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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은 사랑받은 기억의 축적 … 어른 돼서도 보충해야죠

사실 사람만큼 힘든 존재도 없다. 가톨릭 도미니코 수도회의 노경덕 신부는 각종 인간관계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피정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그는 “내가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남에게 사랑을 베풀며 내 삶의 상처도 치유되는 경험을 한다”고 말했다. [안산=김상선 기자]
가톨릭 신자에게 피정(避靜)은 영성의 재충전 기간이다.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난 탈속(脫俗)의 공간 수도원에서 보내는 1박2일 또는 2박3일은 지친 심신을 달래고 허약해진 신앙을 굳건히 하기 위한 것이다. 피세정념(避世靜念)의 준말, 말 그대로 ‘세상을 등진 고요함’의 추구다.



영성 2.0 ⑦ 노경덕 신부
기도와 명상 중심의 피정에 미술치료·상담과정 등 추가
매 주말 15명씩 1년째 운영 “내 상처도 함께 낫더군요”

 최근 몇 년 새 피정은 그 내용이 다양해지는 추세다. 단순 명상에서 벗어나 ‘망가진 심신’을 되살리는 재활, 즉 치유에 방점을 찍는 곳이 많다.



가톨릭 도미니코 수도회 노경덕(40) 신부가 1년째 운영 중인 피정은 그 중에서도 독특하다. 하느님의 사랑을 큰 체험하는 ‘관상(觀想) 상태’를 추구하는 침묵기도(관상기도)는 기본. 여기에 각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미술·음악치료와 마음공부 강연은 물론 1대1 상담까지 병행한다. 이른바 과학적 치유를 추구한다. ‘마음이 아픈 현대인을 위한 수도원 피정’이다.



 지난 16일 신부를 찾아 나섰다. 신부가 몸담고 있는 수도원은 지역주민들의 아침 산책로가 지척인 경기도 안산시 일동 주택가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신부는 수도원 근처 요양원 입원자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고 막 돌아온 길이었다.



 “생활에 필요한 노동을 직접 해야 하는 수도원의 특성상 내 몫의 청소와 빨래는 물론 치유 피정까지 진행하다 보니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입을 뗐지만 표정은 평화롭기만 하다.



신부는 “피정 참가자는 다양하다”고 소개했다. 사별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 부부 갈등으로 고통받는 이들, 자녀 문제로 골치 아픈 부모, 심신질환 환자의 가족 등…. 신부가 열거한 참가자 리스트는 길게 이어졌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병이 깊다는 뜻일까.



 대개 한 달에 한 번 꼴인 다른 피정과 달리 노 신부의 치유 피정은 매 주말 열린다. 인원은 15명 이내로 제한된다. 개별 상담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입소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자신의 아픔을 다른 참가자들 앞에서 드러내도록 권고받는다. 상처 공개 자체가 치유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노 신부를 돕는 심리상담사 최신애(59)씨는 “요즘에는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 때문에 참가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신부를 만나는 시간, 참가자들은 심리상담 전문가 이상현(41)씨가 진행하는 침묵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세 시간 동안 꼼짝 달싹 못하고 부동자세로 앉아 있어야 하는 고문 수준의 기도다. 마음의 분산을 막기 위해 조그만 움직임조차 허용치 않는다.



 이씨는 간간히 참가자들과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각자 자신의 고통의 원인을 솔직하게 대면하도록 하는 ‘맞춤 지도’다. 이씨는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대개 하느님의 사랑을 실감한다”고 귀띔했다.



 노 신부는 치유 피정을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걸까. 그는 “내가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고 대답했다. 신부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2009년 건강 문제로 중국 선교사의 꿈이 좌절된 데서 오는 고통이 컸다”고만 했다.



 그의 고통은 보다 근원적인 인생문제에 연결돼 있는 듯했다.



“사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죄이지요.”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르게 되는 죄과(罪過)의 고통이랄까. 그런 게 더 컸다는 얘기다.



 “지난해 초 보스니아의 메주고리예 성지로 순례여행을 갔어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신앙의 은총 속에서 ‘너의 죄는 내가 알아서 해 줄 테니 이제 그만 죄에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는 성모님의 말씀을 들었죠. 마약 중독자를 돕는 체나콜로 공동체에서는 상처를 치유하는 공동체의 힘을 목격했고요.”



 노 신부는 특히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행위가 내 상처를 낫게 한다는 점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피정 운영이 자신의 치유 과정이기도 한 셈이다.



그는 이런 본인의 경험에 전문성을 더하는 중이다. 가톨릭 신학대에서 영성상담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치유 피정을 찾는 이들은 대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자존감은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았다는 기억의 축적입니다. 어려서 부모 사랑이 부족했던 사람은 어른이 돼서라도 보충받아야 해요. 피정은 물론 그 사랑을 채워주는 과정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답변이 간단했다.



“특별한 건 없어요. 치유 피정의 수준을 더 끌어올리고 싶습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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