 형성된 형국이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를 담보하는 데는 정상외교가 최선의 지름길이란 처방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음 달로 다가온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가 그러한 예방외교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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