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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시촌, 최고 부촌 만든 우런바오 전 서기 별세

42년간 일군 화시촌을 배경으로 웃고 있는 우런바오 전 서기. [사진 중국 신경보]
중국 8억 농민의 우상이 18일 폐암으로 세상을 떴다. 장쑤(江蘇)성 장양(江陽)시 화시(華西)촌을 최고 부촌(富村)으로 만든 우런바오(吳仁寶) 전 화시촌 당 서기다. 85세.

 그가 한평생을 바친 화시촌은 중국 천하제일촌으로 불리며 사회주의 농촌개발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그는 생전 ‘중국의 리콴유(李光耀)’ ‘화시촌의 덩샤오핑(鄧小平)’으로 존경을 받았다. 화시촌의 지난해 말 현재 지역 총생산액은 500억 위안(약 8조9천억원), 개인 평균 소득이 8만8000위안(약 1570만원, 1만4100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중국 1인당 소득(6200달러)의 2배가 넘는 액수다. 60년대 호구를 가진 인구가 2000여 명이었으나 현재 상주 인구는 3만~5만 명까지 늘었다.

 그는 1961년~2003년까지 42년 동안 화시촌 당서기를 맡았다. 1978년 중국 개혁개방 이후 마을에 ‘집단경제, 공동부유’ 발전모델을 도입했다. 농민들이 자신의 능력대로 투자해 공동 회사를 세운 뒤 공동 경영하는 시장경제 방식이다. 당시로선 아무도 이런 창조적 모델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세운 회사가, 현재 화시촌 내 대부분 기업의 경영권을 소유한 화시집단공사다. 농산물 가공업에서 시작한 회사는 현재 제조업과 호텔·여행업으로 확대됐다. 2011년에는 72층짜리 호텔도 세웠다. 매년 200만 명씩 몰려오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화시촌은 부자가 됐지만 그는 청렴한 공직자로 살았다. 당서기가 된 이후 평생을 계란탕과 국수로 식사를 했으며 사치를 경계했다. 2003년 그는 선거를 통해 당서기 자리를 아들인 우셰언(吳協恩)에게 물려주고 전국을 돌며 화시촌 성공모델을 전파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18일 그의 사망소식을 전하면서 ‘중국 최고 농민 개혁가’로 호칭했다.

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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