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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순화 교수와 떠나는 천안이야기 여행 ⑦

① 따뜻한 봄 햇살에 은석사를 찾는 등산객의 발길이 이어지고있다.
이렇게 여행을 떠나보니 천안에는 아름다운 산도 고즈넉한 산사도 참 많은 지역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각 산마다 사람을 맞이하는 모습은 달라도 산이 주는 쾌적함은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인 듯 하다. 또 사찰 역시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고 심신을 편히 쉬게 한다는 점에서 사람의 발길을 이끄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이번 호에서는 은석산에 자리한 은석사와 봉선홍경사로 떠나보자.

정리=최진섭 기자 사진·도움말=조영회 기자, 백순화 백석대 교수

銀石山 은석산

은석산은 높이가 455m로 북면 은지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병천면에 경계해 있는 산이다. 은석산에는 신라 천년사찰 은석사와 박문수어사 묘가 있다. 산행은 고령 박씨 재실에서 시작하면 편하게 올라 갈수 있다. 등산이 어려우면 병천에서 자동차로 은석사까지 진입할 수 있는데 포장·비포장 길을 번갈아 약 3.3㎞ 달려가야 한다. 은석산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한번 다녀간 등산객들은 몇 번이고 다시 찾을 정도로 수종이 다양하고 야생화가 많아 매우 예쁜 산이다.

② 박문수의 묘. ③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④ 천안 봉선홍경사 석탑재.


銀石寺 은석사

은석사는 은석산 기슭에 있는 신라 천년사찰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조선 영조 때의 암행어사 박문수의 묘를 지키는 일도 사찰에서 담당해왔다고 전한다.

절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하는 은석사와 동일한 사찰일 가능성이 높으며 초석 및 와편으로 보아 1530년 이전에 건립한 사찰로 추정 된다고 적혀있다. 창건할 당시에는 큰 절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퇴락해 옛 모습은 사라지고 그 규모도 아주 작다. 한때 화재가 나서 본래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고 불타고 남은 흔적은 팽나무 아래 있다고 한다. 해질녘 우물가에서 시래기를 씻던 보살님이 은석사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보광전 곁을 지키고 있는 수령 550년 된 팽나무 아래로 초석과 와편이 웅장했던 은석사의 옛 모습을 말해주고 있다. 보광전에는 충남 유형문화제 제 179호인 목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고 불상은 보존상태도 양호해 조선후기 불교 미술사에 귀중한 연구 자료다. 보광전 섬들에 누가 심었는지 겹 봉선화가 옹기종기 앉아있다. 삼신각으로 오르는 고갯길엔 물봉선화가 군락지를 이루고 감로수 우물가로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객들을 반겨주고 있다. 다른 절에 비해 꽃이 많아 정겹다.

천안 관내에는 전통사찰이 네 곳이 있는데 광덕사, 성불사, 만일사와 함께 은석사가 여기에 속한다. 옛날부터 시인, 묵객이 많이 와서 시와 문장을 연마했던 사찰로 유명하다. 가을 녘 햇볕이 저만치 비켜가고 있는 시간 탓일까? 등산객들이 떠난 산 속엔 어둠이 밀려오고 적막감이 흐르는 경내는 눈시울을 적실 정도로 고요하다.

奉先弘慶寺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국보 제7호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성환읍 대홍리에 있다. 1번 국도 상에 위치하는 이곳을 옛날에도 왕래하는 이가 많았던가 보다. 봉선홍경사는 고려 현종 12년에 창건한 절이다. ‘봉선’은 법화경의 묘설을 보고 깊이 느끼어 절을 짓기 시작한 고려 안종이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서거하자 아들인 현종이 절을 완성한 후 아버지의 뜻을 받든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현재 절터에는 절의 창건에 관한 기록을 담은 갈기비만 남아 있다.

 이곳은 호남과 한양을 잇는 갈래 길로 교통의 요지였으나 날이 어두워지면 주막이 없어 통행이 어려웠다. 왜냐하면 갈대가 무성한 못이 있고 사람이 사는 곳과 떨어져 있어 강도가 자주 출몰해 행인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이에 고려 현종은 창사를 명하고 병부상서 강민첨을 감독으로 현종 12년에 불경도 전파할 겸 절 200여 칸을 완공하고 절의 서쪽에 광연통화원이라는 숙소 80칸을 건립해 행인의 편리를 도모했다고 한다. 그 후 고려 명종 때 망이·망소이의 난으로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갈기비만 남았다.

비신에는 봉선홍경사갈기라 횡서했으며 비문은 해서 각자 했다. 해동공자로 추앙 받았던 최충이 비문을 지었고 글씨는 고려 해서체의 제1인자 백현례가 썼다.

비는 거북모양의 받침인 귀부와 이무기를 조각한 덮개돌인 이수를 갖추고 있다. 귀부는 지대석과 하나의 돌로 되어있고 어룡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치며 카리스마도 느껴진다. 전체 높이는 2.8m로 받침대의 연꽃무늬와 비신 옆면의 당초무늬가 매우 아름다워 고려시대 조각미술의 완성도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 생각된다.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절을 세운 뒤 5년이 지난 고려 현종 17년에 건립한 것이다.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일반적인 석비보다 규모가 작은 것을 말하는데 대개는 머릿돌이나 지붕돌을 따로 얹지 않고 비신의 끝부분을 둥글게 처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비는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을 모두 갖추고 있어 석비의 형식과 다르지 않다. 천안삼거리 주막처럼 각지에서 모여든 객들이 왕래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세월의 흐름을 거슬러 옛 선조들이 왕래하던 곳을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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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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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