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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가난·굶주림 그 충격적인 장면도 한낱 구경거리일 뿐

문제가 있는 곳에 사진이 있었다. 이제는 거꾸로 사진이 있는 곳에 문제가 생긴다.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 지하철 전동차에 치여 숨진 한인 사고가 대표적인 경우다. 남자가 철로에 떨어지게 된 이유도 이유지만 타블로이드판 신문인 뉴욕 포스트지 표지에 실린, 이 남자가 전동차에 치이기 직전에 찍힌 사진이 더 문제가 됐다. 위기의 순간에 사진을 찍고 있던 기자에 대한 도덕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있었다면 사진을 찍는 대신 사람을 구했어야 했다. “오늘날에는 모든 것이 결국 사진에 찍히기 위해 존재하게 돼 버렸다”라는 수전 손택(1933~2004)의 암울한 결론을 되씹게 한 사건이었다.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 <43>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와 『타인의 고통』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게 만드는 사진
수전 손택은 그 이름만으로도 독특한 아우라를 갖는다. 미국의 패권주의를 여러 차례 경고한 미국 지식인. 그녀의 글은 지적이며 섬세하고 날카롭다. 색으로 표현하면 아주 세련된 회색이고, 온도로 표현하면 마음이 살짝 데일 만큼이다. 잘 알려진 그녀의 두 책『사진에 관하여』(이후, 2005)는 1977년, 『타인의 고통』(이후, 2004)은 2004년에 처음 발간됐으며 명백한 연장선상에 있다. 두 책 사이에 있는 27년간의 시간은 수전 손택의 생각이 깊어지고 명료해지는 시간이자 불행하게도 그녀의 예측이 올바른 것이었음이 증명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저녁 뉴스 시간 저 먼 다른 나라의 전쟁 소식, 자연재해, 굶주림, 강도, 강간, 살인, 화재 등 각종 사건사고 소식이 안방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우리는 태연히 앉아 그 재앙의 이미지들을 본다. 디저트를 먹다 혀를 끌끌 차기도 하고, 적당한 분노를 표하기도 하면서. 그런 재앙의 진원지가 우리로부터 멀면 멀수록 안도감은 더욱 커간다. 낯선 곳에서 벌어지는 고통은 철저한 타인의 것, 이국적인 것, 구경거리일 뿐이다.

이 사태의 핵심에는 사진이 있다. 잔혹한 사진 이미지들은 처음엔 충격을 주지만 결국에는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우리를 만들어낸다. 조금 산만하기는 하지만 『사진에 관하여』는 사진이 어떻게 근대적 시각을 만들어나갔는가, 자본주의 사회와 공모했는가라는 문제를 정조준한다. 『타인의 고통』에서는 어떻게 사진이 전쟁미학을 위해 복무하는가를 분석한다. 현대 사회의 주요한 이미지는 동영상(움직이는 사진)이건 포토샵에 의한 이미지 변조이건 기본적으로 사진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사진’을 문제 삼는 손택의 논의는 아직도 유효하다.

도로시아 랭의 사진들. 1 ‘밥 레몬스(1936)’. 1850년 텍사스 카리조 스프링스 지역에서 노예로 태어난 노인을 피사체로 삼았다. 2 ‘이민자 어머니(1936)’. 3 ‘가난한 어머니와 아이들(1936)’. 캘리포니아에서 촬영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사진은 풍요롭고, 낭비를 일삼으며, 만족할 줄 모르는 사회의 본질적인 예술”이다.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면서 진전해온 자본주의 자체가 사진의 무한한 이미지 생산 능력과 공조해 왔다는 것이 손택의 주장이다. 19세기에 처음 등장했을 때 사진은 가장 완벽하고 객관적인 세상의 재현을 자랑했다. 카메라라는 기계장치를 경유해 얻어지는 사진은 작가의 주관을 배제한 객관적인 것처럼 보였다. 과연 그럴까. 아니, 사진의 역사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사진도 회화나 데생처럼 이 세계를 해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것이기도 했다. 에드워드 웨스턴의 사진처럼 피망은 순식간에 사람의 에로틱한 감정을 담아내는 어떤 초현실적인 존재가 되고 만다.(도대체 피망이 무슨 죄란 말인가!)

‘카메라를 든 사냥꾼들’은 수없이 셔터를 눌러대며 전 세계의 구석구석을 찍어댔다. 세상은 점점 사진으로 변해갔다. “세상에 대한 이미지들이 쌓여갈수록 세상은 해석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가 돼 간다.” 세계는 무한해졌고, 우리는 점점 바보가 돼 간다.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관광객이 돼 그 사회의 표면만을 기록해 왔다. 제3세계의 가난과 기아도 하나의 구경거리로 변화하고 말았다. “산업화된 사회는 시민들을 이미지 중독자로 만들어 버린다. 사람들은 경험한다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으로 자꾸 축소하려 한다. 우리는 결국 세계의 고통의 본질을 제대로 모르면서 ‘아는 사람’이 돼 버렸다”고 손택은 통렬하게 비판한다. 이 대목에서 다시 『사진에 관하여』는 후에 쓰일 『타인의 고통』으로 연결된다.

필요한 건 값싼 연민 말고 공감인데…
정보 전달 속도가 빨라질수록 사진의 ‘피할 수 없는 부정적인 효과’도 가속화된다. 어떤 악행이나 불행을 담은 사진이든 포르노그라피든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 “계속 보다 보면 퇴색된다”는 법칙이 지배하게 된다. 우리는 잔혹한 재난과 전쟁의 이미지를 보면서 혀를 몇 번 차고 마는 무감각한 현대인, 좀처럼 감동도 하지 않고 좀처럼 자극도 받지 않는 고무줄 같은 신경을 가진 현대인들이 됐다. 더러 연민도 느낀다. 이 연민의 핵심은 ‘무능력함’에 대한 인정일 뿐만 아니라 ‘무고함’에 대한 증명일 뿐이다. 적당히 책임을 떠넘기려는 이런 감정적인 면피 따위는 때려치우라고 그녀는 말한다.

손택은 전형적인 매체 비관론자다. 사진에서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 물론 그녀가 어떤 특정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기본적인 태도를 확인하고 요구한다. 값싼 연민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공감의 능력이야말로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키고 지금까지 살아낼 수 있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능력이었다.

그녀는 실제로 코소보 사태가 벌어졌을 때 몸소 현장으로 뛰어갔었다. 실천은 그녀의 글에 무게를 실어 주었다.

『타인의 고통』은 당대적 실천에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글들이지만 2004년 그녀가 사망한 뒤에도 책들은 여전히 살아서 세대를 넘어 유효하게 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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