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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민정수석 입에서 나와야 할 “안 된다”는 소리

전영기
논설위원
JTBC 뉴스9 앵커
‘많은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고, 적은 사람을 오래 속일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없다’는 말은 링컨의 얘기입니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임을 강조할 때 인용되는 말이죠.

 박근혜 대통령이 많은 사람한테 오랫동안 인정받아온 건 그가 정직한 정치인이라는 대중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의 사람들’까지 다 인정받는 건 아닙니다. 시장의 민심은 아직 마음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성접대 의혹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박근혜의 사람들은 솜씨 있는 유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최상의 솜씨는 최고의 몰두에서 나옵니다. 최고의 몰두가 방해받는 건 종종 사심(私心) 때문입니다. 사심은 일보다 자리에 집착하는 마음입니다. 더 영향력 있는 자리를 추구하고, 현재 자리를 더 오래 유지하려 하는 심리죠.

 이번 사건에서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의 판단력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성접대 연루설이 나돌던 김학의 법무차관이 임명되는 과정에서 검증을 통해 걸러내는 일은 곽 수석의 몫이었습니다. 곽 수석은 검증에 실패했습니다.

 정치는 동기의 선의가 아니라 결과의 실적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래서 정치가 어려운 겁니다. 그런데도 민정수석실은 ‘경찰이 동영상이 없다고 했다. 당사자도 극구 부인했다. 우리가 더 이상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이런 항변엔 김학의 이슈를 도덕성의 문제로 보지 않고 범죄성 여부로 판단하려 한 안일함이 엿보입니다. 민심은 김 전 차관의 기소 가능성 이전에 연루설 자체를 수용할 수 없었던 겁니다. 청와대에 여러 수석들이 있지만 민정수석 입에선 “안 된다”는 소리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상 법무차관 발탁은 대통령의 수첩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결심한 인사안에 대해 허태열 비서실장이나 이정현 정무수석 같은 실세들도 토를 달긴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나 민정수석은 토를 달아야 합니다. 도덕적 문제와 법적 이슈, 인사 검증과 통치 기강, 민심 동향의 다섯 가지 영역에서 대통령의 판단에 토를 달라고 있는 자리가 민정수석이기 때문이죠.

 청와대 참모들은 권한은 유한하지만 책임은 무한합니다. 특히 민정수석이란 자리가 그렇습니다. 언제라도 자리를 버리고 민심 눈높이에서 대통령에게 직언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의 무능을 질타하고 집권당의 무기력을 반성하는 이상일 새누리당 대변인의 논평은 한 줄기 시원한 바람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사람입니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의 정치에 합류해 줄 것을 요청해 금배지를 달았죠. 이 대변인은 “정부조직법 협상 과정에서 여당이 청와대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 청와대가 허술한 인사검증을 변명하고 있는데 청와대 검증팀의 무능만 부각시킬 뿐이다.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 장·차관급 인사검증을 허술하게 한 관계자들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3월 22일 공식논평)고 입바른 소리를 했습니다.

 집권 초 대통령 권력이 서슬 퍼렇게 살아 있을 때 ‘대통령의 사람’ 입에서 이런 자기비판이 나오긴 쉽지 않습니다. 집권세력 내부에선 이 대변인의 논평에 충격을 받은 모습입니다. 청와대는 황급히 새누리당 지도부를 찾아 무슨 배경이 있는지 체크하기도 했습니다. 이 대변인은 ‘진짜 어떤 배경이 있는 거냐’고 제가 묻자 “사심 없이 민심을 직시했다. 많은 고민을 했다. 박 대통령께는 직언을 하는 게 충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더군요. 집권당이 청와대에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면 민심이 선거에서 심판합니다. 그때 가서 청와대와 집권당이 서로 책임을 미루곤 하지만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뒤입니다. 이런 경험은 과거 정권에서 수도 없이 보아 왔던 패턴이랍니다.

 대통령의 사람들이 대통령한테 직언하려면 사심을 버려야 합니다. 자리 욕심을 비우면 그 자리에 기쁨과 만족, 보람이 채워질 겁니다. 국민의 깊은 사랑은 그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전 영 기 논설위원·JTBC 뉴스9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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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