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시인과 떠나는 사찰기행 ⑧ 문태준 시인의 경남 남해 용문사

1 봄을 맞은 남녘의 절 경내는 만개한 매화 향으로 은은했다. 남해 용문사는 봄날 나들이 가기에 좋은 사찰이다.


남녘이 봄빛으로 활짝 열렸다. 몇 년 만에 용문사를 찾아갔다. 가는 길 곳곳에 봄이 섰다. 공중은 연하고 부드럽고 물렁물렁했다. 들녘에는 농부의 일이 바빠지고 있었다. 노구의 농부들이 나와 밭갈이를 하고 있었다. 농부를 보고 있자니 “수행자는 마음밭을 가는 농부”라고 했던 부처의 말이 생각났다. 농부가 둑을 만들고, 흙을 부드럽게 하고, 씨앗을 뿌리고, 물을 붓고, 노고로써 씨앗을 생장시키고, 열매를 얻는 일은 수행자가 일일(日日)을 가혹하게 정진하여 불과(佛果)를 얻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차창 왼편으로는 멀리, 그리고 가까이 쪽빛 바다가 피륙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섬들. 꼿꼿하고, 예속되지 아니하고 의존하지 아니하는 섬들. 섬들은 ‘눈 뜬 사람’, 각자(覺者)처럼 보였다. 수행자는 자신의 섬에 머물고, 자신의 의지처에 머물고, 법의 섬에 머문다고 했다. 수행자는 고통의 바다에 뜬 섬과 같다고 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이 세상은 불안정하고, 영원하지 않으며, 피난처와 보호자가 없고, 나의 것이 없고, 불만족스럽다. 그리하여 수행자는 세속의 애욕을 떠나 저 독립한 섬들처럼 출가해 살아가는 것이다.

앵강만 바다를 내려놓고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호구산으로 가는 길이다. 등 뒤에 있는 바다가 조금씩 산림에 가려지고 가려져 손바닥만 해졌을 때 용문사가 눈앞에 나타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좌우로 산의 능선이 꿈틀꿈틀 내려오며 용문사 대웅전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지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용문사 절터가 이 산세의 중핵(中核) 자리에 잘 앉았다는 느낌을 단박에 받을 것이다. 물소리도 좋고, 바람도 좋고, 볕도 좋다. 마음이 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많은 절을 다녔지만 이곳 용문사에 올 적에 유독 느끼게 되는 것은 산새 우는 소리가 유난히 맑다는 것이다. 이 느낌을 나는 졸시 ‘바람의 일’에 옮겨 쓴 바 있다.

“남해 용문사/마루 끝에서 듣는/새 우는 소리//맑고 참 곱다//바람이 빨라 그렇단다//손 덜 타게/얼른얼른/바람이 건네주느니//종심(從心)이려니//바람의 이 일을/나도 하고자”

2 용문사 명부전에 모셔진 지장보살. 원효대사가 조성했다고 전해진다.3 용문사 뒤 차밭. 4 용문사 오른쪽을 감싸고 있는 노적봉에 오르면 남해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5 용문사 뒤 자생식물단지를 걷고 있는 성전 스님과 문태준 시인. 6 용문사 뒤에 피어난 얼레지.


용문사 주지 성전 스님께 삼배를 올리고, 막 우려 내주시는 차를 받아 마주 앉았다. 스님은 용문사에서 산 지 7년이 지났다고 했다. 스님은 불교계의 대표적 문장가로도 명망이 높으신 분이다. 여러 권의 산문집을 펴내 독자들의 많은 존경을 받아오고 있다. 방송도 오래 해오셨다. 다시 와도 용문사는 여전히 조용하고 편안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스님께서 웃으시면서 말을 받으셨다.

“정진하고 안거하기 좋은 곳이에요. 볕이 따뜻하니 양감(量感)이 있어요. 이곳에 살고 있으면 묻혀 있는 느낌, 은거하는 느낌이 들지요. 산만한 마음이 사라지는 정적인 공간이랄까요. 오목하니 폭 파여 알을 품고 있는 형세지요. 한 송이 연꽃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물이 끊어진 적이 없어요. 아무리 가물어도.”

용문사는 고찰이다. 신라 문무왕 3년(서기 663년)에 원효 스님께서 금산에 건립한 보광사를 전신으로 하고 있으니 그 세월이 아득하게 오래다. 조선 숙종 때는 왕실의 보호 사찰이었다.

“장구한 세월 동안 수행의 기운이 응축된 곳, 고찰의 매력이 바로 그것일 거예요. 그러나 그보다 그 산과 절이 명산이고 명찰인 것은 그 산과 절에 누가 사느냐에 좌우되겠지요. 깃들어 사는 사람이 청정하게 수행하고 바르게 사는 게 중요해요.”

나는 차를 마시며 바깥 절 마당으로 잠깐 시선을 옮겼다. 매화 한 그루가 활짝 꽃을 피우고 섰다. “저 매화나무는 꽤 수령이 많겠는데요?” 내가 돌연 여쭈었다. “사람 나이로 치면 이백 살도 더 되었을까요? 그러나 어디 매화가 나이가 있나요?”

스님이 환하게 웃으셨다. 나도 따라 웃었다. 스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저 매화나무가 자고 나니 활짝 피어 있는 거예요. 확 터지듯이.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아, 저 매화나무 속에 저렇게 많은 꽃이 들어 있는 줄 그동안은 몰랐던 거예요. 우린 모르는 게 참 많아요. 하물며 범부 중생 모두에게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성품이 들어 있는 것을 알기는 얼마나 어렵겠어요.”

불교에서는 꽃을 만행화라고 부른다. 만 가지의 선행을 쌓아야 하나의 꽃이 피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봄꽃이 용문사 도량에 가득 피었다. 이 매화가 지면 명자꽃이 피고, 다시 산벚꽃이 핀다고 하신다.

성전 스님께 용문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대해 여쭸다. 용문사 템플스테이는 고되지 않다. 대신 특별한 프로그램이 참 많다. 해 뜨는 아침 넓고 평평한 큰 돌 위에서의 명상, 작가를 초청해 함께 작품을 낭송하는 ‘산사에서 작가를 만나다’, 달빛 아래에서의 원광(圓光) 명상, 찻잎 따기와 다담(茶談), 바닷길 걷기와 몽돌 바닷가에서의 작은 법회 등등. 특히 용문사 앞 바닷가에서의 명상은 불자들의 호응이 드높다.

“바닷가를 걸을 때는 바다의 이야기를 듣는 거예요. 해조음(海潮音)을. 귀를 세워 들으면 금세 마음이 평안해져요. 해조음은 비워진 소리잖아요. 쏴아, 솨아 밀려왔다 밀려나가는 남해의 순한 물결소리를 듣는 거예요.”

남해 지역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템플스테이 참가가 몰려들고 있고, 일본 관광객들의 템플스테이 참가도 최근 부쩍 늘었다. 용문사에서는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에게 어떤 것을 당부할까. 성전 스님의 말씀은 의외로 간단했다.

“말도 하지 말고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해요. 말도 내려놓고 마음도 내려놓는 거지요. 느낌에서 갈애(渴愛)로 넘어가지 않으면 그 사람은 깨달은 사람이에요. 윤회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거지요. 절에 온 뜻은 그런 훈련을 하는 거예요.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지 않는 것. 절에 오면 놓는 연습을 하도록 해요. 여긴 아무것도 없어요. 연관된 것이 없잖아요. 산이 섰고 물이 흐를 뿐. 여기서는 그냥 존재하면 될 뿐이에요.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한 불자가 제게 ‘스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해 대중이 한바탕 웃은 적이 있어요. 그 말이 맞는 말이에요. 한 달에 한 번은 절에 와서 다시 공부를 해야 해요. 자연이 주는 놀라운 힘이 또 있잖아요. 아름다운 힘이지요. 죽고자 하는 마음도 싹 사라져요. 번뇌를 씻어내고 화평을 얻게 되지요. 고요한 마음에는 상실이 없지요.”

스님과 함께 야생 차밭을 둘러본 후 명부전으로 향했다. 기도를 드리러 온 불자들 옆에 앉아 있었다. 오염된 사문(沙門)의 본성은 괴로움이라 했는데, 앉아 있으니 나는 괴로운 생각에 자꾸 묶였다. 염오(染汚)된 사문인가, 염결(廉潔)한 사문인가. 자문하다 슬그머니 일어섰다. 명부전을 나오며 성전 스님께서 나를 바라보면서 말씀하셨다.

“기도는 마음을 비우고 해야 해요. 소원을 가지는데 그것도 버려야 해요. 나와 부처가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해요. 기도하는 소리를 스스로 또 들어야 해요. 그리고 궁극에는 부르는 사람도 없어지고, 부르는 대상도 사라져야 해요. 그 경지가 삼매의 자리지요. 기도는 하루 이틀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오래오래 해야 하지요. 우리가 업장이 두텁기 때문에 오래오래 해야 해요. 앙금이 내려앉아 물이 맑아지듯이 오래오래 하면 맑은 본성이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성전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용문사를 뒤로 한 채 산길을 내려왔다. 다시 바다로 가는 길이었다. 바다가 점점 더 큰 폭과 넓이로 시야에 꽉 들어차고 있었다. 그리고 스님의 말씀이 해조음처럼 들려왔다.

“일미평등(一味平等)이 바다의 법성이에요. 한 맛이에요. 차별이 없어요. 일망무제(一望無際)지요. 끝없고 멀어서 눈을 가리는 게 없어요. 모든 물질이 자기의 이름을 버려 한 몸이 되지요.”

글=문태준(시인)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