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연예인 협찬 안 하고 컬렉션 안 나가도 알아서들 찾아오네요

안씨는 인터뷰를 하면서도 사진 촬영을 정중히 거절했다.
그의 이름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3년 전 한 잡지의 단신 기사. 안태옥(32)이라는 국내 디자이너가 ‘스펙테이터’라는 브랜드를 냈는데, 트렌드한 디자인보다는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 계획이라는 내용이었다. 디자이너 브랜드가 또 하나 나왔구나, 그냥 무심히 넘겼다. 이후 몇 번 다른 잡지에서 그를 더 크게 다뤘지만 감흥이 그리 새롭진 않았다. 2001년 한국패션대전 대상, 이탈리아 패션스쿨 마랑고니 유학, 안토니오 베라르디와 몇 개의 국내 브랜드에서의 경력 등이 열거됐음에도 ‘요즘 이 정도 스펙 없는 디자이너가 있나’ 싶었다. 솔직히 매년 봄·가을로 ‘신진’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새로운 얼굴을 익히는 것만도 벅찼다.

스타일#: 디자이너 안태옥의 조용한 도전

그러다 다시 눈길이 간 게 불과 2주 전이다. 3일자 중앙SUNDAY에 실린 ‘명품시장 3.0’ 기사에서 그의 브랜드를 발견하고서다. “신세계백화점의 고가 의류 편집매장 ‘마이분’에선 올 초 이변이 일어났다. 지난해 판매 실적을 집계한 결과 알렉산더 매퀸, 발렌시아가 같은 쟁쟁한 수입 브랜드를 제치고 국산 의류 브랜드 ‘스펙테이터’가 의류 매출 3위에 오른 것….” 실적에 따라 사람 보는 눈이 달라지는 얕은 안목이 부끄러웠음을 인정하면서 그를 만나보기로 했다.

서울 이태원동에 있는 매장은 요상했다. 간판도 없는데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3층 건물 꼭대기였다. 이런 데를 누가 찾아와 옷을 살까 싶은데, 그는 “알 사람은 다 알아서 찾아온다”고 했다. 브랜드의 매니어층이 제법 된다면서, 연예인도 혼자 와 쇼핑을 한다는 자랑도 곁들였다.

돌직구를 던져봤다. 그렇게 잘나가는데 왜 정작 국내 컬렉션엔 나가지 않느냐고. 디자이너라면 가장 꿈꾸는 무대가 아니냐고. 그는 당돌했다. 일단 옷을 보여주는 취지가 자신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컬렉션은 디자이너와 바이어가 만나는 중요한 기회잖아요. 정말 제 옷을 마음에 들어 사 가는 바이어가 있어야죠. 그런데 서울패션위크에 오는 바이어들은 재고 부담은 지지 않고 위탁 판매를 해주겠다는 거니까 제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에요. 이름을 알리기 위해 나가는 거라면 전 그런 경력 없이도 잘나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면서 스타일리스트들을 통해 연예인 협찬으로 옷을 입힐 생각도 없고, ‘대중과 만나야 하는 건 디자이너가 아닌 옷이기에’ 언론과 인터뷰를 해도 사진 촬영을 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한다고 했다.

대신 그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었다. 옷부터 그랬다. 매 시즌 주제에 따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튼튼하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소재를 찾아나서는 것으로 변화를 삼았다. 또 딱히 홍보는 없지만 디자인 컨셉트와 제품 정보를 깨알같이 알려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점찍은 해외 바이어에겐 메일로 온라인 카탈로그를 보낸단다. 일본 편집숍과 거래를 튼 것이나, 얼마 전 독일 최대 캐주얼 의류 페어인 ‘브레드 앤 버터’의 초청을 받은 것도 순전히 손품을 판 덕이었다. 재고 부담을 덜기 위한 소량 제작 원칙은 오히려 희소성 있는 브랜드로 대접받는 행운으로 돌아왔다.

매장을 나오면서 한 달 전 신진 디자이너들 여럿과 대면했던 자리를 떠올렸다. 그들은 짧은 시간에 스스로를 알리기 위해 애썼다. 무슨 무슨 편집매장에서 팔리는데 앞으로 더 숫자가 늘 것이며, 해외 페어에 참가한 경험도 여러 번이고, 유명 연예인이 입어 인지도가 급상승했다는 얘기들을 쏟아냈다. 아마도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는 패션계에서 ‘상업성’ ‘대중성’은 가장 큰 무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선배 디자이너들 역시 홈쇼핑으로 판매 루트를 삼고, 방송에 출연해 얼굴을 알리고, 스타들을 행사에 불러내 현실에 대처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과 다른 안씨의 ‘비주류 노선’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아직 ‘성공’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기에, 또 얼마나 지속가능한지 알 수 없기에 말이다. 하지만 무엇이 안전한 길인 줄 알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택한 용기는 신선하다. 그의 ‘조용한 반기’를 응원해 주고 싶은 이유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