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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지, 아웅산은 성이 아니다

전영선 기자
가브리엘 호세 데 라 콘코르디아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어디서부터 성(姓)인가. 아웅산 수지 여사는 수지 여사로 불러야 하나, 아웅산 여사로 불러야 하나. 세계 여러 나라 관련 기사를 접하는 국제부 기자들은 이름 때문에 종종 당혹스러움을 느낍니다. 세계는 넓고, 세계인의 이름은 생각보다 다양한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작명 체계와 문화를 알아봤습니다.

전영선 기자

# 성을 앞에 두는 헝가리


유럽에선 무조건 성을 뒤에 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헝가리는 우리처럼 성-이름으로 이어지는 작명 체계를 갖고 있다. 헝가리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의 본명은 리스트 페렌츠다. 리스트의 활동 무대가 유럽 전역이었던 탓에 우리에게 익숙한 프란츠 리스트로 굳어졌다. 지난해 논문 표절 시비로 물러나면서 국내에서도 자주 거론된 슈미트 팔 헝가리 총리의 성은 팔이 아닌 슈미트다. 오르반 빅토르 현 총리도 성이 오르반이다.

 한국외대 헝가리어과 김보국 교수는 “우랄어인 헝가리어의 특성과 여러 문화적 요인 때문에 유럽에서 유일하게 이런 이름 순서를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헝가리에선 이름을 짓는 절차도 다른 나라보다 까다롭다. 사용할 수 있는 이름도 비교적 제한적이다. 자녀의 이름을 12장 정도 남짓한 정부의 공식 명부에서 골라야 한다. 공식 명부에 없는 이름을 쓰고 싶다면 헝가리 언어학연구소에서 별도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영어식 이름도 심사를 받을 수 있지만, 헝가리어 표기 원칙에 따라 변형된다.

 헝가리 내에서도 성을 뒤에 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헝가리 대표 시인 아틸라 조세프(1905~1937 )가 이런 경우다. 김 교수는 “헝가리 사람들도 헷갈려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틸라 조세프의 경우 조세프가 성이다”라고 말했다. 특정 인물들이 이 순서를 따르는 이유에 대해선 설이 분분하지만, 외국계이거나 성을 뒤에 표기한 채 유명해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 성 없는 나라 미얀마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 여사. 그가 미얀마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이기 때문에 ‘아웅산’이 성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니다. 그렇다면 수지가 성인가. 이 또한 아니다. 미얀마엔 대를 이어 물려주는 성이 없다.

 부산외대 동남아 지역원 김인아 교수는 “부계나 모계로 이어지는 혈족사회가 아닌 종교(불교·힌두교) 중심 사회이기 때문에 후손에게 물려주는 이름이 없다”고 말했다. 미얀마에선 혈통이 아닌 특정한 목적을 공유한 집단을 친족의 개념으로 규정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대신 점성술에 따라 태어난 요일마다 붙여야 하는 이름의 음절이 정해져 있다. 가령 월요일에 태어난 아이에겐 카, 학 (ka, hka) 등 발음이 들어간 이름을 붙여야 한다. 아웅산 수지의 이름 일부가 아버지의 이름과 같은 것은 딸이라서기 보다 태어난 요일(일요일)이 우연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둘 다 아(a)로 시작하는 이름을 붙여야 했고 아버지를 위해 같은 이름을 쓴 것으로 보인다. 이름의 나머지 부분은 할머니(수)와 어머니(지)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관행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불러야 할까. 수지 여사, 아웅산 여사 모두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되도록 전체 이름을 쓰는 게 좋다는 것이 김 교수의 견해다. 아웅산 수지는 미얀마 내에선 ‘다우 수’라는 애칭으로 많이 불리는데, 이때 다우는 나이가 지긋한 여성에게 붙이는 접두사다. 남성에겐 ‘두와’가 붙는다.

 꼭 써야 하는 성이 없는 만큼 미얀마에선 개명도 쉽고 국민의 이름을 관리하는 제도도 없다. 신분을 증명해야 할 때나 해외 활동에 불편은 없을까. 김 교수는 “미얀마 사람들이 해외에서 출입국 관리 카드와 같은 서류를 작성할 때 성 란에 이름 앞에 붙는 각종 성명 존칭을 쓰기도 하고 이름 첫 부분을 쓰거나 그냥 공란으로 두면서 혼란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엔 미얀마에서 이름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태국에서도 성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이런 경우다. 하지만 부족이나 종교에 따른 다양한 이름 원칙이 있다. 가령 인도네시아 화교들은 한자 성을 인도네시아어 발음으로 변형해 사용한다. 인도네시아 최고 갑부로 유명한 리포 그룹 제임스 리아디 총수의 성 리아디는 이(李)의 인도네시아식 표기다. 필리핀도 19세기 중반까진 성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스페인 식민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돼 현재는 대부분 성을 사용하고 있다.

# 아이슬란드 성 다른 남매의 비밀은.

아이슬란드에는 한 가족이라도 성이 다 다르다. 그렇다고 막장 드라마를 떠올리면 안 된다. 이름 뒤에 고정된 성 없이 아버지의 이름을 붙인다. 칼이라는 남자가 슬하에 안나와 마그누스라는 남매를 두었다고 하자. 이들은 안나 카를스도티르(칼의 딸 안나)와 마그누스 칼손(칼의 아들 마그누스)이 된다. daughter(딸)와 같은 ‘도티르(dttir)’, son(아들)과 같은 ‘손’이 붙었다. 세월이 흘러 마그누스 칼손이 게이르라는 아들이 낳으면 그의 이름은 게이르 마그누스손이 된다.

 아이슬란드 정부 관광청은 홈페이지에 “한 가족이 서로 다른 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에겐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성보다 이름이 중요하다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하다. 재임 기간 중 동성 연인과 결혼해 유명해진, 아이슬란드 총리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를 요한나 총리로 부르는 것은 문제가 안 되지만, 시귀르다르도티르 총리로 부르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다.

 어머니 혼자 자식을 기르거나 국제결혼을 한 경우, 혹은 부모가 누구인지 모를 때는 어떤 원칙을 따를까. 이럴 때는 어머니 이름을 붙이거나 자유롭게 정한다. 아이슬란드 가수 비요크는 밴드 동료였던 토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에겐 ‘신드리 엘돈 토르손(토르의 아들 신드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미국인 예술가 매튜 바니 사이에서 난 딸에겐 ‘이사도라 비요크도티르(비요크의 딸) 바니’라는 이름을 택했다.

 이런 이름 체계는 인구 30만 명 남짓한 소규모 국가라 가능하다. 동명이인이 있을 경우 친할아버지의 이름이나 자신의 직업을 붙여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와 같은 이름 체계를 사용하던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과 러시아는 인구가 급증해 19세기에 가족 성 제도를 도입했다. 과거엔 아이슬란드에도 성을 만들어 물려줄 수 있는 제도가 있었지만 1925년 폐지됐다. 이미 존재하던 계승 성 외에는 더 이상 새로운 성을 만들 수 없다. 게이르 호르테 전 총리의 경우 물려줄 수 있는 성을 지닌 집안 출신이다.

# 길고 긴 스페인어권 이름

스페인과 구 스페인 식민지가 많은 중남미 국가의 이름은 굉장히 길다. 가장 단순한 이름에도 최소한 네 가지 요소가 들어간다. 부모가 붙인 이름, 세례명, 부계 성, 모계 성 등이다.

 스페인 화가 피카소의 세례 증서에 기록된 이름은 ‘파블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코 데 파울라 후안 네포무세노 마리아 데 로스 레메디오스 크리스피니아노 데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루이스 피카소’다. 루이스가 아버지 쪽, 피카소는 어머니 쪽 성이다. 파블로는 부모가 붙인 이름이고 디에고는 교회에서 받은 세례명, 중간에 끼인 이름은 가까운 친인척의 이름 등이다.

 일상 생활에서 이런 긴 이름 전체를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피카소는 루이스라는 흔한 성이 싫어 희성이었던 어머니쪽 이름을 활동명으로 택했다. 피카소의 자손들은 아예 피카소란 성을 이어 쓰고 있다.

 스페인어권에서 결혼한 여성은 일반적으로 이름 맨 마지막에 남편 성을 붙인다. 단 쿠바는 예외다. 결혼 후 남편 성을 따르는 영미권과 다른 점은 대부분의 자신의 성을 병행 사용한다는 것이다.

 스페인어권과 문화가 비슷한 포르투갈어권에서도 이름 두 개, 성 두 개를 쓴다. 스페인어권과 달리 일반적으로 모계성을 먼저, 부계 성을 맨 마지막에 쓴다. 하지만 이름 순서는 개인이 정할 수 있기 때문에 부르기 쉬운 쪽으로 바꾸는 경우도 많다. 이름 갯수의 제한이 없는 스페인어권과 달리 포르투갈에선 이름을 최대 6개까지만 쓸 수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포르투갈 대표팀을 이끌었던 축구스타 루이스 필리페 마데이라 카에이루 피구의 경우 카에이루가 모계성, 피구가 부계성이다.

# 아버지의 흔적

아버지 이름을 다음 대에 바로 물려주는 나라는 현재 아이슬란드가 유일하다. 하지만 조상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 뒤에 붙여 가문을 드러내던 흔적은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맥도널드, 피츠제럴드, 페터손, 마르케스, 쇼스타코비치 같은 성에 붙는 맥(Mc, Mg), 피츠(Fitz), 손(son), 에스(es, ez), 비치(ovich, yevich) 는 모두 ‘~의 아들’ ‘~의 딸’임을 드러내는 접두사·접미사다.

# 인도의 일곱 가지 성명 형태

인도엔 국가 전체에 적용되는 단일 성명 원칙이 없다. 크게 일곱 가지 형태로 나뉠 수 있는데, 타밀 나두, 케르랄라 등 남쪽 지역에선 공식적으로 성이나 카스트 명을 쓰지 않는다. 타밀에선 자신의 이름 앞에 알파벳 철자를 하나씩 붙이는데 이는 아버지 이름에서 따온 첫 글자다. 그 밖의 지역에서 사용되는 성은 직업, 카스트, 부족, 출신 지역에서 따온 것이다. 식민 작위 등이 이름에 붙기도 하고, 영어 이름을 쓰기도 한다. 마하트마 간디의 성은 직업(세리), 인도 출신 영국 예술가 아니시 카푸르의 성은 지역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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