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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 속도 모르고 달달한 사탕 주셨나요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며칠 전 대형백화점의 설문조사에서 여성들이 화이트 데이에 가장 받고 싶은 선물로 샤넬 백을 뽑았다는 뉴스가 나와서 논란이 일었다. 웬만한 사람 월급보다 비싼 수백만원짜리 백을 선물로 원한다고?

막상 설문 내용을 들여다보니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가 뭐냐는 질문과 가장 선호하는 선물 종류가 뭐냐는 질문이 나뉘어 있어 왜곡의 여지가 있었다. 이런 질문 구조에서는 브랜드 제품이 아닌 선물은 아예 포함될 수가 없다. 또 백화점에서 선호하는 브랜드를 대라고 하면 사람들은 아무래도 거기에 입점한 유명 고가 브랜드부터 떠올리기 마련이다. 결론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설문조사다. 그런데도 논란이 된 것은 최근 몇 년간 연인 사이 선물이 지나치게 고가품으로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와 맞물려서가 아닌가 싶다.

이와 관련해서 KBS-2TV ‘개그콘서트’에서 3년 전쯤 큰 인기를 끌었던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 코너가 떠오른다. 그들이 외친 구호 중에 “네 생일엔 명품가방, 내 생일엔 십자수냐”가 생일은 물론 별별 기념일마다 비싼 선물을 하느라 등골이 휘는 남성에게 폭발적인 공감을 얻지 않았던가.

3년이 지난 지금 연인 간 선물의 경향을 보면, 여자친구에게 주는 선물 가격대가 내려갈 생각은 안 보이고, 남자친구에게 주는 선물 가격대가 같이 높아지는 추세만 보인다. “정성 따윈 필요 없다, 같은 가격 선물하라”는 남보원의 구호가 현실이 되고 있는 셈. 밸런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 희망선물 순위를 봐도, 초콜릿과 사탕은 하위로 밀려났다. 대신 비싼 액세서리나 정보기술(IT) 제품이 상위에 오른다.

19세기 미국 화가 조셉 데커의 그림 ‘캔디’.
물론 밸런타인 데이와 화이트 데이에 각각 초콜릿과 사탕을 선물해야 한다는 공식은 일본 제과업체들이 만든 것에 불과하다. 밸런타인 데이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에도 언급될 정도로 서구에서 역사가 오랜 연인들의 명절이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라는 공식은 주로 일본 제과업체들이 만들었다. 한술 더 떠서 화이트 데이는 아예 일본 제과업체가 1970년대 후반에 ‘발명한’ 명절이다. 그러니 이런 명절을 지켜서 선물을 해야 한다는 발상부터 무시해도 그만이다.

그러나 사탕과 달콤한 과자가 꽃다발과 더불어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여자친구 선물 아이템이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을 보면, 주인공 헤르미아의 아버지가 청년 리산데르에게 자기 딸을 홀렸다고 호통을 치는 장면에서 이런 말을 한다.

“자네 머리카락으로 만든 팔찌니, 반지니, 인형이니, 장식품, 자잘한 것들, 꽃다발, 사탕, 사랑의 메신저 같은 것들을 가지고, 연약한 어린 마음을 흔들어서 이 애 마음에 환상을 심어놨겠다!”
이 대사를 보면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르네상스 영국에서부터 현대 한국에 이르기까지 여자친구 선물 아이템은 별로 변한 게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머리카락으로 만든 팔찌가 좀 생소하고, 인간 메신저가 모바일 메신저 그림 이모티콘로 대체되었을 뿐.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도 여자친구 선물의 기본 아이템은 꽃과 사탕이다. 주인공 스칼릿 오하라의 어머니는 항상 “숙녀라면 캔디와 꽃, 시집이나 앨범, 플로리다 워터(화장수) 작은 병 정도만 신사에게서 받아야 한단다. 결코, 결코, 비싼 선물은 받으면 안 된다”라고 주의를 준다.

여기에서 왜 사탕 등 과자류가 꽃다발과 더불어 여자친구 선물의 기본 아이템인지 드러난다. ‘비싸지 않으면서 마음을 담은 예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은 꽃과 초콜릿 중에도 꽤 고가인 것들이 있지만.

스칼릿 어머니의 꼬장꼬장한 19세기 미국 남부 예의범절을 현대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진정한 숙녀라면 비싼 선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 이건 기억해둘 만하지 않을까. 그런 선물은 부담과 반대급부에 대한 은연 중의 기대와 그 기대가 어그러졌을 때의 원망을 낳게 만든다. 요즘 한국인은 너무 값비싸고 물질적이기만 한 선물을 바라고, 또 주고받고 있는 것이 아닐지.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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