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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현대사회는 어떻게 사람을 갈라놓았나


투게더
리처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현암사
488쪽, 1만8000원


책 주제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라면 예사롭게 넘길 수 있겠지만 저자가 리처드 세넷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개인적으로는 지그문트 바우만과 함께 필독 목록에 올려놓고 있는 사회학자다.

 바우만은 폴란드 태생으로 영국의 리즈대에 오래 몸담았다. 반면 세넷은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도 널리 읽히는 미국 사회학자로, 뉴욕대와 런던정경대에서 강의한다.

 두 학자는 관심 분야는 다르지만 ‘근대’라는 공통 화두를 붙들고 있다. 깊이 있는 사유와 우아한 글쓰기로도 평판이 높다. 바우만이 ‘액체근대’ 혹은 ‘유동하는 근대’ 시리즈에 오랫동안 천착하고 있다면, 노동 및 도시화 연구 권위자인 세넷의 최근 화두는 ‘호모 파베르’, 곧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다. 다른 표현으론 ‘구체적 실천을 통해 생명을 만드는 존재’다.

 국내에도 소개된 『장인』이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 첫 권이라면 『투게더』는 그 두 번째 책이다. 세넷은 도시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다룬 세 번째 책을 마저 집필할 예정이다.

리처드 세넷
 이 3부작을 통해서 그는 무엇을 다루고자 하는가. 세넷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노력, 사회적 관계, 물리적 환경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명시한다. 특별히 그가 강조하는 것은 기술과 능력이다. ‘협력’의 문제를 다룬 『투게더』에서도 타인에 대한 우리의 반응 능력과 대화를 나눌 때 남의 말을 듣는 기술에 초점이 맞춰진다. 여느 사회학 저작에서는 보기 드문 주제이고 문제의식이다.

 문제의식뿐 아니라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세넷 스타일은 눈에 띈다. 그는 런던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신의 손자 얘기로 말문을 연다. 손자의 친구 녀석이 학교 방송에서 “엿 먹어, 엿이나 실컷 처먹어, 왜냐하면 네가 진짜 싫으니까, 너네 패거리 전부가 진짜 싫거든!”이란 가사의 노래를 틀어서 학교 당국을 기겁하게 했다는 것이다.

 가수의 원래 의도와는 달리 아이들은 ‘엿 먹어’란 가사를 통해서 종교·인종·계급적 차이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려고 했다. 실제로 런던은 그런 혐오와 갈등이 주기적으로 폭력과 폭동으로 치닫는 도시다.

 런던보다 사정이 나을지 모르지만 우리도 그런 상황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비슷한 사람들만으로는 도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세넷의 강조대로 도시는 시민들에게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충분히 숙고하고 상대할 것을 요구한다. 협력은 필수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협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원인은 무엇인가. 세넷은 물질적·제도적·문화적 이유 때문에 현대인이 협력의 기술을 점차 잃어버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일단 경제적 불평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미국 사회를 기준으로 하면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어 다수가 보유한 자산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상위 1%, 혹은 0.1%의 재산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오늘날 중간층 출신인 학생이 자기 부모들만큼 수입을 올릴 확률은 40%에 불과하지만 상위 5%의 학생들은 그 확률이 90% 이상이다. 이렇게 벌어진 격차는 자연스레 ‘사회적 거리’를 만들어내고 이 거리는 협력과 사회적 연대를 어렵게 한다.

 제도적으로는 현대의 조직 구조가 협력을 금지한다. 단기적이거나 임시적인 일자리만 늘어나면서 ‘장기근속’이라는 말은 이미 듣기 어려워졌다. 2000년에 직장에 들어간 젊은이는 평생 12번에서 15번 가량 직장을 옮기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러한 단기적 노동시간은 또 사회관계를 피상적으로 만들고 정보를 다른 개인이나 부서와 공유하지 않는 ‘사일로 효과’를 강화한다. 당연히 조직에 대한 열의나 헌신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문화적으로는 차이 때문에 생기는 불안감을 줄이려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움츠러들거나 문화적 획일화에 편승한다. 그러는 가운데 다른 사람과 대면하고 그들과 협력하려는 욕망은 힘을 잃는다.

 그렇게 약화된 협력을 어떻게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까. 세넷은 유럽 문화사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대화와 협력 방식을 끌어와 재조명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아시아인의 사례다.

 중국은 ‘공격적인 자본주의 국가’이지만 강력한 사회적 단결 코드도 갖고 있다. 바로 관계나 연줄을 뜻하는 ‘꽌시(關係)’다. 이 비공식적인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중국인들은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도 사회적 결속이 어떻게 경제적 삶을 형성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또 다른 사례는 미국의 한국 이민자들이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 주로 정착하여 가게를 연 그들은 자기끼리는 잘 협력했지만 가난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고객을 상대할 때는 멸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 결과 1992년 LA폭동 때 많은 한국인 상점이 파괴당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친선이 구축되지는 않았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노와 편견을 뒤로 제쳐놓고 서로 침묵하기로 했다. 서로가 못마땅한 부분이 있더라도 말하지 않는 사회적 예절로서의 침묵 또한 사회적 협력의 중요한 바탕이다.

 지역·인종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다민족이라는 단어가 보통명사처럼 통용되는 시대, 이른바 사회적 협력을 통해서 어떻게 보다 더 튼튼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필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로쟈(본명 이현우) 북 칼럼니스트

●로쟈 서울대 노문학과 졸업(석·박사). 한림대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책과 책읽기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2000년부터 ‘로쟈의 저공비행’ 블로그를 운영해오며 필명 ‘로쟈’로 더 많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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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