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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가 쓴 대로 대사도 16세기 영어로 하죠”

'서울 셰익스피어 컴퍼니' 예술감독 린지 히긴스(오른쪽)가 연출자 제시카 아델(왼쪽), 배우들과 함께 대본 연습을 하고 있다. 주한 외국인들이 주축이 된 이 극단은 다음 달 서울에서『햄릿』을 16세기 영어 원문으로 공연할 예정이다. 조용철 기자
지난 14일 오후 서울 용산동 2가 해방촌 한편의 지하 스튜디오. 두 남녀가 익살스러운 말투로 대사를 주고받는다. “기독교 예식으로 매장(埋葬)을 해도 좋은가. 자기 좋아서 세상을 하직한 여잔데…” “묻어줍세. 그러니 무덤 구멍이나 파. 검시관이 기독교식 장례를 한다고 했으니까.”

 셰익스피어가 쓴 『햄릿』의 5막1장 첫 장면이었다. 묘지에서 두 광대가 물에 빠져 죽은 오필리어를 두고 얘기하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대사는 모두 영어로 읊어졌다. 그것도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16~17세기 영어 원문 그대로였다. 이들은 ‘서울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배우였다. 다음 달 공연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에 한창이었다.

 서울 셰익스피어 컴퍼니는 2010년 세워졌다. 이 극단에 한국인 배우나 스태프가 있지만, 대부분은 서울에서 사는 외국인으로 구성됐다. 국적도 미국·캐나다·영국·남아공 등 다양하다. 올해 레퍼토리인 ‘햄릿’은 2010년 ‘맥베스’, 지난해 ‘템페스트’에 이어 세 번째 공연하는 작품이다. 극단의 예술 감독은 미국인 린지 히긴스(30)가 맡고 있다. 협찬·홍보·기획 등도 그의 몫이다. 그는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 2009년 한국을 처음 찾았다고 했다. 지난해 ‘템페스트’의 연출도 했다.

 극단 운영진이나 배우·스태프 모두 전업 연극인이 아니다. 대부분 낮에는 한국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들이다. 그래서 연습은 오후 7시30분에 시작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아마추어라고 얕볼 수는 없다. 대부분 자국에서 연극을 전공했거나 극단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히긴스의 경우 미국 서던메인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한국에 오기 전 미국 극단에서 배우·연출가·제작자의 경력이 있었다.

 히긴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한국에서 원어 그대로 즐길 기회가 많지 않다. 한국 관객들에게 불멸의 원작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셰익스피어가 인간의 원초적 감정·본능·욕구를 잘 그려냈기 때문에 지금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는 아프리카의 콩고에서 아프리카를 무대로 각색된 적이 있다. 그만큼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다”고 했다. 올해 ‘햄릿’의 연출자인 제시카 아델(31·캐나다)은 “한국의 탈춤과 판소리를 봐라. 수백 년 된 문화유산이지만 아직도 관객들이 모여들고 감상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옆에서 거들었다. 히긴스는 “많은 영어권 국가 국민이 인식을 못하지만 영어 관용구 가운데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유래한 게 많다”고 소개했다. ‘a sorry sight(비참한 모습·『맥베스』)’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번쩍인다고 해서 모두 금은 아니다·『베니스의 상인』)’ 등이 그것들이다.

 ‘중세식 영어로 쓰여졌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히긴스는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영어권 국가 국민이라면 대사의 70% 이상은 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물론 몇몇 고어(古語)식 표현과 단어는 요즘 알아듣긴 힘들지만 극 전개와 크게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또 “햄릿은 한국의 젊은 세대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며 “그는 ‘나는 누군가’와 ‘아들로서 아버지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갈등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도 한국인 관객을 위해 한글 자막이 나간다.

 극단은 서울의 외국인 사회에서는 꽤 유명하다. 지난해 말 공개 오디션에 40여 명이 몰렸다. 주연 햄릿에 캐스팅된 카일 존슨은 미국 시카고에서 2년간 배우로 무대에 오른 경력이 있다. 한국에 도착한 지 사흘 만에 오디션 광고를 보고 지원해 햄릿 배역을 따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 때문에 이역만리에서 극단을 꾸리기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히긴스는 “특히 공연장을 빌리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배우들의 사정상 우리는 주말에만 공연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한 달치 대관료를 내야만 했다”고 말했다. 더 큰 어려움은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이들에게 ‘킥스타터’란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사이트는 구세주였다. 이 사이트에 반짝이는 아이디어나 공익 프로젝트를 올리면 전 세계 네티즌으로부터 십시일반 형식으로 기부를 받을 수 있다. 서울 셰익스피어 컴퍼니는 지난달부터 이번 달까지 킥스타터를 통해 5508달러(약 620만원)를 모았다. 당초 목표 3000달러(약 333만원)를 훌쩍 넘겼다. 500달러(약 55만원) 이상을 낸 ‘고액’ 기부자도 2명이 있었다. 히긴스는 “이탈리아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네티즌이 기부했다”며 “일부 기부자는 우리의 공연을 본다고 한국행 비행기와 호텔까지 예약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전 세계에 셰익스피어 애호가가 많은 셈이다.

 “최근 북한의 전쟁 위협에 두렵지 않으냐”고 물었다. 히긴스 등은 이 질문에 웃었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한국 생활이 6년째인 극단의 총무 엔지 벨슬리(31·미국)는 “늘 걱정이시던 어머니가 한국에 열흘간 머무른 뒤론 염려를 놓았다”고 말했다.

 히긴스를 비롯한 단원들의 꿈은 한국 사회와 동떨어진 외국인이 아닌, 한국 사회의 한 예술인으로 인정 받고 싶은 거란다. 그 일환으로 “한국 극단과도 교류하겠다”고 히긴스는 말했다. (공연 일정·장소는 www.facebook.com/seoulshakespeare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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