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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건축은 ‘바벨탑 쌓기’가 아니다

한은화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란 말이 있다. 1989년 포춘지가 명명해 유행한 단어다. 돈 많고 성공한 남자일수록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배우자로 맞으려 하는 세태를 빗댔다.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세 번 재혼한 미국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대표적인 ‘트로피 와이프’ 수집가로 꼽힌다.

 건축업계에도 여기서 유래한 단어가 있다. ‘트로피 건축’이다. 현대 도시가 기념비적인 대형 건물을 지으려고 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20세기 초 미국 뉴욕이 102층짜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지으며 ‘트로피 건축’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중동과 아시아 도시로 확산됐다. 수학자 존 캐스티는 『대중의 직관』에서 “어떤 사회가 미래를 낙관하면서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자 노력할 때 손쉬운 방법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짓는 일”이라고도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이 트렌드를 그대로 좇았다. 2000년대 중반 서울·수도권 일대에서 100층 이상의 초고층 빌딩 건설 계획이 쏟아졌다. 결과는 9곳 중 8곳의 사업이 백지화 위기에 놓였다. [중앙일보 3월 19일자 1, 2면]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평당 건축비가 몇 배로 비싼 건물을 지을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이 사라진 탓이다.

 비단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실제 쓰임보다 외양에 중점을 둔 트로피 건축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일고 있다. 세계 건축의 트렌드를 엿볼 수 있는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의 2014년 주제어는 ‘근본(fundamental)’이다. 트로피 시대의 거품에서 벗어나 건축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자는 제스처다. 지난해 주제어인 ‘공통 토대(Common Ground)’를 통해 “사람의 공간에 집중하자”던 목소리와 하나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초고층 건물의 폐쇄성을 걱정한다. 높고 거대한 건물 하나가 우뚝 서서 도시 공간을 삭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건물 밖에 나가면 아무것도 없는 대만의 초고층 건물 ‘타이베이 101’이 이를 증명한다. 서울대 김광현(건축학과) 교수는 “도시는 건물의 저변부가 넓게 발달해야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며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도시가 뉴욕이다. 뉴욕의 비즈니스 구역엔 초고층 건물도 있지만, 30층 규모의 빌딩군이 고르게 밀집해 있다. 사람들은 이 구역 내에서 건물 사이를 걸어 다니며 이야기를 만든다. 정오가 되면 거리의 악단이 연주를 하고, 직장인들은 그들을 구경하면서 샌드위치를 먹는다. 외국인들은 이를 ‘뉴욕의 낭만’으로 여긴다. 이렇듯 ‘트로피 건축’으로 성장을 으스대는 시대는 이제 유효기간이 지났다. 이른바 스토리텔링 시대, 도시의 생명도 이야깃거리에 있다.

한 은 화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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