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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자꾸만 울고 싶다는 50대 남성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Q 건설업을 하고 있는 50대 중반 남자입니다. 원래 성격도 그렇지만 종사해온 일의 영향 때문인지 늘 ‘남자답다’는 소리를 들어 왔습니다. 저는 그런 소리가 싫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을 만나면 항상 통 크게 쏘는 스타일입니다. 두 아들한테도 평소 ‘남자는 선이 굵고 의리를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하죠. 당연히 드라마보다는 스포츠를 좋아합니다. 드라마 보겠다는 아내랑 채널 선택을 두고 다투다가 아내를 토라지게 한 적도 있습니다. 요즘은 그런 갈등이 싫어 그냥 잠자코 드라마를 같이 보든지, 아니면 방에 들어가 따로 TV를 시청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아무 생각 없이 아내가 보는 드라마를 멍하게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끊임없이 쏟아지더군요. 머리는 별로 슬프지 않다고 말하는데 자꾸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눈물이 마구 흘러 나오는 겁니다. 얼마나 황당했던지. 최근에 성적 기능이 떨어져 영 자신감이 떨어지던 차에 드라마 보고 눈물까지 흘리는 제 자신을 보니 뭔가 큰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두려운 마음마저 듭니다. 선생님 제가 무슨 병이라도 걸린 건가요.


A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낯선 학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자 엄마가 얘기합니다. ‘남자는 울지 않는 거야. 우리 아들이 앞으로 울 일은 엄마 아빠가 하늘 나라 갔을 때뿐이야. 알았지? 씩씩하고 멋진 남자는 울지 않아’라고요. 우는 남자는 정말 인생의 ‘루저’(실패자)일까요.

 우울증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몇 배나 더 흔합니다. 그러나 자살률은 남성이 더 높습니다. 특히 중년을 넘어 노년에 접어들면 남성 자살률이 늘어나는 게 뚜렷하게 보입니다. 자살은 삶의 의미,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를 느끼기 못할 때 벌이는 극단적인 행동입니다. 노년기 남성 자살률의 증가는 남성이 점점 나약해지고 늙어가는 과정을 여성에 비해 잘 견디지 못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여자보다 강한 게 남자라는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황혼 이혼이 초혼 이혼을 앞섰다고 합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10년 정도 먼저 이런 현상이 시작됐는데, 황혼 이혼 5건 중 4건이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굿바이’ 하는 경우라고 하네요. 한 사회단체에서 60세 이상 여자 어르신 180명을 두고 강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짓궂게 ‘다시 태어나도 지금 배우자와 결혼하실 분 손들어 달라’고 여쭤 본 적이 있습니다. 전 최소 30명쯤은 손들 거라 예상했는데 딱 한 분만 손을 드셨습니다. 남자로서 배신감을 느꼈죠. 그래도 한 분이라도 손을 들어 다행이다 생각하고 강연을 계속했습니다. 손을 든 그 어르신은 결혼 생활이 정말 행복한지 이어지는 질문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셨죠. 좋은 사례를 더 탐문할 욕심에 강의가 끝난 후 그분 자리로 가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그분은 치매 환자셨습니다. 맨 정신에는 황혼기까지 남편을 사랑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대체로 공감 능력이 떨어집니다. 대신 전투 의지를 강하게 가지고 태어나죠.

 우리 사회는 또 어떻습니까. 강한 남자 콤플렉스에 걸리기 충분할 정도로 ‘남자는 강해야 하고, 강한 것이 아름답다’란 사회적 통념이 강한 탓에 남성 스스로 강한 남자 프레임(틀)에 갇혀 버리기 쉽습니다.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판단 기준입니다. 강한 것이 아름답고 선한 것이기에 남자는 울 수 없습니다. 우는 것은 지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강한 남자 프레임은 우는 남자는 자신의 가족을 지킬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고 규정 짓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잘 우는, 이른바 남성미 떨어지는 남자가 여자에게 더 사랑받고 잘사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울보는 루저여야 하는데 이상한 일 아닙니까.

 남자는 전투 능력이 강해서 단기전에 강합니다. 그러나 의학의 발달로 지금은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세상이 됐습니다.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을 벌여야 하는데 현대의 장기전에서는 취약합니다. 서로를 잘 보듬고 위로해 주는 네트워크 구축에 능한 여성이 장기전에 훨씬 유리합니다. 여성에게 우울증이 많다는 것, 이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자신의 감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위로할 여지가 큰 것입니다. 자신의 나약한 모습에 우울감을 느끼고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위로와 힐링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강한 것이 절대 가치이고 선이라고 규정하면 약함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자살은 우울할 수도 없는 감성 부적응의 행동학적 증상입니다.

 남자들 억울합니다. 남성미 넘치는 남성일수록 더 억울합니다. 남자가 공감 능력이 떨어지게 된 것은 사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과거 수렵 생활 시절 아내는 남편이 떠난 마을을 지키기 위해 서로 힘을 모아야 했습니다.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아이를 지키고 보호해야 했습니다. 어제 뒷담화하던 사이라도 필요하면 공감하고 하나가 돼야 했습니다. 그래서 여성은 끈끈한 정서적 네트워크를 잘 만들게 됐습니다. 그에 비해 남자는 이겨야 했습니다. 사냥에 나가면 한 마리의 짐승이라도 더 잡아야 했습니다. 눈앞에 사슴이 있는데 사슴이 불쌍하다 연민을 느껴 그냥 돌려 보내면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가 굶어야 했으니까요. 따뜻한 인간으로서의 공감 능력을 가족의 생존을 위해 버려야 했습니다.

 여자 어르신이 갖는 남편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내 입장에서 생각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성은 머리로는 여성을 배려한다고 하는데 정작 여성이 뭘 원하는 것인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걸 주면 좋아하겠지, 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일치하면 좋을 텐데 대부분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여자는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남자에게 지쳐가고 남자는 자신의 희생과 배려를 고마워하지 않는 여자에게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부끄럽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건 남자로서 금기이기에, 대신 화를 냅니다. 그러다 보면 점점 둘 사이가 멀어지는 슬픔이 생기죠.

 남자는 나이 들수록 점점 여성화한다고 합니다. 몸에서 여성 호르몬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라 하기도 합니다. 이 말을 언제 하는지 아시나요. 남자에겐 스스로 약해지는 상황을 한탄할 때, 반면 여성에겐 뒤늦게 친근함을 보이는 남자를 꾸짖을 때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남성이 여성화하는 건 아닙니다. 남자도 원래 여성만큼 섬세한 감성 시스템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단지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 뿐입니다. 갓난아기는 모두 웁니다. 여자아기만 울지 않습니다. 남자도 여자 이상으로 울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섬세한 존재입니다.

 전 남자가 잘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용기는 자신의 나약함을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감성 시스템에서 좋은 호르몬이 나오며 우리 마음의 불안을 달래주고 삶의 에너지를 충전해 줍니다. 드라마를 보며 끊임 없이 흘러 나오는 눈물은 수십 년간 남자로 살기 위해 희생했던 감성이 이제야 숨을 쉬며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감성은 언어가 아닌 눈물로 대화를 합니다.

 여성은 괜히 잘난 척하는 남자보단 삶의 우수에 젖어 고독함과 나약함을 보이는 남자한테 더 끌린다고 합니다. 남자의 눈물, 화병 예방에도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의 관심도 받을 수 있는 훌륭한 전략입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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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