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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소아과에 심부름센터 직원이 줄을 서지?

15일 오전 7시40분 세림의원 접수처 모습. 차례대로 대기 명단에 이날 병원을 찾을 아이 이름을 적고 있다. 줄 선 사람 대부분은 엄마 대신 온 아빠거나, 돈 받고 예약 대행을 해주는 심부름센터 직원이다.


뭐든 강남에서 살아남으려면 엄마들 입소문을 타야 한다. 언뜻 모순되게 들리지만 일부 ‘잘나가는’ 엄마의 독점적인 정보가 은밀하게 유통될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누구나 다 아는 정보가 아니라 소위 아는 사람만 안다는 정보를 입수했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특히 학원이나 병원 등 자녀와 관련한 소위 고급 정보는 엄마 권력을 높이는 주요 수단이다. 이렇게 유통될 정도라면 대체 어떤 수준일까. 오랜 대기시간에도 불구하고 강남 엄마들이 가고 싶어 한다는 강남구 신사동 세림의원에서 답을 찾아봤다.

글=송정 기자 , 사진=김경록 기자

어린 자녀를 둔 엄마라면 소아과에 대한 관심이 높다. 당연히 까다롭게 고른다. 원장의 경력은 물론 진료 시간, 항생제 처방 여부까지 꼼꼼하게 살핀다. 반말을 해도 실력만 있으면 좋다던 과거와 달리 실력은 기본이고 친절하기까지 한 의사를 찾는다.

 이렇게 눈높이 높은 엄마를 만족시킨다고 소문난 곳 중 하나가 세림의원이다. 이 병원은 지하철 압구정역에서 강남을지병원 사거리까지 이어진 성형외과로 가득한 거리에 위치해 있다.

 매일 오전 9시에 진료를 시작하는데 오전 7시 30분이면 어김없이 2층 병원 입구부터 1층 계단까지 줄이 길게 늘어선다. 휴일 전후인 토요일과 월요일은 줄이 더 길게 늘어선다. 대기자가 많은 날은 50명이 넘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줄 선 사람이 아이 들쳐 업은 엄마가 아니라 대부분 출근길에 홀로 들른 아빠이거나 헬멧 쓴 심부름센터 직원이라는 점이다. 굳이 수를 따지자면 최근 들어 아빠보다 심부름센터 직원이 더 많아졌다. 이들은 오전 7시 40분쯤 병원 문이 열리자마자 대기 명단에 아이 이름을 적고 사라진다. 진료는 오전 9시부터지만 대기자를 받기 위해 병원 문은 좀 더 일찍 연다.

 15일 병원 앞에서 만난 심부름센터 직원은 “부모 대신 줄 서고 기다리다 예약해주는 비용은 한 명당 1만원 정도”라며 “대기 명단에 이름을 적은 후 고객에게 순번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그는 “의뢰가 많은 날에는 한 번에 10명의 이름을 적고 갈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진료 시간에는 친한 엄마끼리 서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적어주기도 한다. 진료 받으러 온 김에 다른 엄마 이름을 적어주는 일종의 품앗이다.

 강남 엄마들이 많이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에는 “세림의원에 갈 거면 나 대신 이름을 적어달라”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병원에 가기 전 혹시 누군가 지금 병원에 있는지 미리 묻기도 한다. 대기순번을 미리 받아놓으려는 의도다. 이렇게 이름을 적어도 30분에서 1시간씩 기다리는 일이 보통이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순서를 기다린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많게는 3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진료시간 전 병원 밖의 풍경뿐 아니라 진료시간 병원 안의 진료실 풍경도 다른 소아과와 사뭇 달랐다. 13일 오후 병원 대기실은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잠시 후 “지훈이~”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 병원 임돈우(66) 원장 목소리였다. 다섯 살 먹은 아이는 꼭 자기 할아버지를 만난 듯 편안해 보였다. 임 원장이 손을 내밀자 냉큼 임 원장 품에 안겨서 대화를 나눴다. 임 원장은 증상은 아예 묻지도 않았다. 대신 “어떻게 지냈어” “지훈이 뭘 좋아했더라”와 같은, 할아버지와 손자가 할 법한 친밀하고도 일상적인 이야기만 계속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아이가 자연스레 “배가 아프다”고 먼저 말했다. 임 원장이 그제야 자세히 물었다. “쭉~ 계속 아파? 아니면 아프다, 괜찮다를 반복해? 혹시 토할 거 같아? 아니면 땡겨?” 이렇게 구체적으로 다양한 증상을 줄줄이 열거하자 아이가 그중 하나를 스스로 골랐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찰을 다 한 후에는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혹시 빠진 게 있는지 묻는다. 이때까지 엄마는 의사와 아이 사이에 끼어들지 않고 진료 과정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임 원장은 그 후 엄마가 해야 할 일을 일러준다. “모든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는 엄마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아이가 아프지 않도록 평소 바람직한 생활습관을 부모에게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아이와, 또 부모와 대화하고 궁금한 점에 답하다 보면 당연히 진료시간은 길어진다. 게다가 임 원장 책상 위에는 그 흔한 컴퓨터가 없다. 시간이 걸리지만 처방전을 일일이 손으로 적는다는 얘기다. 그는 “컴퓨터 화면을 보며 자판을 칠 시간에 아이와 한마디라도 더 나눠야 한다”고 컴퓨터를 쓰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진료 후 만난 임 원장은 “아무리 바빠도 진찰하기 전 아이와 먼저 대화하는 걸 빼놓으면안 된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대화는 의사와 환자인 아이 사이에 신뢰를 쌓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말조차 못할 정도로 어린 아이는 안아주고 눈을 맞춰가며 먼저 소통한다.

 여섯 살배기 딸을 데리고 병원을 찾은 최영은(36)씨는 “아빠한테도 잘 가지 않는 딸 아이가 원장님을 잘 따라 신기하다”며 “약을 잘 먹겠다고 원장님과 약속한 때문인지 아이가 집에서 먼저 약을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세림의원은 다른 병원에서 볼 수 없는 점이 많다. 진료실 문을 닫아놓거나 다른 환자와 보호자가 볼 수 없도록 공간을 배치한 다른 병원과 달리 세림의원 진료실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원장 맞은편 소파에는 아예 다음 차례의 엄마와 아이가 앉아서 진료 과정을 지켜본다. 임 원장은 “간혹 사생활 침해가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소아과는 산부인과와 다르다”며 “모두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다른 아이의 진료를 보고 듣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엄마는 "좁은 대기실에 아픈 아기들을 모아놓는건 문제”라고 지적한다.

 세림의원을 찾으면 오래 기다려야 하고 진료시간 자체도 길다. 하지만 그 바쁘다는 톱 클래스 연예인 중에도 이곳 단골이 적지 않다.

 이 같은 세림의원의 인기는 오로지 임 원장의 소통 덕분일까. 물론 아니다. 실력이 우선이다. 임 원장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전문의를 따고 뉴욕대 의대에서 진료를 보던 실력파다. 그의 아버지는 1964년부터 9년 동안 세브란스 병원장을 지냈던 고(故) 임의선 박사다. 박근혜 대통령과 동생 박지만씨의 어린 시절 주치의였다고 한다. 지금 병원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것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일부선 "엄마의 허영을 자극하는 마케팅이 성공한 것”이라고 말한다. 약은 물론 면봉까지 미국제품을 쓰라고 하는 등 지나친 미제 선호가 그 중 하나다. 임 원장은 “약이 아니라 진료방식이 미국식”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미국 병원에서 오랜 시간 근무했기 때문에 미국 약에 익숙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무작정 미국 약을 처방하는 게 아니다”고 했다.  

제약회사에 약 샘플을 요청해 직접 먹어보는 것도 임 원장만의 독특한 방식이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 해도 아이들이 먹기 싫다고 뱉어 버리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맛은 어떤지, 목 넘김은 괜찮은지, 냄새는 고약하지 않은지 등을 세세하게 살핀다. 폐렴 등이 아니면 되도록 항생제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2012년 상반기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선정하는 항생제 덜 쓰는 그린처방의원에 선정되기도 했다. 주사를 처방하는 경우도 드물다고 한다. 먹는 약이 주사에 비해 치료 시간이 더 걸리지만 병원에 대한 아이들의 공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원장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를 나누면 아이가 행복을 느끼고 이는 엔도르핀을 만들어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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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