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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언 첫 韓회장 "예쁜 英 누나가 다가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연결고리는 ‘옥스퍼드 유니언’이다. 영국 명문 옥스퍼드대의 학생 자치기구인 유니언은 200여 년간 수많은 명사를 배출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 총리를 세 번이나 지낸 윌리엄 글래드스턴이 모임의 기틀을 닦았고, 뒤이어 유니언 출신들이 잇따라 정·관계에 진출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세계 정치 지도자들의 산실로 유명한 이곳에서 지난해 동아시아계로는 최초로 한국인 회장이 탄생했다. 2010년 옥스퍼드대 허트퍼드 칼리지에 입학해 정치·철학·경제학 복합전공(PPE) 과정을 밟고 있는 이승윤(23·존 리)씨다. 잠시 한국에 나와 있는 그를 만났다.

지난해 한국인으론 최초로 영국 옥스퍼드대 유니언 회장에 뽑힌 이승윤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유니언에 대해 설명해달라.

 “1823년 만들어진 대학생 토론 모임이다. 현재 재학생의 70%가 넘는 1만2000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동아리인데, 관리하는 자금만 20억원이나 되고 유니언 회관도 따로 있다.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화제가 되는 현안을 주제로 잡고 관련 국회의원이나 정치인·학자들을 초청해 토론을 한다.”

 - 70%면 엄청 많은데, 들어가기가 쉽나.

 “재학생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다만 토론 주제가 워낙 무겁고 주제도 논쟁적이어서 공부와 병행하면서 활동하면 부담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친 유니언 출신 유명인사가 많은 데다 쉽게 접하기 힘든 연사들과 직접 토론하고 강연도 들을 수 있어서 신입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동아리 중 하나다.”

 - 왜 들어가게 됐나. 원래 유니언을 알았나.

 “몰랐다. 입학했는데 예쁜 영국인 누나가 ‘나 유니언 회원인데 토론 보러 같이 갈래’라고 제안해 왔다. 외국인이고 영국이 낯설어 외로워하고 있었는데 적극적으로 다가와주니 고마웠다. 그게 신입생 유치작전인 건 몰랐다. 순진했다(웃음). 처음 따라갔는데 토론이 굉장히 격렬했다. 정부 재신임에 관한 토론이었는데 국회의원이 직접 참석했고, 학생들은 그 의원의 모든 지출 기록을 가져와 추궁하더라. 이런 세계도 있구나 감탄했다. 영국 애들처럼 말 잘하고 싶은 욕심도 컸다.”

 - 처음부터 회장 할 생각을 하고 들어간 건가.

 “1학년 1학기 때부터 임원을 한 건 맞지만 회장 욕심은 크게 없었다. 회장이 되려면 임원·부회장 등 4단계 정도 거쳐야 하는데 임원이 되고 보니 회장의 역할이 정말 엄청났다. 유명인사들을 전부 섭외하고 그들과 만나 대화하고 연사 초청권까지 갖고 있더라. 슬슬 욕심이 났다.”

동양 출신 이방인으로 겁 없이 도전장

 유니언 회장 선거는 치열하기로 유명하다. 한 정치평론가는 “웬만한 정치인 선거보다 더럽다”고 평하기도 했다. 보리스 존슨 런던시장의 유니언 회장 선거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영국 전역에 방송될 정도였다.

보시라이 전 중국 충칭시 당서기의 아들 보과과는 3년 전 대사관 차원의 전폭적 지원 속에 부회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보과과, 여긴 중국이 아니야. 표를 돈으로 살 순 없어”라는 학내 언론의 경고를 받으며 낙선하기도 했다.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는 1977년 4수 끝에 간신히 회장에 당선됐다. 그만큼 어렵지만 모두가 원하는 자리다.

이처럼 전 세계 황태자들의 ‘피 터지는’ 대결장으로 불리는 유니언에서 영국 사립학교 출신도 아니고, 영국인도 아닌 그가 별다른 배경도 없이 회장 자리에 도전장을 냈다.

 - 선거가 힘들진 않았나.

 “임원직에 계속 올라갈 때마다 ‘저 동양 애가 어디까지 올라가나 보자’라는 시선이 느껴졌다. 회장 선거 직전에는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영국인 친구가 따로 캠프를 차렸다. 선거본부는 두 동강 났고 믿었던 친구들마저 ‘존과 함께하면 승산이 없을 것 같다’며 주저하기 시작했다. 정말 포기하고 싶었다.”

 - 인종차별도 존재했나.

 “옥스퍼드는 워낙 국제화돼서 인종차별은 겪은 적이 거의 없다. 대신 이튼·해로우 등 유명 사립학교 출신이 절반인 유니언에서 나는 이방인이었다. 마치 소도시에 살던 애가 서울대에 입학해 민사고·대원외고 애들이 주축인 동아리에 들어간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 특유의 문화를 읽어내지 못해 적응하기도, 선거운동하기도 힘들었다.”

 - 어떻게 극복했나.

 “여러 회장 캠프에서 컨설턴트로 활약했던 친구의 조언이 힘이 됐다. ‘역대 유니언 회장들은 가장 위기의 순간에도 굴하지 않았다’며 힘을 실어줬다. 기조연설할 기회가 있으면 유명 정치인들의 연설 원고를 구해 손짓과 입꼬리, 쉬어가는 포인트까지 연구하며 최대한 비슷하게 해보려 노력했다. 차차 아이들의 반응이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재정 담당 부회장이었던 점을 십분 활용해 ‘유니언의 재정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라는 캐치프레이즈도 내세웠다. 평소 끈끈하게 지냈던 중국인 친구들과 진보적인 아이들의 지지도 힘이 됐다. 오히려 동양 출신 비주류라는 점이 먹힌 것 같기도 하다(웃음).”

싸이 섭외하러 학연까지 총동원

이승윤 옥스퍼드 유니언 회장이 강연차 유니언을 방문한 싸이(사진 위),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회장에 당선된 이씨는 검증 및 준비 기간을 거친 뒤 6월부터 본격 활동에 나섰다. 학기당 평균 토론 수 8개, 강연 수 20~30개인 이곳에서 이씨 재임 중 토론은 11번 열렸고 연사는 50여 명이 다녀갔다.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 『제3의 길』로 유명한 앤서니 기든스, 인기 영화배우 마이클 쉰 등이 연사로 초청됐다. 취임 후엔 모든 강의와 토론을 녹화해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씨 취임 전에는 늘 언론 보도로만 접할 수 있던 풍경이었다.

 - 정말 바빴겠다.

 “휴학했다. 임기 내내 캠퍼스 밖에 거의 나가본 적이 없을 정도다. 10년 할 일을 몇 달 만에 전부 끝낸 것 같다. 매일 연사 초청을 해야 했고, 또 연사가 오면 저녁식사 때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대화를 나누며 어떤 자리에 앉을지 세부 동선까지 짜야 했다. 재정도 늘 체크해야 했고 밀려드는 언론 인터뷰도 모두 소화해내야 했다. 이를 매일 반복했더니 임기 끝날 때는 체력이 바닥나 버렸다. 하지만 너무 행복했다. 이 나이에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초청하고 대화를 나누는 건 굉장한 경험이지 않나.”

 유니언은 단순한 토론 동아리가 아니다. 가장 파급력 있는 이슈를 다루고 관련자들을 전부 불러모으다 보니 영국 언론들이 토론 결과를 앞다퉈 보도할 정도다.

유니언의 강연 또한 화제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유니언을 방문해 워터게이트 당시의 심경을 토로했다. 로널드 레이건·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테레사 수녀, 달라이 라마, 마이클 잭슨, 본 조비 등 세계적 저명인사들도 유니언을 찾았다. 유니언이 부른다면 세계 어디서든 자비로 달려오는 이유다. 유니언은 연사들에게 강연료를 따로 주지 않는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연사는.

 “당연 싸이다. 어렵게 연결돼 석 달간 계속 연락했다. 11월 초께 오기로 했는데 10월 중순까지 답이 없었다. 협의 중이었는데 갑자기 중앙일보에 기사가 나더라. ‘싸이, 옥스퍼드에서 강연한다’라고(본지 지난해 10월 23일자 30면). 싸이 매니저(스쿠터 브라운)가 굉장히 까칠한데 혹시라도 취소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기사가 나간 뒤 영국 언론에까지 알려졌고, 결국 싸이도 안 올 수 없는 상황이 됐다(웃음).”

 - 싸이는 국내에서도 섭외가 정말 힘든데.

 “YG에 지인이 있어 그분을 통해 접촉했다. 또 내가 한국에서 잠시 세화고를 다녔는데 마침 싸이가 세화고 출신이더라. 선후배 사이임을 강조했다. 한국인 회장이 있을 때 꼭 강연해야 한다는 어설픈 주장도 펼쳤다. 학연·지연에 ‘국연’까지 동원한 셈이다. 결국 통했다.”

 - 강연은 어땠나.

 “최고였다. 친구들이 정말 좋아했다. 추첨해서 들어가야 할 정도였고, 싸이도 원고 없이 1시간을 얘기하는데 대단했다. 사실 회장 특권으로 VIP들은 20~30명 객석에 넣을 수 있는데, 나중에 거기 누굴 넣어줬느냐를 놓고 ‘비리’라며 학교 신문에 실렸을 정도였다.”

세상 넓게 보려면 영어는 필수

 성공한 조기유학 세대일 것 같은 이씨는 사실 ‘국내파’나 다름없다. 경기초등학교를 나왔고 이후 신반포중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고교 시절을 보냈다. 마지막엔 다시 대원외고로 돌아와 3학년 마지막 학기를 지냈다.

 - 모범생이었을 것 같은데.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강남 모 영어학원 시험을 쳤는데 기초반에도 못 들어가고 떨어졌다. 영어유치원은 한 달을 못 채우고 그만뒀고, 중학교 평균 성적은 전교 50~60등 정도였다.”

 - 영어 열등생이었나.

 “나름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해 강남에 가서 시험을 쳤는데 결과가 그렇게 돼서 엄마와 나, 모두 충격을 단단히 받았다. 당시 가양동에 살았는데 어린 마음에 ‘강남과 강북의 차이인가’라고 생각하며 좌절했다. 그 후 미국 친척집에 5개월간 머물며 영어를 익히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다시 그 학원 시험을 쳐서 최고반에 들어갔다(웃음).”

 - 어린 나이에 독하다.

 “어렸지만 미국에 가서 ‘왜 영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았다. 영어를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적응을 잘 못했다. 내신도 좋은 편이 아니었고.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공부에 재미가 붙었고, 영어에 재미가 붙자 성적도 덩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현재 이씨는 한국에 잠시 들어와 있다. 인턴십을 하기 위해서다. 내년 여름엔 유니언 회장 시절과 옥스퍼드대에 입학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책도 낼 예정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매일 꿈이 바뀐다. 정치를 하고 싶었는데 선거를 겪어보고 회장까지 하고 나니 현재는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큰돈을 만져 보니 경제에도 관심이 생겼고, 또 기자들을 많이 상대하다 보니 언론인이 되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무엇보다 너무 오랫동안 공부를 못 해 머리가 녹슬었다. 복학해서 맘껏 공부하고 싶다.”

글=송지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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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