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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쇼는 영업방해, 법적 처벌해야 vs 사업 특성상 감수해야 할 리스크

22일 금요일 저녁 서울 후암동 레스토랑 나오스노바에서 예약을 해놓고 취소하지 않은 노쇼(no-show) 고객의 테이블이 비어 있다. 조용철 기자
화이트데이였던 지난 14일 저녁,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프렌치 레스토랑 나오스노바. 유명 레스토랑 평가서인 자갓(Zagat)이 ‘서울에서 가장 분위기가 좋은 레스토랑’으로 선정한 곳이다. 이날 예약률은 100%였다. 하지만 빈 테이블이 속출했다. 사전 취소 통보 없이 나타나지 않은 ‘노쇼(no-show)’ 고객들 때문이다.

이 레스토랑의 카일 리 사장은 이날 트위터에 노쇼 고객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공개했다. 개인정보 유출 논란이 일자 명단은 곧 삭제됐지만 찬반 논란이 불붙었다. “식당 입장도 이해해줘야 한다”는 의견과 “급한 일이 생겨 못 갈 수도 있는 것 아니냐” “무서워서 예약하겠나”는 의견이 대립했다.

그는 “크리스마스·밸런타인데이·화이트데이엔 매출이 많아야 하는데 노쇼로 인해 오히려 평일보다 적다”며 “노쇼로 인한 매출 손실이 한 달에 3000만원에 달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명단을 공개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에도 한두 차례 노쇼 사례와 고객 이름을 트위터에 올린 적이 있다. “노쇼는 영업방해로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노쇼는 레스토랑 사업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리스크로 보는 게 맞다”(이혜영 소비생활연구원 정책기획실장)는 반론도 강력하다.

북촌의 프렌치 레스토랑은 결국 폐업
예약 없이 매장을 찾는 이른바 ‘워크인’(walk-in) 고객을 사절하고 예약제로만 운영하는 파인다이닝(fine dining) 레스토랑은 노쇼에 특히 취약하다. 예약에 맞춰 식재료를 준비한 뒤 고객들 입맛에 맞춤 서비스를 하기 위해 미리 1차 가공을 마치는 경우가 많은데 노쇼가 생기면 재료를 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한 프렌치 레스토랑 대표는 “예약은 ‘내가 언제 그곳에 갈 테니 서비스 준비를 해둬라. 비용은 지불하겠다’는 약속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리 맡아두기’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의적 노쇼의 형태는 다양하다. 전화기를 꺼놓거나 안 받고, 받더라도 ‘사정상 다른 식당에 온 게 뭐가 잘못이냐’고 따지는 경우도 있다. 레스토랑 여러 곳에 예약을 걸어두고 당일 기분에 따라 한 곳을 골라가는 경우도 많다. 레스토랑 측이 보기엔 블랙 컨슈머(악덕 소비자)의 전형이다. 엘본 더 테이블의 최현석 셰프는 “밸런타인데이나 연말 땐 노쇼 비율이 40~50%까지 달하는 곳이 속출한다”고 전했다.

노쇼로 고민하다 폐업한 곳도 생겼다. 카일 리 사장은 “서울 북촌에서 프렌치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지인이 노쇼 때문에 지난해 12월 문을 닫았는데 마지막 날까지도 테이블 3개 중 2개가 노쇼였다. 그가 ‘이 끔찍함도 오늘로 끝’이라고 올린 트윗을 보니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이렇다 보니 ‘노쇼 상습 고객 블랙리스트’도 등장했다. 최현석 셰프는 “특정 대기업 비서실부터 개인까지 다양하다”며 “셰프들끼리 만나면 노쇼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가 화제”라고 말했다. 강남구 반포동 프렌치 레스토랑인 줄라이의 대표 오세득씨는 지난해 석가탄신일에 ‘전국 레스토랑 노쇼 금지’라는 소원을 적은 연등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예약 부도’라고도 불리는 노쇼는 원래 항공업계 용어다. 하지만 신용카드를 통한 선(先)결제 및 위약금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항공업계에선 노쇼가 급감했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2005년 13.4%였던 국내선 노쇼 비율은 지난해 11월 5.4%로 떨어졌다.

레스토랑은 얘기가 다르다. 우리나라는 예약이 필수인 파인다이닝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노쇼를 하게 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인식이 없는 경우다. 지난달 현재 한국외식업중앙회 회원으로 등록한 국내 식당은 42만 곳에 달한다. 인구 100명당 식당 수가 0.86개로 미국에서 가장 식당이 많은 도시인 워싱턴DC(0.4개)의 두 배가 넘는다.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조금만 나가도 식당이 있고 예약 없이도 쉽게 외식을 할 수 있다.

“예약 문화 정착 위한 성장통”
‘손님은 왕’이란 인식도 노쇼를 부추긴다고 셰프들은 입을 모았다. 최현석 셰프는 “고객들이 레스토랑을 하대한다. 예약을 해놓고도 안 가고 싶으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레스토랑은 입소문이 무서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레스토랑 지배인은 “가방 놓을 자리를 확보하려고 실제 인원 수보다 많은 자리를 예약하거나, 예약을 하지 않고 와서 예약석에 앉겠다고 떼를 쓰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예약문화가 확산되면서 병원·미용실 등 전화·인터넷 예약을 받는 곳에서도 노쇼는 심각한 문제가 됐다. 아예 예약제를 폐지한 곳도 있다. 서울 중구의 한 정신과의원 관계자는 “정신과 특성상 예약이 필수적이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 환자들 때문에 피해가 컸다”며 “요즘은 현장접수만 받는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예약 없이 무조건 기다리는 수밖에 없게 돼, 결국 노쇼의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박상현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예약문화의 기본은 신용 중시 문화”라며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려면 신용을 사회적 자본의 일부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쇼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7시에 두 명 예약해달라”고 말한 것만으론 구체적인 구두 계약이 성립됐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하영진 변호사는 “메뉴를 미리 확정하지 않는 이상 구체적 손해액이 산정되지 않기 때문에 손해배상청구를 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쇼에 대한 관련 법규가 없는 데다 예약이 소규모로 이뤄지므로 업무방해로 형사처벌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법 대신 문화적인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양의 예약문화 역시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현상인 것처럼 처벌이나 규제 대신 캠페인 등을 통해 자연스레 예약문화가 정착되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스토랑 입장에서도 서비스 평판이 소비로 이어지는 만큼 노쇼 고객을 고발하기보다 고객과 신뢰 관계를 높여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 낫다는 지적이다. 세종대 이애주(외식경영학) 교수는 “레스토랑이 예약 고객들에겐 할인 혜택이나 디저트를 제공해 예약문화 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객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예약금을 받거나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레스토랑도 있다. 줄라이의 경우 예약금 5만원을 계좌이체 해야 예약이 확정된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의 경우 테이블당 13만원을 받았다. 안인호 매니저는 “불쾌하다는 분도 있지만 계좌번호를 발송하면서 사유를 설명하면 양해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이후 노쇼율은 10% 아래로 떨어졌다.

남산에서 모던 한식 레스토랑 ‘품’을 운영하는 노영희 셰프도 예약금을 받는다. 단체 예약 고객은 당일 취소가 불가하다. 노 셰프는 “예약금 얘기를 꺼내면 전화를 끊는 고객들이 많지만 예약에 맞춰 매일 아침 식재료를 준비하는 만큼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애주 교수는 “레스토랑 등 서비스산업은 ‘시간’이라는 무형성을 팔기 때문에 예약을 통해 수요를 예측하고 공급을 맞출 때 생산성이 극대화된다”며 “그 혜택은 더 좋은 서비스의 형태로 소비자에게 돌아오게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금의 노쇼 논란은 예약문화 정착을 위한 성장통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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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