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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오십환

오십환 - 심호택(1947~2010)

머릿장 빼다지에서 훔친

불그죽죽한 오십환짜리는

제법 쓸모가 있었다

애들하고 콩사탕 박하사탕을 물고

마을로 들어오는데

논바닥에 해오라기마냥 엎드린

어머니와 형이 보였다

논두렁에서 암만 기다려도

알은체하지 않고 귀먹은 중마냥

하던 일만 하고 있었다

답답해서 내가 먼저 말 꺼냈다

공연히 큰 목소리로

내가 안 끄내갔단 말여!

정말 안 끄내갔단 말여!

옛날 농촌 집에는 대개 서랍 달린 단층자리 소박한 머릿장이 있었다. 사랑방에서는 필통 연적 서류함 등을, 안방에서는 이불 베개 반짇고리 등을 얹어두었다. 안방 머릿장 서랍에 어머니가 넣어둔 돈을 호기심에 슬그머니 훔쳐 동무들과 군것질도 하고 평소 하고 싶었던 호사를 실컷 누리던 악행. 이런 유소년기의 기억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문제는 가지고 나간 돈을 다 쓰고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갈 무렵 집에 들어갈 일이다. 가득한 걱정에 전전긍긍하면서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정작 어머니는 딴청이다. 차라리 욕을 하고 볼기짝 몇 대 때려주면 그걸로 죗값을 치르고 마음이 편하겠는데 모른 체하고 일에만 열중이다. 결국 어린 마음에 목청을 높여 소리친다. “내가 안 끄내갔단 말여!/ 정말 안 끄내갔단 말여!” 이말 뜻은 “사실은 내가 가져갔단 말여! 긍게 욕도 하고 몇 대 때려달란 말여!”이리라. 나도 그런 기억이 있으니… 아, 포근하다.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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