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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샅·술재강·아랫목·성주단지 … 사라져 더 마음에 사무치는 것들

저자: 김열규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가격: 각 1만2000원
도시 아이들이 ‘농촌 체험’을 하기 위해 산골로 유학 가는 세상이다. 옛 세대와 지금 세대의 간극은 커졌고,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아이에게 뭔가를 설명하려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알고 멈칫했던 경험, 요새 부모라면 몇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이를테면 골무나 아랫목 같은 것의 쓰임새, 아니면 책씻이나 오줌싸개가 키 쓰고 소금을 얻으러 다니는 일 말이다. 그게 뭐냐 묻는 아이에게 장황하게 설명을 하긴 하는데, 아이는 영 알아듣는 눈치가 아니다. 이해한다 해도 경험이 아닌 지식으로 만들어진 인위적 기억일 테니 부모 입장에선 안타깝기만 하다.

이렇게 덧없이 흘러가버리는 우리 정서와 풍경을 글로나마 움켜쥐려고 한 사람이 김열규(81) 서강대 명예교수다. ‘한국인은 누구인가’라는 화두로 평생을 한국학과 민속학 등의 연구에 매진한 대표적인 한국학자다. 1991년 고향 경남 고성으로 낙향한 이후『한국인의 자서전』『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등을 꾸준히 내놓으며 한국인의 원형 찾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다. 두 권으로 묶은 이번 책은 지난 저서들보다 어쩌면 학구적인 색채는 조금 덜할지 모른다. 대신 “없어졌기에 차마 잊을 수 없는 것, 사라져버렸기에 오히려 더 마음에 사무치는 것”들에 대한 삼삼한 그리움이 곡진하다. 그런 정서에 공감하게 돼서인지 책장을 넘기는 일이 좀처럼 지루하지 않다.

산업화 이전, 새마을 운동 이전의 정경이 12마당 132가지 테마로 나뉘어 펼쳐진다. 글이 쉬이 읽히는 데는 아마도 군데군데 인용된 낯익은, 하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문학작품 덕도 있을 것이다. 윤흥길의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와 고샅을, 황순원의 『소나기』와 징검다리를, 서정주의 『구식의 결혼』과 혼례를 연결하는 식이다.

문학작품만 나오는 게 아니다. 조영남의 노래 ‘제비’와 소리꾼 장사익의 ‘강남 아리랑’ 같은 유행가가, 김삿갓의 ‘원생원(元生員)’ 같은 옛 시가 등장해 장단을 맞춘다. “기차 타고 부산을 가니 역에서부터 사람들이 부산스럽다” “커피 잔에 코피가 흐르니 커피가 코핀지 코피가 커핀지 알 수가 있어야지” 같은 수수께끼 말장난을 조선시대 김삿갓의 고풍스러운 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재미난 지식은 덤이다.

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은 곧 그 자리를 대신한 것에 대한 불만일 터, 저자는 현대사회의 살풍경에 대한 일침도 잊지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이젠 없는 것들은 구체적인 물건이나 풍속만이 아니라 그 뒤에 어린 정서다. “간장, 된장, 고추장 모두 마트나 수퍼에서 사다 먹는다. 장독대는 없어지거나 빈터가 된 지 오래다. 덩달아서 우리 생활의 일부도, 거기 엉긴 마음가짐도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낯선 사람조차도 헛기침 한번 토하고는 들어설 수 있는 문, 그런 게 사립문이다. 디지털 도어록으로 꼭꼭 걸어잠그고 아파트를 지키는 오늘의 우리로서는 영영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나이 들면 지나간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하던가. 그래서 이 책을 그저 노(老)학자의 회고조 에세이겠거니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만 본다면 좀 야박하다. 특히 2권에서 엿보이는 저자의 섬세한 관찰력과 이를 글로 풀어놓는 복원력은 감탄스럽다. 낙숫물 소리, 타작 소리, 다듬이 소리, 할머니 군소리, 깨 볶는 냄새, 깨금발 뛰기, 성주단지, 술재강 등 이젠 없는 것들이 참 많기도 하다. 이젠 없는 것들의 수가 자꾸 늘어나는 데는 우리의 게으름과 무신경도 한몫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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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