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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happy! 우리의 하루하루는 신이 준 선물이니까

나는 지금 북인도 바라나시에 와 있다. 갠지스강이 흐르는 이곳은 이미 바산트 리투(봄)가 시작되어 추위가 완전히 물러가고 순례자들의 노랫소리가 새벽잠을 깨운다. 아직도 강을 어머니라 부르는 그들은 여인들이 입는 새 사리를 강에 바치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이 그 사리를 건져다 입는다.

시바 신이 아내와 갠지스 화장터에 간 까닭
인도인들에게는 ‘빛의 도시’라는 뜻의 ‘카시’로 불리는 바라나시는 시바 신의 도시다. 흔히 파괴자로 상징되는 이 신은 히말라야 동굴에서 자주 명상을 했다. 이 때문에 아내 파르바티에게 자주 시달렸던 것 같다. 다른 신, 예를 들어 세상을 주재하는 비슈누 신의 아내 락시미는 호화로운 궁전에서 많은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있는 데 반해 자신은 아무것도 없는 설산의 동굴에서 추위와 싸워야 하는 것이 파르바티는 못내 불만스러웠다.

아내의 잔소리에 더 이상 명상이 불가능해진 시바 신은 마침내 아내에게 말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꼭 한 번은 들르는 장소를 구경시켜 주겠노라고. 그러고는 기뻐하는 아내를 소에 태우고 이 도시 바라나시로 내려왔다.

시바 신이 아내를 데려간 곳은 다름 아닌 갠지스 강변의 화장터였다. 장작 위에서 타고 있는 시신들을 보고 신의 아내는 큰 충격을 받았다. 시바 신은 “모든 사람이 결국 오게 되는 곳은 이곳”이라고 말했다. 당황한 파르바티는 비틀거렸고, 그녀의 귀에서 귀걸이 하나가 떨어졌다. 그 후 그 화장터는 마니카르니카, 즉 ‘보석 귀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화장터는 지금까지 밤낮으로 한 번도 불이 꺼진 적이 없다. 내가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방 창문으로 밤이면 더욱 선명하게 마니카르니카의 불꽃이 보인다. 그 화장터 불빛에 내 손금의 생명선을 비춰 본다.

벵골 지역에서 온 거리의 가수가 있다. 그의 이름은 아드웨타난드, ‘절대적 행복’이라는 뜻이다. 북인도에는 신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며 떠도는, ‘바람의 미치광이’라고 불리는 신비주의자들이 있다. 그중 한 사람인 아드웨타난드가 황혼이 번지는 갠지스강을 배경으로 노래한다.
 
코끼리 상아로 장식한
화려한 침대를 가진 왕도
언젠가는 화장터에 실려 간다네
두 개의 대나무 막대기에 실려
 
보석으로 온몸을 장식한 어여쁜 왕비도
결국 필요한 것은 두 개의 대나무 막대기
 
당신이 행한 행위만이 당신을 따라간다네
두 개의 대나무에 얹혀 화장터로 향할 때
 
25년 전 내가 처음으로 인도 여행을 시작할 당시 삶의 진리에 목말라하는 수많은 이가 전 세계에서 인도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존재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영적 스승을 찾아 아시람(명상 센터)을 돌아다녔다. 고대 인도부터 내려온 아시람 전통은 지금도 도시와 시골, 밀림과 히말라야에 그대로 살아 있다. 그 무렵 한 서양인 여행자에게서 뭄바이 근처 아시람에 훌륭한 스승이 있다는 말을 들은 나는 많은 질문을 마음에 품고 그곳으로 향했다.

막상 만나 보니 그 스승은 영어를 할 줄 몰랐고 나는 힌디어 초보자였으며 통역자도 마땅치 않았다. 결국 준비해 간 질문은 꺼내지도 못하고 며칠을 그가 제자들과 힌디어로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시간을 허비했다. 마침내 떠날 준비를 한 나는 마지막으로 그 스승을 찾아가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가 탁자 위에 놓인 박하사탕 몇 개를 집어 내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비 해피(행복하라)!”

인생의 심오한 진리를 갈구하고 있던 나에게 그 말은 너무 평범한 조언이었고 나는 실망해서 다른 행선지로 떠났다.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그를 잊고 지냈지만, 결국 진실은 그것으로 회귀한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하든, 어떤 것을 성취하든,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하든 혹은 홀로 존재하든 중요한 것은 내가 행복한가이다.

그런데 그 행복은 일시적인 것인가? 아니면 본질적인 것인가? 우리가 자랑해 마지않는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힘은 일시적인 행복이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끝없이 신제품을 소비하고, 물질과 육체의 쾌락을 선사하는 광고들에 이끌린다. 일시적인 행복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능력 있는 사업가로 평가받고, 상품들은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멋진 말로 포장된다.

인도의 영적 스승들은 여전히 절대 행복을 설파한다. 비하르 주에서 순례온 람 프라사드는 등에 멘 작은 봇짐과 주머니에 있는 것이 전 재산이다. 65세가 되었을 때 그는 집과 소유물 전부를 자식에게 나눠 주고 아시람의 단순하고 소박한 삶 속으로 들어갔다. 진정한 자아와 행복을 발견하는 데 남은 생을 바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신발조차 없는 맨발이다. 이것은 그만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아직도 절대 다수의 인도인들이 노후의 희망을 묻는 설문 조사에 ‘세속의 것을 포기하고 영적 추구에 귀의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세상에서의 삶을 살 만큼 살았으면 신과 진리의 세계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바라나시에 머문 지난 며칠 동안 수만 명의 순례자가 걸인과 다름없는 남루한 차림으로 지나갔다. 많은 사람이 생의 후반기를 수행처에 귀의해 끝없는 도보 여행을 하고 금욕의 규율을 실천한다.

나이 오십을 ‘완프라스탄’, 숲을 향하는 나이로 규정한 고대의 정의는 현대의 인도인들에게도 유효하다. 노후를 대비해 각종 연금과 보험을 계획하는 우리와는 정반대의 길이다. 육체와 물질의 무상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절대 행복에 이를 수 없다고 그들은 믿는다. 람 프라사드는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의지할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 신에게 의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한 벵골 지방의 금언에는 이런 것이 있다. “사람이 자기 안에 단순함을 갖고 있지 못하면 단순한 존재인 신을 알아볼 수 없다.”

오늘 나는 라자스탄 주에서 온 두 명의 사두(힌두 탁발 수행자)와 함께 배를 탔다. 지금 이곳에는 봄의 다양한 축제를 맞아 수많은 사두가 몰려들어 강가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나체 수행을 하는 사두도 자주 눈에 띈다. ‘하늘을 입은 사람들’이다.

아침이면 이 사두들과 인도인뿐 아니라 많은 외국인이 강변에 앉아 떠오르는 해를 향해 명상에 잠긴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풍경이 오늘도 재현되고 있다. 더불어 매일 찾아오는 수많은 관광객과 여행자가 북적댄다.

언제나처럼 삶과 죽음이 한 장소에 공존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한쪽에서는 화장터 불이 타오르고, 아이들은 시신을 장식한 금잔화 꽃들을 주워다가 꽃등불을 만들어 판다. 새로 태어난 아기를 어머니 갠지스강에 신고하러 온 부부, 신상에 작은 꽃을 바치며 기도하는 여인들, 아직도 여전히 신성한 동물로 대접받으며 좁은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소들, 순례자들을 호객하는 외침들이 영화 속 풍경처럼 펼쳐지고 있다. 인도가 가진 매력은 이러한 다채로운 색채와 소리와 인물들이다. 이 풍경이 사라진다면 지구는 훨씬 가난해질 것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분노하지 말자’
내가 경험한 인도 정신문화의 또 하나의 특징은 ‘매일매일이 축제’이며 신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지구상에 이토록 많은 명분으로 이토록 끝없는 축제를 만들어 내는 종족을 나는 또 알지 못한다. 인생의 유한함을 자각하고 절대 행복에 이르려는 노력과 매 순간을 축제로 여기려는 이 상반된 의식 구조를 나는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봄만 해도 수많은 축제가 이어진다. 내가 북인도에 도착한 날은 신발 수선공이면서 성자였던 라비 다스의 탄생 축제일이었다. 144년 만에 찾아온 마하 쿰부멜라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또 다른 축제들이 날마다 이어진다. 일요일은 태양에 기도하는 날이고, 월요일은 시바 신을 위한 날이다. 매달 두 차례씩 비슈누 신을 숭배하는 에카다시 축일에는 금식하며 밤새 기도의 노래를 부른다. 그믐마다 열리는 아마와시아 축제 때는 성스러운 목욕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옷과 음식을 기부한다. 봄이 시작되는 바산트 판치미 축제일은 브라흐마 신의 아내 사라스와티의 탄생일로, 이날 모든 학생은 이 지혜와 학문의 여신에게 연필과 공책을 바치며 예배를 드린다. 이들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삶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은 대충 사는 것이다. 한번 지나가 버린 순간은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3월 27일부터는 진정한 봄의 시작을 알리는 홀리 페스티벌이 찾아온다. 이날 사람들은 아침부터 서로에게 온갖 색의 물감을 뿌려대며 축제를 즐긴 뒤 오후에는 물감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언젠가 인도 신문 칼럼에서 이 축제의 의미를 두고 “세상의 모든 고통과 슬픔은 결국 씻겨나갈 수 있는 것이며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그런 것들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쓴 것을 나는 읽은 적이 있다. 고통과 슬픔의 물감들을 씻어낼 때 진정한 봄이 찾아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인도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이 지상에서 만났던 영혼들과 언젠가 한 번은 다 같이 한자리에 모여 이 생에서 겪은 일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는다고 한다. 결국은 이렇게 죽을 것인데도 너무 심각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사소한 것에 분노하고 싸우면서 소유와 아집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나날이 변해 가고 있고 경제대국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지만, 내가 해마다 이 나라를 찾는 이유는 이들이 삶을 축제라고 여기면서 동시에 진리 추구의 전통을 변함없이 지켜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곁을 스쳐 지나갈 때 침묵이 느껴지는 사람이 아직은 그 어느 곳보다 많은 나라가 바로 인도다.



류시화 인도 여행과 명상을 통한 체험을 섬세한 언어로 풀어냈다.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인도 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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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