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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탐사] 박근혜 옷 색깔처럼

말 많고 탈 많던 새 정부 인선이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박근혜 정부라는 새 집이 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뜬금없게도 영화관을 떠올렸다. 예전 개봉관 시대에는 극장 하나가 영화 하나를 독점해 상영했다. 새로 나온 영화를 보려고 수백m씩 줄 서기가 예사였다. 소문난 영화는 서너 달을 기다려서 겨우 보기도 했다. 성미 급한 사람은 몇 배 비싼 암표를 샀다. 요즘 같은 멀티플렉스 시대엔 다르다. 한 영화가 거의 모든 상영관에서 동시에 개봉된다. 줄과 암표는 옛말일 뿐이다. 아무리 잘나가는 영화도 넉넉하게 볼 수가 있다. 원하는 극장의 원하는 자리까지 선택할 정도가 됐다.

  ‘새 정부’라는 영화 개봉 때의 변화가 딱 이렇지 않나 싶다. 예전엔 권력의 핵심에 참여하는 인사들을 제대로 아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왜 아니겠나. 아예 모르고 넘어갈 때도 있었다. 그래서 인사청문회 제도가 생겼지만 그 후에도 청문회 즈음에 가서야 작은 허물들이 하나 둘 나오곤 했다. 하지만 갈수록 개봉관 수도 늘고 극장 시설도 좋아졌다. 이름이 나오자마자 온갖 군데서 3D 입체 서라운드로 깍지를 벗긴다.

  누가 인사권자가 되더라도 인선 발표를 하기가 두려울 수밖에 없을 터다. 영화 수준에 비해 극장 시설이 너무나 뛰어난 까닭이다. 아무리 두꺼운 화장을 해도 배우 얼굴의 잡티가 가려지지 않는다. 때로는 과장되고 왜곡되기도 한다. 배우 캐릭터와는 상관없는 콧등의 모공 때문에 영화 감상에 몰두할 수 없는 경우마저 있다.

  박근혜 영화도 이런 점들을 피해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데 있어 보인다. 일반 극장이 아닌 ‘전용관’용 영화라는 말이다.

  영화 제목도 ‘박근혜’ 말고는 다른 걸 붙이기 어렵다. 영화 속에 박근혜 감독의 색채 말고는 보이는 게 없다. 역대 정권들에 비해 유난히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등장 인물이 많은 것도 달리 설명이 안 된다. 영리한 장관들은 보스가 뭘 원하는지 알았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첫 국무회의를 마치자마자 대통령이 적시한 현장으로 달려나갔다.

  인사 못하기로 소문났던 전(前) 정권의 장기는 ‘아는 사람만 쓰기’였다. 요직 인물의 범위가 대통령의 (넓지 않은) 인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그 범위가 조금 더 넓어진 것 같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하는 게 더욱 정확하겠다. 대통령과 영부인이었던 부모와 관계된 인물로까지 말이다.

 용감한 군인정신도, 깨끗한 시민정신도 없어 보이는 ‘비리 종합세트’를 굳이 국방장관으로 고집하는 의도는 그의 휴대전화에 매달려 있던 장식물을 빼고 나면 이해할 길이 없다. 예술계에서 아무도 모르는 인물이 예술의전당 사장이 된다면, 그가 현재 관장으로 있는 아트홀에서 육영수 여사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퍼스트레이디’를 공연하고 있는 사실과 연관 짓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겠나. 그 밖에도 배경 설명이 쉽지 않은 인사의 뒤에는 짙든 옅든 3공(共)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뭐, 그래도 일만 잘한다면 좋은 선택일 수 있다.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미래 말고 사심이 없다는 것도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최고권력자가 스스로 “나와 국정철학을 공유할 사람 모여라”고 외치는 건 아무래도 아니다. 그건 내 앞에서 절대로 “그건 아니고요”란 말은 하지 말란 선언과 다를 게 없다.

 측천무후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였다. 잔인하고 포악한 면이 있었지만 중국이 최고로 번영하던 시기를 일컫는 당 태종의 ‘정관의 치(貞觀之治)’에 버금가는 통치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후는 조카 무승사를 한때 재상으로 기용했지만 대신 이소덕의 의견을 받아들여 파면시켰다. 무승사가 이소덕을 헐뜯자 무후는 말했다. “나는 이소덕이 있어 마음이 놓인다. 그는 내 수고를 덜어주고 있다. 너 따위가 어찌 그와 비교가 되겠느냐.”

 측천무후가 정치를 잘했다면, 조카를 자른 게 아니라 이소덕 같은 사람을 곁에 둔 게 요체다. 이소덕처럼 말할 수 있게 놔둔 것이다. 성공한 정치 옆에는 늘 용기 있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걸 듣는 귀가 있었다. 동서고금 따로 없이 매양 그랬다.

 박근혜 정치의 성공도 거기에 출발점이 있다. 그러려면 박근혜 일색(一色)을 빼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영원히 일직선인 도로는 없다.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때론 우회전, 때론 좌회전을 해야 한다. 유턴을 해야 할 때도 있을 터다. 다양한 색깔을 섞어야 한다는 얘기다.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선택을 잘하는 대통령의 옷 색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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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