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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 1승뿐인 아버지, 세계 1등 카노 키우다

로빈슨 카노
2013년 WBC의 주인공은 도미니카공화국과 로빈슨 카노(31·뉴욕 양키스)다. 도미니카 대표팀의 투수코치 호세 카노(51)는 조국의 우승과 아들의 성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빅리그서 성공 못 이뤘지만
아들 도미니카 영웅으로 육성
투수코치로 함께 우승 합작

 카노는 푸에르토리코와의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대회 MVP에 뽑히는 겹경사를 누렸다. 그는 “(마무리투수) 페르난도 로드니가 엄청난 활약을 했다. 내가 조금 더 잘생겨서 뽑아주신 것 같다”고 여유를 부렸다. 카노는 이번 대회 타율 0.469(32타수 15안타), 2홈런, 6타점·6득점, 3볼넷을 기록했다.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1, 2라운드와 대회 MVP를 석권했다.



 1982년 10월 22일 도미니카공화국의 해안도시 산페드로 데마코리스. 첫아이를 품에 안은 호세 카노는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을 떠올리며 아들에게 ‘로빈슨’이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호세 카노도 야구선수였다. 1980년 휴스턴에 입단한 그는 1989년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하지만 단 여섯 차례 빅리그 마운드에 오른 뒤(1승1패, 평균자책점 5.09) 마이너리그와 대만을 전전하다 1999년 은퇴했다.



 못다 이룬 꿈을 아들이 이어받았다. 카노는 13살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 뉴저지로 이사해 3년을 살았다. 뉴욕 양키스의 버니 윌리엄스를 동경했고, 야구를 시작했다. 재능을 발견한 아버지는 오른손잡이 카노를 우투·좌타로 전향시켰다.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돌아가 중·고교를 마친 카노는 2001년 양키스와 계약했다. 2005년 카노가 롤 모델로 삼았던 윌리엄스의 부진이 이어졌고, 카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그는 네 번의 올스타 선발(2006년, 2010~2012년), 두 차례 골드글러브(2010, 2012년) 수상의 화려한 이력을 쌓으며 ‘양키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12월 카노는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나는 양키스 소속이자, 도미니카공화국의 선수”라며 WBC 도미니카 대표팀에 합류했고, 정상에 섰다. 2011년 올스타전에서 배팅볼 투수로 나서 카노의 홈런 더비 우승을 도왔던 아버지 호세 카노는 WBC 우승의 순간에도 아들 곁에 있었다.



하남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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