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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유명무실한 임기제는 차라리 폐지하자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2004년) 경찰청장 임기제가 도입된 이후 6명의 청장 중에 1명만이 법정임기(2년)를 다 마쳤다”며 “경찰청장 임기를 반드시 보장하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지난해 10월 19일 새누리당 당사에서 경찰 관련 공약을 발표하면서다. 박 대통령은 당시 “경찰 조직이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면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하겠다”며 임기 보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제 임기를 다 채운 경찰청장은 7명 중 1명으로 바뀌었다. 임기 보장을 내걸었던 박 대통령이 지난 15일 갑자기 김기용 경찰청장을 갈아치웠기 때문이다. 김 청장의 임기는 13개월이나 남아있는 상태였다. 박 대통령이 왜 김 청장을 교체했는지에 대해 청와대는 아무런 공식 설명이 없다. 다만 비공식적으로 흘러나오는 얘기론 임기 보장은 박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부터 해당되는 원칙이라고 한다. 어딘가 군색해 보이는 변명처럼 들린다. 야당으로부터 “대통령의 약속 위반”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그러나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중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검찰·경찰·감사원과 같은 기관은 대통령이 권력을 운용하는 데 핵심적 기능을 하는 부처다. 이런 곳에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는 인사를 앉히는 것은 성공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프로세스일 수 있다. 아마 민주당이 집권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특히 평소에도 권력기관의 수장을 겨냥한 온갖 음해와 루머가 난무하는 판인데 정권교체기엔 오죽할까. 대통령이 임기를 보장해주고 싶어도 주변에서 워낙 말들이 많아 오래 버티기가 어렵다. 김기용 청장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얘기가 박 대통령 귀에 들어갔던 모양이다.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어청수 경찰청장도 이명박 대통령의 재신임을 받았지만 결국 1년을 못 채우고 떠났다.

 경찰청법에 청장 임기제를 도입한 취지는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고 잦은 청장 교체에 따른 조직의 동요를 막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현실과 안 맞아 지키지도 못하는 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논란은 경찰청장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검찰총장 2년 임기제는 1988년 도입됐지만 그 후 임명된 17명 가운데 임기를 다 채운 총장은 6명에 불과하다. 심지어 헌법에 임기 4년과 한 차례 중임이 보장된 감사원장조차 대통령이 마음먹으면 바뀐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자 김영준 감사원장이 곧바로 사퇴했고,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3개월 만에 전윤철 감사원장이 물러났다. 지금도 임기가 2년 남은 양건 감사원장의 교체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임기제인 주요 공기업 사장, 금융지주사 회장들도 물갈이 태풍에 휘말린 상태다.

 이쯤 되면 유명무실해진 임기제는 차라리 없애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아니면 적어도 임기제 조항 뒤에 ‘단 정권교체 시엔 예외’란 단서라도 달자. 씁쓸해도 현실을 인정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김 정 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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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