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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벚꽃과 아사노

내가 아사노를 알게 된 것은 일본 지바현 나루토에 있는 식당에서 점원으로 일할 때였다. 그는 우리 식당 단골 중의 단골손님이었다. 매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식당에 자주 오는 손님이었으니까.

아사노는 독신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가족도 없이 혼자 살고 있다. 나이가 70 가까운 노인이지만 체구도 작고 표정도 천진해서 어딘지 덜 자란 소년 같은 구석이 있었다. 젊었을 때는 원양어선도 탔다고 하는데 마흔 살 넘어서는 육지에서 이런저런 일을 했고 이제는 우리 식당에 와서 갈비 1인분과 생맥주 한잔으로 하루를 항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사노의 테이블’이라고 불렀던 3번 테이블에 앉아서.

아사노가 그렇게 앉아 있는 동안 해가 지고 별이 떴다. 비가 오고 눈이 내렸다. 손님들이 몰려왔다가 빠져나가고 다시 손님들이 오고 주문을 하고 점원들이 음식을 테이블로 나르고 손님들이 웃고 떠들고 싸우고 울고 계산하고 그러다 하나 둘 손님들이 사라질 때까지 아사노는 자신의 테이블에 앉아 갈비 1인분과 생맥주 한잔을 마셨다. 마치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속 화면처럼 느리게 아주 느리게 인물과 사물의 경계선을 뭉개면서.

아사노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식당에서 이웃을 만나도 그저 간단한 인사만 나눌 뿐 잘 어울리지 못했다. 어쩌다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과 합석한 그를 본 적이 있지만 그때도 그는 남들의 이야기에 그저 수줍게 웃기만 했다. 그런 아사노가 내게는 곧잘 말을 건네곤 했다. “날씨가 꽤 날카로워졌어” 날씨 인사를 하기도 하고 “글쎄, 아침에 수족관의 물고기 한 마리가 배영을 하더라니까” 나름 유머를 건네기도 하고 “10번 테이블에 빨리 안 가고 뭐해?” 참견을 하기도 했다. 또 한번은 무슨 호텔에서 가져온 목욕가운을 입은 채 “어때? 멋지지? 너도 내게 옷 입는 센스를 좀 배우라고” 으스대기도 했다.

아사노는 눈치가 없었다. 주말 저녁, 자리가 부족해 손님들이 줄지어 기다리거나 혹은 돌아갈 때도 그는 4인석 3번 테이블을 혼자 지켰다. 남아 있는 맥주 한 방울은 물론 꺼진 거품의 마지막 냄새까지 다 마신 지 오래 전인 생맥주 잔을 들고서 말이다. 식당 사장은 손님이 스스로 일어서지 않는 한 자리를 비켜 달라고 양해를 구하거나 눈치를 주지 말라고 했다. 원망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내 눈과 마주칠 때면 아사노는 ‘나는 손님이야’라는 듯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짧은 다리를 꼬는 것이다.

아사노는 여자를 좋아했다. 그가 여자를 바라보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도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한번은 아사노가 내게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내가 미인이라고 하자 그는 자신의 첫사랑이라고 조만간 식당에 데려올 거라고 했다. 얼마 후 정말 여자를 데려왔다. 그러나 사진과는 영 딴판이었다. 몸집이 그의 두 배는 될 것 같았다. 그날 여자는 엄청 먹고 떠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사노를 보지 못했다. 딱 한 번 벚꽃이 한창이던 봄날 오후 자전거를 타고 마트에 다녀오다 길가 벚꽃나무를 보던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아사노 씨, 요즘은 왜 안 와요?” “돈이 없어.” 그가 힘없이 웃었다. 그때 나는 “오세요. 내가 한잔 살게요”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아사노는 그 봄의 벚꽃이 지기 전에 죽었다.



김상득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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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