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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창조’를 아껴라 너무 흔하면 더 이상 창조가 아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창조. 아무리 멀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하이든의 걸작 ‘천지창조’나 우리나라 최초의 순문예지 『창조』(1919년 창간) 정도가 떠오를 뿐이다. 거기에 ‘경제’가 붙어 ‘창조경제’라 하니 좀 어렵다.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새 정부 들어 공직사회에서도 창조경제 공부바람이 한창이다. 인사도 창조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창조경제기획관실을 만들었고, 안전행정부는 창조정부전략실이란 부서를 개점했다.

 지난주 한 장관이 창조경제 전도사로 통하는 윤종록 연세대 미래융합연구소 교수를 초청해 창조경제 특강을 듣더니, 바로 며칠 후 윤 교수가 미래창조과학부 제2차관에 임명됐다. 관변 연구소들은 창조경제 보고서를 줄줄이 내놓는다. 부처별 행정목표도 창조가 단골이다. ‘창조경제를 실현하는 보건복지산업 육성’(보건복지부), ‘창조경제를 이끌 산업융합 핵심인재 양성’(산업통상자원부) 같은 것이다. 재계도 덩달아 창조 바람을 타고 있다.

 반대로 이명박 정부에서 각광받던 ‘녹색’은 된서리를 맞았다. 국토교통부의 녹색미래담당관, 환경부의 녹색환경정책관 등이 없어지거나 간판을 바꿔 달았다. 기시감(旣視感)은 어쩔 도리가 없다. 반세기 전 5·16 직후엔 “재건합시다”라는 인사말이 유행했다. 재건복이 유행했고, 가난한 청춘남녀가 무작정 걸으며 담소하는 ‘재건 데이트’라는 말도 생겼다. 전두환 정권이 내건 ‘정의사회 구현’, 노태우 시절의 ‘보통사람 시대’, 김영삼 문민정권의 ‘세계화’, 김대중 정권의 ‘제2의 건국’. 지금은 흔적도 없거나 낡아빠진 용어로 전락했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혁신’이 회자됐다. 혁신도시가 생겼고, 공직자들은 아침에 출근하면 자신의 ‘혁신점수’부터 챙기기에 바빴다. 그 혁신도 요즘엔 ‘혁신학교’에서나 명맥을 유지한다.

 새 정권은 새 용어와 함께 국민에게 다가간다. 거창하게 국정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새 정부의 지향점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출발점은 역시 간명한 언어 메시지다. 창조경제 자체는 시대 흐름상 적절한 용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말의 알맹이를 외면하고 정치적 구호로 삼아 분위기를 타려는 조짐이다. 벌써 공직사회의 수많은 보고서들이 ‘창조’로 수식된다니 걱정이다. 언어를 물신화(物神化)해 요술방망이나 신줏단지처럼 여기면 말은 금세 생명력을 잃는다. 구호 속에 숨거나 방패막이로 삼으려는 풍토는 예전 공직사회에도 흔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신선하던 용어가 썩고 타락하며, 임기 말에 가서는 안줏감이 되다시피 하는 것이다.

 다른 말도 아닌 ‘창조’다. 흔전만전 온갖 군데 다 등장하고 흘러넘치면 창조는 더 이상 창조가 아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창조를 외쳐댈 때, 진짜 창조는 조용히 자리를 뜨는 법이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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