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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동 골목, 30년대 풍각소리 흘러퍼지니 …

지난달 29일 열린 ‘제비다방에 샴팡구락부를 허하라’ 개막식에서 사진가 김용호(왼쪽에서 둘째)씨가 “최고의 모던보이 이상을 위하여”라며 건배했다. [사진 도프 앤 컴퍼니]


이상
봄인데다 밤이다. 봄밤이 벌렁벌렁한다. 지난달 29일 늦은 저녁, 서울 서촌 골목길이 80여 년 전 일제강점기 경성의 밤거리로 둔갑했다.

‘제비다방’ 프로젝트 화제
시인 이상 운영한 카페 재연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전위적 문학 정신 되새겨



 ‘모던 보이’와 ‘모던 걸’로 치장한 선남선녀가 인력거를 타고 속속 도착하니 “띵까띵까 동드레 당당 으아으아 아싸아싸” 흥을 돋우는 음악소리가 드높아진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저승에서 돌아온 기인(奇人) 이상(李箱, 1910~37)의 목소리가 목덜미를 서늘하게 어루만지는 듯 냉기가 흐른다.



 1930년대 소설 ‘날개’ ‘종생기’ ‘환시기’와 시 ‘오감도’ 등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글쓰기로 한국 현대 문학사를 수십 년 앞당긴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본명 김해경). 그가 살았던 서울 통인동 154-10번지가 그 유쾌한 정신을 돌이켜보고 싶은 이들 손에 ‘제비다방’으로 둔갑했다.



 제비다방은 이상이 기생이자 연인이었던 금홍과 1933년 서울 종로에 개업했던 카페 이름. 당시 이상은 “나는 죽지 못하는 실망과 살지 못하는 복수, 이 속에서 호흡을 계속할 것이다(…) 무서운 기록이다. 펜은 나의 최후의 칼이다”라고 소설 ‘십이월 십이 일’에 썼을 만큼 운명적인 글쓰기에 휘둘리고 있던 때다. 제비다방은 그런 그에게 글의 자양분이 되는 공간이자 무대였다.



 이 공간의 글쓰기(스페이스 텔링)를 대리한 이는 사진가 김용호(52)씨. ‘제비다방에 샴팡구락부(샴페인 클럽)를 허하라’는 구호성 제목을 내걸고 이상의 드높았던 이상을 추모하며 그를 따르자고 부추긴다.



 “경성 같습네까? 즐기시라요.”



 붉은 비로도 막이 ‘짜잔’ 옆으로 젖혀지자 낭창낭창한 목소리의 가수 최은진씨가 눈웃음을 치며 노래를 시작한다. “오빠는 풍각(風角)쟁이야, 오빠는 심술쟁이야, 난 몰라, 깍쟁이야 트집쟁이야 주정뱅이야~.”



 아코디언 소리가 봄밤 하늘로 차오르자 발 디딜 틈 없이 제비 다방을 꽉 채운 200여 명 손님들이 “금홍이 나와라” 소리치며 샴팡 잔을 높이 들었다. 식민지 지식인으로 날개를 꺾여버렸던 이상의 혼은 김용호씨의 무성영화 속에서 다시 돋는 날개로 살아 돌아온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동시대의 소설가였던 박태원(1909~86)이 1939년 ‘조선중앙일보’에 쓴 글을 보면 제비다방은 파리를 날리던 한적한 찻집이었다. 가배(커피)와 홍차, 다른 곳에서는 먹어볼래야 볼 수가 없는 인삼차라는 것을 팔았는데 대체 언제 올지도 알 수 없는 손님을 기다리는 건 이상과 금홍이 아니라 수영이란 어린 심부름꾼이었다.



 이번 행사에서도 커피와 홍차, 인삼차를 내놓았다. 박태원이 쓴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이상이 다녔던 장소들로 각색한 경성탐방지도와 골목 언저리를 안내하는 지도도 제공한다.



 이상은 봄이 오지 않는 조국의 봄에 언제나 봄기운 서려야 돌아오던 제비란 이름을 붙여 봄을 미리 데려다 놓았다. 제비다방은 80년 전 그의 마음과 통정하는 곳이다. 골목길 돌아설 때에 얼핏 그의 그림자가 스친다.



 사진전, 영화상영은 14일까지. 찻값 등 수익금은 이상의 집을 공동운영하는 문화유산국민신탁과 아름지기가 운영기금으로 쓴다. 02-741-8374.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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