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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33) 전주 북중 시절 도원결의

고건 전 총리(뒷줄 왼쪽에서 넷째)가 경기고를 다닐 때 동기들과 서울 청량리 홍릉에 놀러 가 찍은 사진. [사진 고건 전 총리]

젊은 나이에 전북 식산국장이 됐다. 도청에 다니다 보니 고민이 생겼다.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같은 사람을 부하 직원으로 둬야 하는 문제였다.

 어느 날 복도를 걷다 보니 저 멀리 결재 서류를 겨드랑이에 끼고 걸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낯이 익었다. 전주 북중학교 동기동창 이두복이었다. 반가웠다. 다가가 인사를 하려는데 갑자기 두복이가 나한테 공손히 목례를 했다.

 “야, 두복아. 왜 그래? 오랜만이다.”

 본 지 오래라 어색해서 그런가. 어깨를 툭 치며 다시 물었다. “우리 사이에 왜 그래. 어느 과에 있냐.”

 그런데 두복이가 존댓말을 쓰며 답을 했다. 국장인 나는 행정서기관이었고 그는 행정서기였다. 직급으로 치면 4단계 정도로 차이가 꽤 났다. 서기관과 서기의 어색한 만남이 돼버렸다. “도청 안에서도 친구처럼 지내자. 존댓말 쓰지 말고 서로 반말 쓰자”라고 했는데 “도리가 없다”며 잘 응해주지 않았다. ‘이래선 안 되겠는데….’ 신경이 쓰였다.

 고민을 하다가 조용히 알아보니 도청에 북중 동기가 세 명, 군청에 한 명이 있었다. 이들을 포함해 7~8명 동기동창을 대폿집인 ‘이화집’에 불렀다. 의자도 없이 드럼통을 가운데 두고 둘러서서 토끼 고기, 도루묵을 구워 먹는 집이었다. 처음 모여 보니 꽤 어색했다. 막걸리 여러 잔이 오갔다. 일 얘기는 안 하고 반말로 옛 추억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술기운이 오르고 왁자하게 추억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북중 시절 동기동창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조형익이었다. 나는 6·25 전쟁 피란길에 서울의 중학교에서 전주 북중으로 전학을 갔다. 전란 때문인지 중학교 1~2학년 때 키가 자라지 않고 154㎝였다. 또래에 비해 작은 덩치였다. 그런데도 ‘서울내기가 왔다’며 결투 신청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피할 수 없어 방과 후 학교 뒤 언덕배기로 가서 응전은 했다. 하지만 전투력이 문제였다. 스파링 상대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나를 스파링 상대로 삼았던 북중 학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조형익이었다.

 사실 북중 최고의 주먹, 어깨 중 우두머리는 지상수였다. 요새 아이들 말로 ‘일진’쯤 되겠다. 스파링 상대로 계속 맞기만 하다 보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우두머리인 지상수를 노리기로 했다. 나와 비슷한 신세였던 북중의 친구 김하영과 김기철을 불러 모았다.

 “지상수, 그놈을 혼내주자.” 도원결의를 했다. 셋이 좁은 골목길 옆에 숨어 지상수를 기다렸다. 지상수가 지나갔다. 내가 앞으로 나가 말했다. “너 버릇 없어. 한판 붙자.”

 전략은 성공적이었지만 아쉽게도 전술에서 실패했다. 좁다란 골목길이다보니 나만 홀로 앞에 나선 꼴이 돼버렸다. 혼자 지상수에게 맞기만 했다. 투닥투닥 하다가 넓은 장소로 나왔는데도 연합군 두 사람은 무기력인지, 배신인지 뒤에서 관전만 하지 참전하지 않았다.

 내 전투력만으로는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엄청 두들겨 맞았다. 그런데 이튿날 ‘고건이 지상수를 패주려고 도전했다’는 소문이 북중 안에서 날개를 달았다. 다들 나를 외경스러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다시는 결투 신청이 없었다. 도원결의 형제들과 지상수와는 지금도 가끔 모임을 갖는다.

 어쨌든 도청 안 북중 동기들과 이런 얘기를 웃으며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이후 동기동창 이화집 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가졌다.

 처음 부딪힌 숙제는 이렇게 풀었지만 그 후로도 비슷한 일이 많았다. 내무부 새마을담당관을 하면서부터 대학·고시 선배나 동기를 부하로 두는 일이 잦아졌다. 선배가 부하 직원이면 차라리 나았다. ‘선배’라고 모시고 예의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학교 동기나 고시 동기와 상하 관계로 얽히니 꽤 난감했다. 전남도지사 때는 국장 전부가 나보다 나이가 많기도 했다.

 공직 생활을 하며 늘 고민하던 숙제였다. 나보다 나이 어린 상사를 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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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