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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23) 신임 각료 제청 거부

2004년 5월 24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이 김우식 비서실장(왼쪽), 조윤제 경제보좌관(왼쪽 둘째), 천호선 의전비서관(오른쪽)과 수석보좌관회의를 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가고 있다. 이날 오후 고건 총리는 노 대통령에게 사표를 냈다. [중앙포토]


“차 한잔 하시죠.”

복귀한 盧대통령 얼굴 굳게 한 고건의 한마디



 국무회의가 끝나고 청와대 세종실을 나오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말을 건넸다. 차 한잔. 단 둘이 얘기를 나누자는 신호다. “네. 그러시죠.”



 2004년 5월 18일 노 대통령이 복귀하고 처음 연 국무회의였다. 나흘 전 만찬에서 사의를 밝혔고, 그도 받아들였다. 이미 나는 물러나는 총리였다. 언론도 다 그렇게 보도했다. 집무실에서도 짐을 싸고 인수인계를 준비하는 게 주로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싶었다.



 별실에 마주 앉았다. 노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통일부 장관과 복지부 장관을 경질하는 인사를 하려고 합니다. 김근태 의원이 통일부 장관을 희망하고 있지만 복지부 장관으로 내정했어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왜 나한테 개각에 대해 설명하는 거지?’ 의문은 바로 풀렸다.



 “새 장관들을 임명 제청해 주십시오.”



 1998년 김대중 정부 조각 때 총리로서 각료 제청권을 행사했다. 김종필 서리의 총리 임명이 국회 반대로 늦어졌고, 국정 공백 사태를 방치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나섰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랐다. 내가 제청을 하지 않더라도 국정 혼란이나 법적 다툼을 걱정할 일이 없었다.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물러나는 총리가 신임 장관을 제청할 수 없습니다.”



 노 대통령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난 다시 말했다.



 “새로 임명된 총리가 신임 각료들을 임명 제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래도 그걸로 결말이 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19일과 21일 나를 만나 “각료 제청권을 행사해 달라”는 노 대통령의 뜻을 다시 전했다. 그때마다 내 답은 “안 된다”였다.



 그 즈음 청와대가 총리에게 신임 각료 제청을 요구했고, 내가 거부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23일 김우식 비서실장이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그 사실을 확인해줬다.



 더 이상 내가 입을 다물고 있을 순 없었다. 김덕봉 총리 공보수석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김우식 실장과 두 차례 만난 사실을 인정했다. “김 실장에게 ‘헌법상의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 제도의 취지에 비춰 물러나는 총리가 신임 장관을 임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고사했고 그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했다.



 다음날인 5월 24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집무실에 있는데 김우식 비서실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세 번째 면담 요청이었다. 노 대통령 나름의 삼고초려(三顧草廬·세 번 찾아 간청함)였나 보다.



 “제가 총리실로 가겠습니다.”



 “아니, 기자들이 보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지 말고 공관으로 오세요.”



 예정돼 있던 점심 약속을 서둘러 취소하고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갔다. 공관 뒷문을 열어둘 테니 그쪽 통로를 이용하라고 일러뒀다. 청와대 비서실장 관저에서 나오면 공관 후문으로 연결되면서 눈에 잘 안 띄는 길이 있다. 기자들의 눈을 피하는 게 가능했다.



 김우식 실장이 공관 집무실로 들어왔다. 장관 제청을 할 수 없는 이유를 정리한 문서 원본과 복사본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그에게 차근히 설명했다.



 “헌법학자·정치인·언론인을 두루 만나 제청권 행사에 대해 의견을 들었습니다. 한결같이 물러나는 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은 순리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어요. 사퇴하는 제가 새 장관을 제청하면 헌법 정신에도 어긋나고 국정을 편법으로 운영하는 게 됩니다.”



 ‘대통령이 총리의 사의 표명을 가납(嘉納·기꺼이 받아들임)했다’는 보도가 며칠 전 대대적으로 나왔다. 굳이 사표를 쓸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장관 제청을 계속 요청하는 상황에서 내 입장을 상기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직접 사표를 썼다. 사표 한 장과 장관 제청을 할 수 없는 이유를 적은 원본 한 장. 그렇게 두 장 종이를 접어 봉투에 넣어 김 실장에게 줬다.



 “대통령께 전달해 주십시오.”



 공직 생활 30여 년을 마무리하는 일곱 번째 사표였다.



정리=조현숙 기자



◆ 이야기 속 인물



김덕봉




고려대 산학협력단 R&D전략센터장.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민자당 정세분석위원회 수석상근연구위원을 하다 1992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무담당 전문위원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 행정쇄신비서관·국무총리실 행정쇄신위원회 행정실장을 맡았다. 이때 고건 총리와 처음 만났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무조정실(현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조정관·대통령실 정책2비서관을 지냈다. 2000~2004년 총리 공보수석으로 일하며 고건 총리와 다시 만났다. 고건 총리가 물러나고 나서도 ‘입’ 역할을 했고 2006~2007년 대선 후보로 거론될 때 대변인 격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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