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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박정희 시대와 박근혜 시대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버클리대학의 아델만과 모리스 교수가 1967년 출간한 『사회, 정치, 경제 발전: 수리적 접근』이란 저서는 한국의 60년 1인당 국민소득이 불과 79달러로 아프리카의 세네갈, 모잠비크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교육 수준, 문맹률, 소득분배율 등과 같은 사회지표를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한국민의 1인당 소득은 적어도 그 다섯 배는 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들 지표를 대입해 예측된 한국의 향후 성장률을 1960~85년 동안의 실제성장률과 비교해 보면 전자가 후자의 약 90%가까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후속 연구들은 보여주고 있다. 교육 수준은 기술을 받아들이고 익히는 능력을 높여 성장을 촉진시키고, 소득불균형은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고 경제 정책을 왜곡시켜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60년대 초 한국은 아프리카 저개발국들과 비슷하게 못살았지만 실제로 인력 수준, 사회자본, 그리고 균등한 소득분배 등을 고려할 때 향후 고속 성장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그러나 건축자재들이 훌륭하다고 해서 바로 집이 들어서는 것은 아니다. 60~70년대 박정희 정부는 적절한 설계와 유능한 시공으로 우리 국민의 잠재력을 엮어내 당시 사회지표가 예측해 주던 성장률보다 더 높은 성장을 실현해냈다. 당시 정부가 한 핵심적 역할은 바로 기획조정(coordination)을 통해 시장의 실패를 극복한 것이었다. 국가가 나서서 인프라를 깔아주고, 재정·금융 수단을 동원해 수출산업을 일으키고 생산의 집적화를 통해 종전에 개별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사업성이 없던 사업들이 투자가치가 있게 되고, 돈을 벌 수 있게 되어 투자와 생산이 급속히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숙련된 인력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면 산업화가 촉진되기 어려웠을 것이고, 또한 소득과 부의 분배가 균등히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면 막대한 국민 부담에 의한 기업 지원 정책에 국민들이 동의해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승만 정부에서 토지개혁과 초등교육의 보편화로 만들어낸 구슬들을 박정희 정부가 실로 꿰어 시대적 과제를 실천한 것이다.

 지난달 동국대 김낙년 교수가 국세청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2010년 한국의 소득분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중 칠레·멕시코·터키·미국에 이어 다섯째로 불균등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또한 지난해 SBS방송이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에 의뢰해 발표한 연구에서는 한국의 사회적 신뢰 수준이 터키나 독일보다 훨씬 낮아 그리스나 이탈리아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 수준도 비슷했다. 몇 해 전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은 한국이 대학진학률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나 대학 교육의 ‘경제·사회 요구 부합도’에서 55개 조사 대상국 중 53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또한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한국의 부패지수는 세계 45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0년대의 한국은 60년대의 한국과 달리 각종 사회적 지표들이 우리와 비슷한 소득 수준의 국가들에 비해 향후 성장이 더욱 빠를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더 지지부진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과제가 박정희 정부의 과제와는 크게 다름을 뜻하기도 한다. 박정희 정부가 내재해 있던 국민과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결집해 이에 걸 맞은 국가의 발전을 이뤄냈다면 박근혜 정부는 잠재력 자체를 키워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박정희 정부가 기술과 자본을 도입해 하드웨어 경제를 일으켰다면 박근혜 정부는 기술혁신과 지식창출 능력을 키워 소프트파워 경제를 일으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는 결국 지난 50년간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우리의 산업·노동·교육·언론계 등 각 분야에 뿌리내린 기득권에 의한 장벽을 낮추고, 담합적 사회 구조를 바꾸어 우리 사회가 진정한 경쟁 사회로 거듭나게 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기득권의 칸막이와 정면으로 맞서고, 우리 사회 보상 유인 체계의 재정립으로 치열한 공정 경쟁을 이뤄낼 플랜이 없으면 이 시대의 과제를 실천해내지 못한다.

 지금 세계는 18세기 산업혁명과 같이 수세기에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대변혁기에 들어서 있다. 이 변혁기에 입지를 세운 기업·나라들이 향후 긴 시간 그 자리를 향유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이 변혁기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는가? 박정희 시대에는 기득권의 저항이 공고하지 못했으며 그나마 권위주의 통치로 변화를 이뤄냈다. 박근혜 시대의 환경은 크게 다르다. 그리고 5년이란 시간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박근혜 정부가 박정희 정부처럼 시대적 과제를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적어도 새로운 변화가 진행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적 발판이라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림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조 윤 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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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