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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이두호 "초등학생 최민수, 얼굴이…"

자신들이 그린 명랑 만화 캐릭터만큼 재치있고 유쾌한 다섯 명의 화백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신문수 화백은 인터뷰 때 모습을 스마트폰 메모장에 그려 보내왔다(위 그림). [장진영 기자]

“안녕. 난 로봇찌빠야. 1974년생이니까 벌써 마흔이네. 나이가 들어도 철없는 건 똑같아. 우하하.”(신문수) “저, 기억하시죠? 번데기 야구단의 투수 뻔. 75년생. 일본에 퍼펙트 경기로 이겼죠. 얼마 전 WBC 야구 보고 생긴 체증이 좀 풀리신다고요?”(박수동) “75년생 동갑 요철입니다. 잠수함이나 타임머신 같은 제 발명품은 즐비하게 있죠. ”(윤승운) “다들 모이셨군요. 심술 가문을 대표하는 심똘입니다. 제 심술 어디 갔겠습니까. ”(이정문) “형님들! 인사가 늦었네요. 84년생 머털이옵니다. 주문을 외어볼까요. 머리털을 뽑고 ‘라해변~’.”(이두호)

 1970~80년대 유쾌한 웃음을 안겨줬던 명랑만화 캐릭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먼지 쌓인 책장에서 우연히 꺼낸 옛 사진첩처럼 오래된 추억들이 우수수 쏟아져나왔다.

세월이 흘러도 명랑만화 캐릭터들은 변함이 없었다. 그때 그랬듯 지금도 여전히 시끌벅적하고 발랄했다. 그런데 이들을 그려낸 ‘명랑만화 5인방’은 모두 고희를 넘겼다. 로봇찌빠 신문수(74), 번데기 야구단 박수동(72), 심똘 이정문(72), 머털도사 이두호(70), 요철 발명왕 윤승운(70). 만화가로 데뷔한 지도 50년을 넘겼다. 이두호 화백은 “70년대 중반 서울 동대문 대학촌 상가에서 작업실을 함께 썼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칸막이로 나눠놓은 작업실에 다닥다닥 붙어 명랑만화 5인은 만화 원고를 썼다. 집에서 주로 그림을 그렸던 이정문 화백도 잡지사에 원고 배달하러 갔다가 꼭 같이 모였다고 한다.

 이들 5인과 잡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64년 ‘새소년’이 창간된 뒤 70년대를 지나 80년대 중반까지 ‘소년중앙’ ‘어깨동무’ 등 3대 트로이카 시대가 이어졌고, 5인은 경쟁적으로 잡지 만화를 그렸다. 잡지는 이들에게 일거리를 줬을 뿐 아니라 그들의 젊음을 불태우게 했다.

종이 잡지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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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랑만화의 전성기, 그러니까 어린이 잡지 시대를 얘기해주세요.

 신: 젊은 시절 열정을 다해 만화를 그렸어요. 수많은 명랑만화를 그렸지요. 그 당시 아이들도 공부하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는데, 내 만화를 보면서 조금이나마 스트레스도 잊고 명랑해지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이정: 어떻게 보면 시대를 참 잘 만났어요. 처음 만화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원고료로 먹고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런데 잡지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함께 떴어요. 그러다 보니 만화 그리면서도 먹고살 만했죠. 밤새우는 건 부지기수고, 미친 듯 열심히 그렸지요.

 트로이카 중에서도 으뜸은 소년중앙이었다는 게 명랑만화 5인의 얘기였다.

 -소년중앙 하면 어떤 기억이 떠오르나요.

 박: 70년대 언제쯤인데요, 그때 소년중앙 편집장이 서경원씨였는데 당시 중앙일보·동양방송 홍진기 회장을 뵙고 나서 얼굴이 벌게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물어봤죠. 뭔 일 났느냐고요. 그때 10만 부가 팔려 사상 최고 판매기록을 세웠는데 홍 회장이 편집장을 불러 ‘누가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돈을 벌라고 했느냐’며 야단을 쳤다는 거예요. 야단은 맞았지만 싱글벙글하던 기억이 나네요.

 윤: 그때 소년중앙 원고료가 다른 경쟁지의 딱 두 배였던 기억이 떠오르네요(웃음).

 이정: 아, 정말 대단했죠. 그 시대 아이들에겐 그걸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파워’였어요. 돈 많은 집 아이가 아니고서야 100점 맞아야 살 수 있고, 특별한 날에만 살 수 있었으니까요. 그거 한 권 들고 있으면 모든 걸 다 가진 듯 자랑할 만했죠, 허허.

 소년중앙에 대한 애착은 5인 중에서 이두호 화백이 가장 커 보였다. “69년 창간 때부터 소년중앙과 같이했으니, 여자로 치면 친정집 같은 곳이지요. 그때부터 70년대 말까지 맨날 ‘때려치운다’고 하면서도 10년을 줄곧 만화를 그렸어요. 원래 꿈이 화가였으니까. 이래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잠시 쉬면서 2년을 보냈는데요, 신기하게 만화가 정말 그립고 너무너무 그리고 싶더라고요. 그때 앞으론 만화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어요. 2년 만에 만화에 대한 내 마음이 완전히 달라진 거죠. 소년중앙은 나에게 만화에 대한 갈망을 심어주고 삶의 태도를 바꾸게 해준 곳이죠.

 명랑만화 계열은 한국에서 어떻게 생겨나게 됐을까. 명랑만화의 효시는 1920년 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한 심산 노수현 화백의 ‘멍텅구리’라는 게 만화업계의 설명이다. 만화평론가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명랑만화는 50년대부터 만화방용 단행본 만화와 잡지 만화의 두 축을 중심으로 발전했다”며 “한국 명랑만화의 대표 작가인 고 길창덕 선생이라는 커다란 숲에서 신문수·윤승운 화백 등 거목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정문 화백은 심술 코믹만화의 계보를 이었고, 박수동 화백은 배고픔과 삶의 어려움을 밀착적으로 담은, 생활에 접근한 명랑만화를 키웠다”고 말했다.

 -각각의 대표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박: 저는 초등학교 교사를 해서 그런지 만화 그릴 때 목표를 뒀어요. 과거엔 전부 가난해서 도시락 싸온 애들이 한 반 70명 중 10명이나 될까요. 그 외에는 전부 점심시간이 되면 슬슬 나갔어요. 그런 아이들이 공부라도 잘하면 괜찮은데 공부도 어중간하니 있는 듯 없는 듯하는 거였죠. 그런 애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만화를 그리겠다는 목표를 가졌어요. ‘번데기 야구단’도 그런 취지로 그린 만화인데, 한참 원고 그리다 보면 눈물이 나서 혼자 울고 그랬죠. 원고에 눈물방울이 떨어져 마누라가 그거 닦느라 난리 치고(웃음). 울면서 만화 그린 기억이 나네요.

 신: 만화 속 ‘로봇찌빠’는 미국 로봇회사에서 600만 달러를 들여 만든 인공지능 로봇이지요. 두뇌회로 이상으로 연구소를 탈출한 뒤 한국의 개구쟁이 팔팔이네 집에 정착해 매일 재미있는 일을 벌여요. 당시엔 ‘철인28호’와 ‘마징가Z’라는 일본 로봇 만화가 나와 있었는데 너무나 완벽하고 폭력적인 캐릭터라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상대를 단숨에 박살내는 무시무시한 캐릭터잖아요. 그래서 약간은 모자라면서도 별 볼 일 없고,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친근한 로봇을 만들었는데 그게 찌빠였어요.

 이정: 저는 일찍 소년가장이 돼서 고생을 참 많이 했어요. 구두닦이와 신문 배달부터 안 해본 일이 없었지요.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고생하다 보니 세상이 야속하게 여겨지데요. 그래선지 심술쟁이 캐릭터를 그리고 싶어졌어요. 심술보가 붙어 아래턱이 툭 튀어나온 얼굴이 특징이고. 안하무인의 심술쟁이 캐릭터가 세상의 권위를 향해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심술을 부려대는 거죠. 59년 내놓은 심술첨지로 시작해 지금은 5대손에 애완견까지 불어났어요.

만화가 사인회 처음으로 열어

 요즘 아이들이 웹툰에 빠져 있듯 70~80년대 아이들은 이들의 명랑만화에 열광했다.

 -당시 인기가 대단했겠어요. 팬도 많았겠고요.

 이두: 배우 최민수가 초등학생 때 사인 받으러 오고 했지요. 70년대 초 남산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초등학교 남학생 둘이 사인 받겠다고 찾아왔어요. 둘 다 아주 잘생겼어요. 한 아이가 최무룡 아들이라고 해서 나중에 ‘그때 만난 아이가 배우가 됐구나!’ 했어요. 미국으로 이민 간 아이가 몇 년간 팬레터를 보냈던 기억도 나네요.

 윤: 교보문고가 생긴 지 몇 해 안 됐던가. 우리가 다 같이 가서 만화가로선 처음으로 사인회 열었던 기억도 나네요.

 이정: 그땐 어린이 팬들이 보내온 편지가 쌓였지요. 잡지사마다 다달이 애독자 엽서를 받았는데, 거기에 이달에 재미있는 만화를 1위부터 5위까지 표시하게 돼 있었어요. 순위가 딱 나오는 거야. 거기서 순위가 떨어지면 연재 오래 못했어요(웃음).

 -아이들에게 만화란 어떤 것일까요. 요즘 어린이 만화 시장에선 학습 만화가 대세가 됐는데요.

 신: 공부에 찌든 아이들이 만화를 보며 잠시나마 머리를 식히고 깨소금 같은 재미를 느끼는 탈출구랄까.

 이정: 어린이들에게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문을 열어주고 바른 정서를 심어주는 게 만화라고 봐요. 좋은 만화는 좋은 약과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선별해서 좋은 만화를 자주 보여줘야지요.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종이에 인쇄된 만화는 읽는 힘을 길러주는 좋은 약이 될 거예요.

 이두: 만화는 아이들에게 꿈과 무한한 상상력을 길러주지요. 요즘은 스토리는 누가 던져주고 만화 그리는 사람은 이름도 없이 만화만 그린다고 해요. 창작한 사람의 이름이 없는 만화책이 등장했다는 게 참 슬프죠.

 윤: 1000만 권 팔렸다는 학습 만화 시리즈가 만화가 이름도 없이 출판되더라고요. 만화가가 고작 기능공으로 전락한 것 같아 서글퍼요.

명랑만화엔 3대가 웃을 수 있는 코드 있어

 그렇다면 이들의 웃음 코드는 지금 세대 아이들에게도 먹힐까. 박석환 만화평론가는 “유쾌한 웃음은 시대가 바뀌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들의 명랑만화가 e북 형태로 복간된다면 디지털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할아버지·아버지·아이 3대가 함께 보며 웃을 수 있는 코드가 이들 만화에 있다는 얘기다. 신 화백도 “손주들에게 로봇찌빠 종이 만화를 줬는데, 종이가 닳도록 재미있어 하며 읽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웹툰과 학습 만화가 대세인 현 세대에서 명랑만화 5인의 바람은 무엇일까.

 윤: 제대로 된 잡지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1%라도 공부 외에 다른 생각할 틈을 줄 만한 잡지 말이에요. 아이들이 정서적으로도 자랄 틈이 있어야 하는데 보통 8~9군데 학원에 다니면서 부모의 성화에 학습 만화를 보고 있어요. 숨이 막히지 않을까요.

 이정: 이젠 뭐, 애들이 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앉아 있는 세상이 됐지요. 네이버 카페 ‘클로버 문고의 향수’라는 동호회엔 옛날 만화 문고판을 낸 클로버 문고를 그리워하는 중장년층이 모여 있습니다. 복간을 간절하게 기다리던 사람들이 스스로 돈을 모아 복간을 추진하더라고요. 음악에서 ‘쎄시봉’이 복고 열풍 불러일으킨 것처럼 말이죠. 소년중앙 같은 잡지가 다시 나온다면 요즘 아이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부모 세대한테도 분명 사랑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신: 소년중앙이 다시 태어나 지금의 청소년들에게도 상상력과 희망을 심어주고, 신인 만화가들도 새로운 소년중앙을 통해 꿈을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지금 어른이 된 학부형들이 매달 책 나오는 날만 기다렸던 것처럼 자녀들도 그렇게 기다리는 뭔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에스더 기자

◆ 어린이 잡지 트로이카=1960~70년대를 주름잡던 ‘소년중앙’ ‘어깨동무’ ‘새소년’ 등 3대 잡지. 시사·과학·교양·탐정 등의 기사와 만화 별책부록으로 어린이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새소년이 64년 5월 창간됐으며 어깨동무는 67년, 소년중앙은 68년 각각 나왔다. 82년 종합 만화잡지 ‘보물섬’이 등장하고 일본 번역 만화에 밀리면서 80년대 후반부터 폐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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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