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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중국은 참으로 알기 어렵다. 서열도 그중 하나다. 중국 권력 서열은 당 서열로 따진다. 시진핑(習近平)은 지난해 11월 당 총서기에 올라 13억의 1인자가 됐다. 그러나 지난 1월 양바이빙(楊白氷) 장군의 장례식 때 발표된 지도자 랭킹은 후진타오(胡錦濤)→시진핑 순이었다. 당시 국가주석 후진타오가 1위를 지켰다. 국가주석은 허직(虛職)이다. 법률 공포와 총리 등 주요 각료를 임면할 수 있지만, 그 권한은 반드시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의 결정에 따라 이뤄져야 하는 것으로 형식적이다. 그럼에도 후진타오는 1위의 예우를 받았다.

중국은 참으로 알기 어렵다. 시진핑의 경력도 그렇다. 칭화(淸華)대학 졸업 후 그의 첫 직장은 군(軍)이었다. 겅뱌오 중앙군사위원회 비서장의 비서로 3년 정도 근무했다. 그러다 뜻한 바 있어 군을 떠났다. 이후 기층(基層)인 허베이(河北)성 정딩(正定)현을 시작으로 푸젠(福建)성과 저장(浙江)성, 상하이(上海) 등에서 관료 생활을 했다. 한데 최근 중화권 언론에 따르면 시진핑은 군을 떠난 적이 없다고 한다. 정딩현에서는 무장부대 제1 정치위원, 푸젠성에서는 푸저우(福州) 군(軍)분구 당위원회 제1서기 등을 겸임했다. 저장성에선 저장성군구 당위원회 제1서기, 상하이에선 상하이 경비구 당위원회 제1서기를 맡았다. 줄곧 현역이었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시인 칼 샌드버그는 ‘인생은 양파와 같다’고 했다. ‘한 번에 한 꺼풀씩 벗기다 보면 눈물이 난다’는 것이다. 중국 알기도 양파와 같다. 눈물이 날 때가 많다. 그렇다고 중국 공부를 게을리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우리의 명운(命運)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지난주 국가주석 자리마저 물려받아 명실공히 중국의 1인자가 됐다. 시진핑의 중국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1949년 건국 이래 중국엔 흔히 두 개의 30년이 있었다고 일컬어진다. 마오쩌둥(毛澤東)의 30년과 덩샤오핑(鄧小平)의 30년이다. 마오의 30년은 배고프고 추웠다. 그러나 관료는 비교적 청렴했고 민중은 단결했다. 덩의 30년 동안 배고픔은 추억이 됐고 국력은 신장됐다. 그러나 빈부격차가 커졌고 부패는 분노를 낳고 있다.

 이에 덩샤오핑을 비판하는 두 그룹이 생겼다. 덩샤오핑은 원래 양수론(兩手論)을 주장한 인물이다. 오른손으로는 개혁개방을, 왼손으로는 공산당 영도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같은 4개 사항을 꽉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덩샤오핑을 비판하는 그룹 중 마오쩌둥을 그리워하는 쪽은 덩의 오른손을 공격한다. 덩이 걸었던 ‘자본주의 길(走資)’ 노선을 부정한다. 반면 또 다른 비판 그룹인 헌정민주파(憲政民主派)는 덩의 왼손을 비난한다. 법치(法治)를 강조하는 이들은 공산당 전제정치에 반대한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을 ‘중국의 꿈(中國夢)’으로 제시한 시진핑이 걷고자 하는 길은 무언가. 그가 연초 중앙당교에서 행한 연설을 주목해야 한다.

 시진핑은 “개혁개방 전후의 역사는 서로 부정되는 게 아니다”며 마오의 30년과 덩의 30년은 “서로 대립하는 것도, 또 서로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동안 마오와 덩의 시기를 철저하게 구분해 온 기존 관점과 차이가 있다. 마오가 사회주의 기본 제도를 쌓았기에 그 토대 위에서 덩의 개혁이 가능했다는 해석이다.

 중국 민간에서 떠도는 ‘중국을 일으켜 세운 건 마오쩌둥이요, 살찌운 건 덩샤오핑’이라는 말과 맥이 닿아 있다. 시진핑은 마오의 30년과 덩의 30년 등 60년 모두를 아우르려 한다. 그런 시진핑의 행보에 대해 등체모용(鄧體毛用)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의 것을 기본으로 하되 서양의 것을 활용한다는 중체서용(中體西用)에 빗댄 표현이다. 덩샤오핑의 실용적인 경제발전 노선을 계속 추구하되, 군중의 힘에 의존하려 했던 마오쩌둥 스타일을 차용하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시진핑이 당 총서기 취임 이후 처음으로 지방 행차에 나섰던 지난해 연말의 광둥(廣東)성 선전 시찰이 그 좋은 예다.

 당시 시진핑은 1992년 덩샤오핑이 광둥성 등 남부를 돌며 개혁개방을 재차 강조했던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흉내 내는 것으로 개혁개방 노선 고수를 천명했다. 이와 함께 군중의 힘에 의지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마오쩌둥의 군중 노선도 과시했다. 시진핑은 경찰차가 그를 위해 길을 내거나 막지 못하게 했다. 붉은 카펫을 치우고 그 자신이 직접 군중 속으로 걸어 들어가 군중과 함께하는 기풍을 선보였다.

앞으로 시진핑의 중국은 실리는 철저하게 챙기되 민중의 정서와 함께 호흡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민중은 흥분하기 쉽다. 또 강경하고 분명한 주장을 따른다. 시진핑의 중국은 강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 북핵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이익에 반할 경우 북한을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과의 센카쿠 열도(尖閣·중국명 釣魚島) 영유권 분쟁에서도 굳이 물리적 충돌을 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모름지기 군이란 “부르면 와야 하고 오면 싸울 줄 알아야 하고(來之能戰) 싸우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戰之必勝)”는 시진핑의 말에선 강함을 넘어 거친 모습이 엿보인다.

 우리는 현재 19세기 중엽 이래 가장 강력한 중국의 등장을 보고 있다. 그 중국을 수교 당시 등과 같은 과거의 잣대로만 보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될 것이다.

유 상 철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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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