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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111세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위안 그럼에도 음악과 공부가 있었기에

백년의 지혜
캐롤라인 스토신저 지음
공경희 옮김, 민음인
271쪽, 1만3000원


때로는 ‘이 아픔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면?’하는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있다. 실패의 고통, 실연의 고통, 소중한 이의 죽음. 이런 고통 앞에서 우리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시간의 늪에 빠진 듯한 환각에 시달린다.

 그럴 때 어른들은 충고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하지만 그런 멋진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멋진 말보다 따스한 위로는 각자 느낀 고통의 체험을 구체적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백년의 지혜』의 주인공 알리스는 유대인 수용소 생활 2년간 어머니와 남편은 물론 친지들이 모두 사망하는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이게 정말 한 사람에게 일어난 비극인가’ 싶을 정도로 불행의 박물관 같은 삶을 살았지만, 세계 최고령 홀로코스트 생존자(111세)인 그의 얼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햇살 같은 미소다.

 알리스는 세계 최고령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그가 영혼의 젊음을 유지하는 첫 번째 비결은 바로 음악이다. “나는 유대인이지만 베토벤이 내 종교지요.” 수용소에서 그녀의 목숨을 지켜준 것도 음악이었다.

 그의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들은 나치병사는 감동한 나머지 비밀스럽게 속삭인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부인과 아드님은 안전하실 거라고. 제가 그렇게 만들 것이라고. 음악가들이 지하실에서 몰래 연주회를 열었을 때, 나치는 놀랍게도 그들을 체벌하지 않고 더 자주 연주하라고 지시했다. 나치 또한 인간이기에 ‘음악의 마수’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술의 아름다움이 절망을 막아주는 정신의 방패가 됐다. 음악은 어떤 감옥의 철책도, 삼엄한 감시도 뚫고 나가는 영혼의 햇살이었다.

 그를 지켜준 두 번째 비결은 ‘철학’이었다. 그는 100살이 넘은 나이에도 대학에서 철학강의를 들으며 학생의 기쁨을 누렸다. 스피노자와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공부하며 남편과 어머니와 아들까지 먼저 떠나 보낸 고통을 이겨냈다.

 그가 여전히 행복한 세 번째 비결. 그것은 평생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배우는 삶이다. 그는 제자들에게는 훌륭한 스승이고 세상을 향해서는 언제나 겸허한 학생이다. 그의 삶 자체가 상처받은 영혼의 면역력을 키워주는 구체적인 처방전으로 다가온다.

 그를 통해 나는 배운다. 동안 유지 피부관리나 장수 레시피보다 소중한 것은 영혼의 젊음을 유지하는 열정임을. 그 열정의 비밀은 프로의 실력을 갖추면서도 아마추어의 천진무구함을 잃지 않는 것임을. 화려한 성공보다 어려운 것은 고독을 진심으로 즐기는 법이라는 것을. 대단한 인생보다 아름다운 것은 존엄을 잃지 않는 인생임을.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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