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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기금이 빚 탕감 해준다는데 …” 모럴 해저드 현실로

지난해 초 한 은행의 미소금융재단에서 창업·운영자금 1000만원을 빌린 이모(47)씨. 신용등급이 7등급으로 낮았지만, 재단 덕에 아무런 담보도 맡기지 않고 연 4.5%에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꾸준히 원리금을 상환하던 그는 올 초부터 돈을 내지 않기 시작했다. 빚을 갚으라며 전화를 건 직원에게 그는 “국민행복기금 대상자가 되면 원금까지 감면받을 수 있다. 지금은 빚을 갚지 않겠다”며 퉁명스럽게 끊었다. 한 은행이 소개한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사례다.

 가계대출의 연체율이 급등했다. 경기가 좋지 않은 데다 국민행복기금 출범에 따른 빚 탕감 기대감이 커진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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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말 국내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이 1.04%로 전달보다 0.05%포인트 올랐다고 28일 밝혔다. 이는 2006년 10월(1.07%) 이후 6년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특히 가계신용대출의 연체율(1.21%)은 전달보다 0.13%포인트나 치솟아 전체 연체율 상승을 이끌었다. 국민행복기금이 신용대출 채무불이행자(1억원 이하)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주택담보대출 연체율도 0.96%로 1%에 육박했다. 2006년 8월(1.03%)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아파트 분양자들이 중도금·이주비 등을 집단으로 빌리는 집단대출의 연체율 역시 1.99%로 집계를 시작한 2010년 12월 말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집단대출을 제외한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46%다.

 권창우 금감원 건전경영팀장은 “경기부진에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진 데다 은행이 연체율 관리를 위해 대규모 상각을 한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연체율의 증가는 출범을 앞둔 국민행복기금 때문이란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정부가 나서 개인의 빚을 깎아주기로 하면서 “일단 버티면 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은행 대출 담당 임원은 “지금은 행복기금 지원 대상자가 아니지만, 앞으로 추가 혜택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일부러 빚을 갚지 않는 고객이 늘고 있다”며 “빚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연체를 정리하지 않고 버티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이런 움직임은 금융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단순히 연체가 늘어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힘든 여건에서도 성실히 빚을 갚는 사람이 박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임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상을 세밀하게 분석해 필요한 사람이 도움을 못 받고, 여력이 있는 사람이 채무가 면제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정책 당국에서는 ‘더 이상의 채무감면은 없다’는 식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금융권에서는 정부가 채권을 탕감해주겠다고 발표하면서 연체율이 뛰어올랐던 ‘2003년의 악몽’이 재연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당시 자산관리공사(캠코)는 연체자의 원금 30%를 깎아주고 상환기간을 늘려줬는데, 이 때문에 카드사와 채권추심업체는 한동안 채권 회수가 어려웠다.

 연세대 성태윤(경제학) 교수는 “국민행복기금은 채권이 부실화하면 재정 투입이 불가피한 간접적 재정 투입”이라며 “구체적인 기준에 따라 대상자를 면밀히 선별하지 않으면 재정에 부담만 주는 실패한 정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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