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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계획은 블록버스터 산업의 교과서

경제성장의 동력은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의 결합에서 나온다. 이런 모델을 뒷받침한 대표적 사례가 정보통신 혁명을 이끌어온 미국의 벨 연구소다. [위키피디아]
청년 실업 문제를 일거에 속 시원히 해결해 주는 요술 방망이가 어디 없을까.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은 부자 나라인 미국도 풀기 어려운 숙제인 것 같다. 2009년 미국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위크 9월 7일자 커버스토리는 “향후 3년간 보수가 괜찮은 일자리 100만 개를 새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산업이 있는가”라고 묻고 “하나도 없다”고 꼬집었다.

미국은 경제 불황으로 사라진 일자리 670만 개를 벌충하고 향후 10년간 필요한 일자리 1000만 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 1700만 개를 창출해야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국 경제의 성장 동력에 연료가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성장 동력의 연료는 다름 아닌 과학 기술이다. 미국 경제는 두 종류의 과학 기술, 곧 기초 과학과 응용 기술이 균형을 유지하며 발전한 덕분에 고속 성장이 가능했다. 기초 과학의 연구 성과는 대기업과 벤처기업에 의해 상용화되어 경제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이를테면 기초과학의 성과가 응용 기술에 의해 산업화되는 미국식 사업 모델이 성공적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급여수준이 높은 일자리를 수백만 개씩 새로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업 모델을 뒷받침한 대표적 사례는 정보통신혁명을 이끌어온 벨연구소이다. 1925년 전화 발명자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1847~1922)의 이름을 따서 설립된 벨연구소는 연구진이 노벨 물리학상을 일곱 차례나 받은 원천기술의 산실이다. 특히 1947년 트랜지스터를 발명해 반도체 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했으며 그 공로로 56년 윌리엄 쇼클리(1910~89) 등이 노벨 물리학상을 거머쥐었다. 1948년 수학자인 클로드 새넌(1916~2001)은 정보이론을 최초로 정립한 역사적 논문을 발표해 정보통신기술 발전에 주춧돌을 놓았다. 벨연구소는 80여 년 동안 반도체, 컴퓨터, 정보통신 분야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쏟아내서 수많은 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

생전의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2012년 3월 미국의 저술가인 존 거트너가 벨연구소의 역사를 정리해서 펴낸 『아이디어 공장(The Idea Factory)』은 벨연구소의 발견과 발명이 기술혁신을 불러오고 혁신은 산업의 생산성을 끌어올려 결국 미국의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저자는 20세기에 벨연구소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연구조직임과 동시에 가장 뛰어난 비즈니스 조직일 수 있었던 까닭은 아이디어를 내는 과학자와 그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드는 기술자가 협력하는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산업 연구기관으로 군림하던 벨연구소는 우여곡절 끝에 세계 과학 기술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2005년 프랑스의 통신회사에 인수되고 만다. 사장에는 벤처 창업으로 크게 성공한 김종훈 박사가 영입되었다.

『아이디어 공장』의 끝 부분에는 벨연구소의 한 작업장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건물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곤 순찰 경비원뿐이었다. 텅 빈 거대한 빌딩으로 이어지는 긴 진입로의 포장 틈새로 잡초가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세계 과학 기술의 심장이었던 벨연구소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벨연구소의 쇠락은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의 연결 고리가 끊어진다는 의미에서 미국식 사업 모델이 붕괴된 상징적 사례로 언급된다. 미국의 첨단기술 기업인 IBM마이크로소프트휼렛패커드 역시 연구 개발 예산을 대부분 3~5년에 승부가 나는 응용 과제에 투입하고 기초과학 분야에는 3~5%만을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천 기술 연구를 강화하는 것만이 미국식 사업 모델을 되살려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지름길로 여겨지고 있다.

기초연구 결과를 하나의 산업 또는 제품으로 실현하는 데는 15년 이상 소요된다. 비즈니스위크 커버스토리는 이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두 번의 역사적 성공 사례에서 배울 것을 주문했다.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을 제조한 맨해튼 계획이고, 다른 하나는 1969년 사람을 달에 처음 보낸 아폴로 계획이다.

1939년 8월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 1945) 대통령은 독일에서 망명한 과학자들이 히틀러가 원자탄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서한을 받고 10월에 핵문제 자문기구를 구성한다. 그러나 1941년 12월 진주만 공격을 당할 때까지 독일의 핵무기 기술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1942년 유럽에서 전쟁 상황이 악화되면서 루스벨트는 개발 책임자를 교체하고 연구를 독려했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67)는 전문가들과의 끝장 토론으로 개발 방향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다. 그의 역할이 그만큼 결정적이었기 때문에 훗날 ‘원자탄의 아버지’라 불렸다. 1942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맨해튼 계획에는 20억 달러(2013년 기준 260억 달러)가 투입되고 미국영국캐나다 등 3개국의 30개 지역에서 수천 명의 과학자를 포함해 13만 명이 참여했다. 이들 가운데서 맨해튼 계획의 진짜 목적이 역사상 최초의 핵무기를 제조하는 것임을 알았던 사람은 오펜하이머의 지휘를 받던 과학자 100명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거나 나치 정권이 항복한 뒤 1945년 7월 미국의 사막에서 마침내 최초의 핵폭발 실험이 성공했다. 8월 미국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한 발씩 떨어뜨렸다. 수십만 명의 일본 사람이 죽고 일본 천황은 무조건 항복을 한다. 맨해튼 계획은 6년간(1939~45) 진행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발 벗고 나선 1942년부터 3년 만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셈이다.

1961년 5월 존 F 케네디(1917~63) 대통령은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사람을 달에 착륙시키고 안전하게 지구로 귀환시키는 아폴로 계획을 발표했다. 냉전 시대에 소련과의 우주개발 경쟁에서 뒤졌다고 판단한 미국 정부가 내린 초강수의 대응책이었다. 1957년 10월 소련은 사상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해 지구 궤도에 진입시켰다. 인류가 마침내 우주 정복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4년 뒤인 1961년 4월 소련의 첫 우주비행사인 유리 가가린(1934~68)이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떠났다. 그의 우주 비행은 108분에 지나지 않은 짧은 것이었지만 우주에 나선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가가린이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케네디는 일거에 소련을 앞지르기 위해 유인 달 착륙 계획을 밀어붙인 것이다. 그러나 1963년 케네디는 피살되어 최고 40만 명이 참여하고 250억 달러(2013년 기준 1350억 달러)가 투입된 성과를 보지 못했다. 케네디가 계획을 발표하고 8년이 지난 뒤인 1969년 7월 20일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해 닐 암스트롱(1930~2012)이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기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이 외계의 땅 위에서 걸어보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맨해튼 계획과 아폴로 계획이 예상 외로 빠른 시간에 기적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당시 대통령인 루스벨트와 케네디의 강력한 지도력과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아폴로 계획의 경우 8년 동안 수천 건의 첨단기술이 개발되어 스핀오프(spin-off)가 엄청났다. 스핀오프는 기술 개발의 부산물 또는 파급효과를 뜻한다. 아폴로 계획으로 재료·연료전지·열처리·식품·통신·컴퓨터·로봇 분야에서 개발된 기술의 스핀오프에 의해 수많은 기업과 일자리가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비즈니스위크는 두 계획의 성공으로부터 얻은 교훈에 따라 미국 정부가 일자리 창출 전략을 수립할 것을 당부했다.

첫째, 정부는 2~3개의 핵심 기술 분야를 국책 개발 사업으로 선정해 대통령의 진두지휘 하에 추진한다. 이른바 대통령 프로젝트를 선정해서 연구개발진을 격려하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둘째, 두 계획의 성공을 통해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민간 부문의 몫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 대학, 국책 연구기관이 협동하는 기술혁신 생태계를 강화하여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응용기술에 의해 산업화되는 기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미국식 사업 모델을 복원해야 한다.

미국의 획기적인 경제 성장을 이끌어 낼 현상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로는 생물노화기술, 서비스 로봇, 에너지 저장 소재 등이 손꼽힌다. 이런 분야는 급여 수준이 높은 일자리를 대규모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중에서 2~3개의 핵심기술을 선정해서 대통령 프로젝트로 추진하면 블록버스터(blockbuster) 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일자리 창출은 국가적 과제이다. 박근혜 정부는 5대 국정 목표의 첫째를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로 정하고 미래창조과학부에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책무를 부여했다. 개인적으로는 똑똑한 도시(smart city) 기술우주기술청색기술(blue technology) 등 3대 융합기술을 대통령 프로젝트 후보로 추천하고 싶다.

똑똑한 도시 기술은 정보기술을 이용해 도시의 제반 기능을 관리하는 융합기술이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의 보고서 ‘2030년 세계적 추세’에 따르면 향후 20년간 아프리카와 남미의 개발도상국가를 중심으로 35조 달러가 똑똑한 도시 건설에 투입될 전망이다. 건설과 정보기술에서 경쟁력을 지닌 우리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지 모른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우주기술은 아폴로 계획처럼 스핀오프에 의한 일자리 창출이 기대된다. 자연 중심의 기술을 개발하는 청색기술은 신생 분야이므로 벤처기업을 앞세워 세계 지식재산 시장을 선점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선진국을 따라가던 기존의 추격자(fast-follower)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선도자(first-mover)로 변신을 꾀하는 창조경제 전략에 안성맞춤인 융합기술임에 틀림없다.



이인식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국가과학 기술자문위원, KAIST 겸직교수를 지냈다. 신문에 490편, 잡지에 160편 이상의 칼럼을 연재했다. 『지식의 대융합』 『이인식의 멋진 과학』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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