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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우린 왜 보수가 됐나

강남 3구. “여당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당선된다”는 인식 때문에 늘 본선보다 치열한 예선전이 벌어지는 곳이다. 2010년 지방선거만 봐도 알 수 있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무명의 서울시 공무원 출신 신연희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한 현직 구청장 맹정주 후보를 누르고 강남구청장에 당선됐다. 하지만 강남이 원래 여당 텃밭이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야당 성향이 강했다.

한 지역구에서 두 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중선거구제 시절인 1985년엔 강남구가 서울에서 유일하게 여당 후보를 낙선시켰다.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 이태섭 후보는 신민당 김형래, 민한당 이중재 후보에게 밀려 금배지를 달지 못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총선과 대선에서는 야당 후보와 큰 격차로 여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야당에 등 돌린 강남 시니어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이들은 왜 돌아선 걸까. 부동산 관련 세금 이슈가 컸다. ▷관련기사 이어보기

글=안혜리 기자 , 사진=김경록 기자

강남 3구 역대 선거 살펴봤더니

“우리가 다 투기꾼인가 세금 폭탄 때리게 … 그래서 표로 응징했다”


“왜 이렇게 자꾸 웃음이 나는지…. 그때는 진짜 자다가도 너무 기분이 좋아서 웃음이 실실 나더라니까요.”

대치동에 사는 이모(71·여)씨는 이 말을 하면서도 또 웃었다. 혹시 로또라도 당첨됐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씨를 자꾸 웃게 만든 건 지난해 말 대선 결과였다.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대선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펼치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승리한 게 그렇게 좋더란 얘기다.

메트로G팀=안혜리·김성탁·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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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박 후보의 당선으로 득 볼 것 하나 없는 사람이다. 가족 중 누가 박 후보 당선을 위해 직접 선거운동을 했거나 당선 후 요직에 갈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씨는 선거 당일 일종의 무료 문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카카오톡(카톡)을 주고받으며 비슷한 또래의 지인들에게 투표를 독려하고 박 후보 당선을 기원했다. 노무현 정부에 몸 담았던 문 후보가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이번 대선은 세대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세대 간 지지 후보가 뚜렷이 갈렸다. 출구조사 분석 결과 고령층의 투표율이 예상보다 높았던 것은 물론 젊은 층에 비해 여당 박근혜 후보를 더 많이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똘똘 뭉쳐 새누리당을 지지한 것이다. 특히 강남 지역은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대체 무엇이 강남 시니어를 움직인 것일까.

 지금은 지역색이 좀 덜해졌다고 해도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주의는 여전하다. 지난 대선에서 박 후보가 호남에서 두 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광주광역시 유권자는 문 후보에게 92% 몰표를 줄 정도로 이른바 ‘영남 세력’에 완고한 벽을 쌓고 있다. 대구시 유권자 역시 박 후보에게 80.1%의 표를 몰아줬다. 어떤 인물이냐보다는 그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당의 후보에게 무더기 표를 안겨주는 현상이 여전한 것이다.

 지역색이 비교적 옅어 선거마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경우가 많은 서울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강남3구, 그중에서도 특히 강남구와 서초구다. 지난 대선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 총선이나 지방선거,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이르기까지 각종 선거에서 현재의 여당인 새누리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새누리당 후보라면 국회의원이든 구청장이든 늘 누가 나와도 깃발만 꽂아도 당선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다들 강남은 과거부터 늘 그래왔으려니, 언제나 지금의 여당 세력을 지지했으려니 하고 짐작한다. 심지어 강남 사람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강남의 정치지형은 과거에는 지금과 달랐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만 해도 강남은 오히려 야당 후보를 더 많이 뽑은 야구(野區)였다.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 [중앙포토]
강남, 원래 친여 지역 아니다

 江南通新이 강남·서초·송파 지역구의 역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분석했더니 강남 3구는 원래부터 현재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보수 정당의 아성이 아니었다는 게 확연히 드러났다. (표 참조)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인 88년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은 강남 3구 6개 지역구에서 이태섭(강남을) 당선인 한 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나머지 지역구는 서초갑에 무소속 박찬종, 서초을 통일민주당 김덕룡, 강남갑 통일민주당 황병태, 송파갑 통일민주당 김우석, 송파을 평화민주당 김종완 후보가 차지해 오히려 야당 돌풍을 일으켰다. 한 지역구에서 두 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중선거구제였던 85년엔 여당 후보는 아예 한 명도 당선하지 못했다.

 92년 14대 총선 결과도 비슷하다. 민정당이 제2야당인 통일민주당,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해 민주자유당(민자당)을 꾸린 상태에서 치러진 이 선거에서조차 민자당 후보는 과거 통일민주당 소속이던 김덕룡 후보가 서초을에서 승리했을 뿐 다들 고배를 마셨다. 압구정동 등이 있는 강남갑에선 통일국민당의 김동길, 강남을은 민주당 홍사덕, 서초갑 신정치개혁당 박찬종, 송파갑 통일국민당 조순환, 송파을 민주당 김종완 등 야권 후보가 줄줄이 당선됐다.

 그러나 20년이 흘러 지난해 4월 치러진 19대 총선에서는 강남3구의 7개 지역구는 모두 새누리당 차지였다. 야당은 이전 총선 때 한 석을 건졌던 송파병까지 새누리당에 넘겨줬다.

강남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많은 정치·경제 전문가들은 부동산과 세금 등 경제 이슈가 정치를 좌지우지한 결과로 분석한다. 이 지역 땅값, 아파트 값이 계속 오르고 이제는 아파트 노후화에 따라 재건축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강남의 정치지형이 꾸준히 보수화했다는 얘기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 도입한 종합부동산세(종부세)는 여기에 기름을 붓는 계기로 작용했다. 여야간 비슷했던 득표율은 종부세 부과 이후 여당(현 새누리당)에 확 쏠렸다.

종부세는 당초 국세청 기준시가 9억원(현재 개인별 6억원)을 초과하는 비싼 집을 갖고 있으면 누구나 내야 하는 세금이었지만 강남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첫 도입된 2005년에 전체 부과 대상 아파트의 64%가 강남구에 집중된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세금 폭탄이라는 말은 그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강남 주민, 특히 이미 은퇴해 고정 수입이 없는 강남 시니어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이나 다름 없었다. 원래 세금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집 한 채가 재산의 거의 전부인 마당에 약간의 연금과 이자로 쓰던 생활비를 고스란히 세금으로 털어내야 한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종부세로 완전히 돌아선 강남 시니어 민심

 은퇴 후에도 계속 강남에서 생활하려면 어느 정도 비용이 필요할까.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사는 최모(71)씨는 생활비만 200만~250만원이 들고, 관리비와 각종 세금까지 합하면 월 4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씨는 “집 한 채 외에는 딸들이 주는 용돈과 국민연금, 약간의 주식투자로 버는 돈으로 생활한다”며 “나 정도면 강남에서 겨우 생활을 이어가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런 마당에 한 번에 1000만원대의 세금이 생겨난 것이다.

 종부세에 대한 강남의 거부감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강남갑 당선자인 한나라당 이종구 후보는 64.9%를 얻었지만 통합민주당 김성욱 후보는 18.3%에 그쳤다. 타워팰리스에 설치된 도곡2동 투표소에서 민주당 김 후보의 득표율은 불과 5.5%였다. 15, 16, 17대 총선만 해도 민주당과 흐름을 같이해온 정당의 후보들은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강남 지역에서 30~40% 득표를 받아왔다. 종부세 이후 그야말로 야당 표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이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무현 정부 때는 종부세 외에도 재산세 부담이 늘어나고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등 대출 규제까지 강화하면서 강남뿐 아니라 강북 아파트 지역에서도 불만이 나왔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강남의 충격이 훨씬 컸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강덕기 전 서울시장 직무대행은 “재산 관련은 국세나 지방세로 이미 징수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종부세를 만들어 시민들의 생각을 어지럽게 했다”며 “부자와 기업을 죽이겠다는 것이냐는 역풍이 불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현대아파트에 사는 최씨는 “종부세 충격은 지금도 주민들에게 강하게 남아있다”며 “당시 한 해에 1200만원가량을 세금으로 냈는데 내가 부동산 투기꾼이었거나 아니면 최소한 집을 여러 채라도 가졌다면 몰라도 수십 년째 사는 집 딱 한 채뿐인데 세금 폭탄을 맞으니 억울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종부세 같은 충격은 다시 겪고 싶지 않다”며 “지난해 말 대선에서도 지역 노인들이 모두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고 덧붙였다. "표로 응징했다”는 것이다.

 대치동 키즈 출신인 떡집 ‘합’ 오너 셰프인 신용일(41)씨한테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신 셰프는 “동생이 외국계 은행에 다니던 아버지와 정치적 견해 차이로 늘 다투는 게 마음에 안 든다”며 “종부세 당시 부모님이 받은 충격을 목격한 터라 내가 동의하든 안 하든 아버지의 정치적 시각을 이해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 세대 다른 사람과 달리 은퇴 후 계획을 치밀하게 짜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종부세로 은퇴 후 쓰려던 재산을 세금으로 다 내야 하는 지경에 이르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부동산값 오르며 보수화

 물론 종부세 부과 이전에도 강남은 이미 보수화한 상태였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96년 15대 총선에서는 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꾼 여당이 후보 물갈이에 나서면서 강남 3구 7개 지역구(송파병 신설) 중 5곳을 차지했다. 김대중 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후 2000년 치러진 16대 총선 역시 신한국당에서 이름을 바꾼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였다. 송파을 새천년민주당 김성순 후보를 제외하고 나머지 지역구는 모두 한나라당에 돌아갔다.

 2001년 이후 강남 아파트값 대세 상승기가 시작되자 표쏠림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실시된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송파병 열린우리당 이근식 후보를 빼고는 강남 3구 전 지역구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아파트를 사면 가격이 오르길 바라고 재개발·재건축이 빨리 진행됐으면 하는 표심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정치권에서 “국민주택 규모인 85㎡ 이상 아파트만 사면 한나라당 지지자가 된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종합부동산세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부터 고가(高價) 부동산 소유자에게 재산세와 별도로 매긴 세금. 누진세율이다. 도입 당시 국세청 기준시가 9억원 초과 주택이 부과 대상으로, 개인별로 합산해 부과했다. 그러나 정부는 같은 해 12월 6억원 초과, 세대별 합산으로 기준을 강화했다. 2008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따라 다시 개인별 합산으로 바뀌었다. 2009년부터 개인별 6억원(1가구 1주택은 9억원) 이상 주택에 과세하고 있다.

총부채상환비율
(DTI·Debt to Income)


연간 소득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노무현 정부 때 집값이 급등하자 소득수준을 넘는 과도한 대출을 받아 집 사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했다. 2006년 당시 정부는 투기지역의 DTI는 40%로 규제했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무주택 및 1가구 주택자 대출에 한해 DTI의 한시적 자율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현재는 소득에 따라 30~60%로 차등 적용하고 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김영삼 정부 때인 1996년 개인별 연간 금융소득이 4000만원을 초과하면 금융소득을 다른 종합소득과 합산해 과세하기로 했다. 97년 외환위기를 맞아 전면 유보했다가 김대중 정부인 2001년 다시 도입했다. 2002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따라 부부합산이 폐지되고 개인별 과세로 변경됐다. 올해부터 과세 기준이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강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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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