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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면 왜 당당해질까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서 홀로 사나운 불량배들에게 포위되었다고 하자. 그들은 무릎을 꿇어 복종을 표시하라고 요구한다. 충분히 나약하고 비겁하다면, 우리는 쉽게 무릎을 꿇고 그 자리를 모면하려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홀로 있을 경우에만 해당된다. 만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런 난처한 사태를 겪게 된다면, 나약한 사람이라도 쉽게 무릎을 꿇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불의한 타인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는커녕 사랑하는 사람을 불의한 타인에게 넘겨주겠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조지 오웰 (George Orwell, 1903~1950) 영국의 명문 기숙학교인 이튼 스쿨을 졸업한 뒤 경찰 간부로서 식민지 버마에서 근무하지만 “고약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사직했다. 이후 파리와 런던의 하층계급 세계에 뛰어들어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1933)에 그 체험을 담아 발표했다. 스페인 내전에 공화국 민병대 소속으로 참전, 자전적 소설 『카탈로니아 찬가』(1938)를 펴냈다. 이후 ‘트리뷴’의 문예 편집장, ‘옵서버’의 전쟁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말년에 쓴 『동물농장』과 『1984』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가 됐다.
그래서 간혹 사랑의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랑은 나약한 사람을 용사로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비겁한 사람이라도 사자처럼 용감하게 압도적인 상대와 싸울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비겁함을 보여 주느니 차라리 상대방에게 맞아 죽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당당한 사람만이 사랑을 하지만, 사랑을 하면 당당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은 이성 간의 사랑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무엇인가 사랑하는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홀로 있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대담함이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힘으로는 상대가 안 되는 적군들에게 악귀처럼 달려들어 싸우는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 바로 이것이다. 사랑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대담함이란 감정에 대해 스피노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대담함(audacia)이란 동료가 맞서기 두려워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일을 하도록 자극되는 욕망이다.”(스피노자의 『에티카』 중)
스피노자의 정의는 지나치게 평범하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맞서기 두려워하는 위험을 기꺼이 무릅쓰는 것이 대담함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지만 대담함을 일종의 ‘욕망’이라고 꼭 집어내는 대목에서 우리는 스피노자의 비범함에 다시 한번 탄복하게 된다. 스피노자에게 욕망이란 기본적으로 기쁨의 증진을 도모하는 작용이기 때문이다. 사랑만큼 살아가는 힘과 기쁨을 증폭시키는 경험이 또 있을까. 조지 오웰이 『1984』라는 소설에서 모색했던 것도 바로 사랑의 파괴력, 그러니까 바로 압도적인 힘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대담함이란 감정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빅 브러더는 당신을 보고 있다(BIG BROTHER IS WATCHING YOU)’라는 슬로건이 곳곳에 적힌 전체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윈스턴은 그렇지만 체제에 도전하는 대담함을 키우게 된다. 무엇이 그에게 대담함이란 감정을 선사했던 것일까? 바로 줄리아라는 여성과의 사랑이었다. 『1984』에서 가장 극적인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엿들어 보자.

“나는 자백을 말하려는 게 아니야. 자백은 배신이 아니지. 자백을 하든 안 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감정이야. 예컨대 그들 때문에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그게 진짜 배신이란 얘기지.”
줄리아는 그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할 수 없을걸요.”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어요. 그들은 당신이 무엇이든 말하게끔 할 수는 있지만, 믿게는 할 수 없어요. 당신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사람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지. 만약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비록 대단한 성과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을 패배시키는 셈은 되는 거야.”
줄리아나 윈스턴은 언젠가 자신들이 빅 브러더의 감시망에 걸려 온갖 고초를 겪으리라는 걸 예감하고 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당당하기만 하다. 둘 중 누군가 먼저 잡혀서 상대방을 고발할지도 모른다. 혹독한 고문에 견딜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렇지만 이 둘은 자신한다. 둘이 공유했던 사랑만큼은 빅 브러더도 어쩌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빅 브러더의 하수인들에게 잡히고 만다. 그리고 서로 격리된 채 온갖 고문을 당한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 있을 수 있었다. 왜냐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빅 브러더의 하수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서로에 대한 사랑이란 감정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그러지 않는 한 그들을 진정으로 굴복시킬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불행히도 소설 『1984』는 비극적으로 끝난다. 윈스턴이 줄리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고 빅 브러더에 대한 존경을 회복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배신하고 전체주의에 투항한 것이다.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 구절은 극적이기까지 하다. “모든 것이 잘되었다. 투쟁은 끝이 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러더를 사랑했다.”

이렇게 줄리아에 대한 사랑을 배신하는 순간, 빅 브러더의 하수인이 쏜 총알은 회심의 불빛을 발하며 윈스턴의 머리를 관통한다. 사랑이 죽으면 대담함이란 감정, 온갖 불의와 억압에도 당당할 수 있었던 가장 인간적인 감정도 맥없이 사라지게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1984』라는 소설로 조지 오웰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사랑을 지켜라,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고귀한 가치는 무기력해지리니.



강신주 대중철학자『. 철학이 필요한 시간』『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상처받지 않을 권리』등 대중에게 다가가는 철학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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