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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27) 첫 번째 사표 소동

서울 중구 을지로2가에 있었던 내무부 청사의 1966년 당시 모습. 원래는 일제 강점기인 1909년 건립된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이었다. 해방 후 내무부 청사로 쓰였다. 지금 외환은행 본점 자리다. [중앙포토]


1965년 초 보직 없는 사무관 생활을 한 지 3년이 지나고 있었다. 아마 신입 사무관이 보직 없이 3년 넘게 보낸 것은 지금도 깨지지 않은 기록일 거다. 무보직 사무관으로 내무부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생활을 더 이상은 참기 어려웠다.

고건 "아버지를 바꿀 순 없다, 그래서 …"



 아버지를 바꿀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직업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사표를 썼다. 사표만 내고 그만두긴 억울했다. 장관을 만나 따질 건 따지고 사표를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겉에 사직서(辭職書)라 적은 하얀 봉투를 품고 다녔다. 보직 없는 평사무관이 장관을 만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서울 을지로 내무부 청사 현관에서 기다렸다가 국무회의에 다녀오는 장관을 만나 면담을 요청해 보자는 궁리를 냈다. 하지만 번번이 장관을 만나지 못했다. 허탕을 치고 돌아와 퇴근 후 대폿집에 동기들과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 어느 날 취기가 올라 안주머니에 있던 사직서 봉투를 꺼내 들고 외쳤다. “나 사표 내기로 했어.”



 동기들과 술자리에서 한 얘기가 밖으로 새어 나갔나 보다. 고 아무개라는 사무관이 사표를 품고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내무부에 파다하게 번졌다. 얼마 후인 65년 5월 행정과 기획계장으로 발령이 났다. 야당 의원의 아들이 보직도 못 받고 결국 사무관을 그만두게 된다면 국회에서 말썽이 날 수도 있다는 보고가 장관이나 차관에게 올라갔나 보다. 물론 나에게 속사정을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짐작일 뿐이었다.



 무보직 사무관 생활은 그렇게 끝났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인간적으로 철이 드는 숙성 기간이기도 했다. 3년 반 동안 외국 책을 구해 행정에 대해 공부도 했고 지방행정에 대한 기획안도 썼다.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중앙부처에서 입안한 정책이 지방 현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도 관찰하고 분석했다. 3년 반의 이런 공부는 기획계장으로 일할 때 큰 도움이 됐다.



지방자치제도를 시행하다가 중단된 시기였다. 당시 정일권 국무총리가 국회에 나가면 의원들은 “지방자치를 왜 다시 시작하지 않느냐”고 몰아세웠다. 정 총리는 “다시 지방자치제도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회의 추궁이 이어지자 정 총리는 “지방자치백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 일은 내무부 지방국 행정과의 기획계장인 나에게 돌아왔다. 노융희 서울대 교수를 비롯해 지방자치 전문가들과 함께 백서를 만들었다. 3년 반 동안 서울 충무로 외국 전문서적 거리와 도서관을 다니며 공부한 내용을 맘껏 활용했다. 공청회도 열었고 완성한 백서를 국회에도 보냈다.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국내 전문서적이 거의 없던 때였다. 이 백서는 이후 10년간 대학에서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교과서처럼 쓰였다. 3년간의 기획계장 시절 ‘도시문제’란 월간 잡지도 창간했다. 이호철 작가의 ‘서울은 만원이다’란 소설이 인기를 끌 만큼 도시화 문제가 심각했던 때였다. 그때의 경험과 공부는 이후 서울시장으로 일하면서 큰 도움이 됐다.



 후일담이지만 공직에 처음 나서며 품었던 군수의 꿈을 나는 이루지 못했다. 전북도청 식산국장, 내무부 새마을담당관 등을 거치면서 군수로 나가지 못했다. 딱 한 번 기회가 있긴 했다. 식산국장으로 일할 때 이환의 전북도지사가 날 군산시장으로 추천했다. 하지만 군산·옥구를 지역구로 둔 여당 국회의원인 차형근 변호사가 반대하면서 기회를 잃었다. 내가 군산시장을 했다가 국회의원에 도전할까봐 걱정했던 것 같다.



정리=조현숙 기자



◆ 이야기 속 인물



정일권




정일권(1917~94)=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만주군에서 복무했다. 광복 후 군사영어학교를 거쳐 조선국방경비대에서 근무했다. 33세 나이에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며 6·25전쟁을 치렀다. 만주군에서 만난 동갑내기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5·16 이후 행정가로 변신했다. 주미 대사, 외무부 장관을 거쳐 64년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6년8개월 동안 일하며 역대 총리 중 최장 재임 기록을 세웠다. 8~10대 국회의원, 9대 국회의장을 지냈다. 3공화국 때 의문사한 정인숙씨의 아들이 91년 그에게 친자확인소송을 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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