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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신학의 고향 남미, 첫 교황 프란치스코를 낳다

13일(현지시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새 교황이 결정됐음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자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수녀 등 가톨릭 신자들이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바티칸시티 AP=뉴시스]


세속의 눈으로 본다면 가톨릭교회는 12억 ‘회원’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초국가 단체’다. 그 우두머리인 교황으로 프란치스코가 선출된 것은 세계적인 영향이 예상되는 ‘지리상의 대변혁’이다. 지리적 범주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새 교황은 최초의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최초의 미주(美洲·Americas),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출신 교황이다.

가톨릭의 중심 비유럽으로 이동
새 교황, 해방신학엔 반대하지만 사회정의 문제 있어서는 진보적
예수회 소속, 권위에 저항 경향



 교황청의 개혁도 중요하지만 프란치스코를 선출한 추기경들은 세계 가톨릭의 중심이 유럽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비유럽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외면할 수 없었다. 가톨릭 신자 수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24%, 라틴아메리카는 42%다. 추기경들은 그러나 아시아·아프리카가 아니라 ‘제2의 유럽’이라고 할 수 있는 미주, 미주 중에서도 못사는 미주인 라틴아메리카를 선택했다.



 프란치스코의 교황직 수행에 영향을 미칠 요소로 라틴아메리카에서 전개된 가톨릭교회와 사회의 역사적 맥락을 빠트릴 수 없다. 역사적으로 가톨릭 교회는 라틴아메리카의 가난과 불평등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 교회는 라틴아메리카의 독립, 공화주의, 자유주의에 반대해 이 지역의 근대화를 지연시켰다.



 신임 교황이 ‘프란치스코’를 즉위명으로 선택한 데는 깊은 뜻이 담겼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1950~6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싹튼 해방신학에서 중시하는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영감을 받은 해방신학에서 가난과 억압, 불평등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제2의 출애굽(出埃及)’이다.



 새 교황은 해방신학 자체에는 반대한다. 아르헨티나 예수회의 수장으로서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으로서 그는 교구 사제들을 해방신학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분투했다. 그 과정에서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게 오점으로 남았다.



 프란치스코는 해방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죄(pescado social·social sin)’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불평등한 부의 분배를 비롯해 사회의 구조가 죄의 문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새 교황은 정통 가톨릭 신학과 신앙을 표방한다. 여성의 사제직 진출, 피임, 낙태, 안락사, 동성 결혼에 반대한다. 그러나 사회정의 문제에 있어서는 진보적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청빈 정신은 해방신학에 대한 교황의 대안이자 대답이다. 가난한 철도 노동자의 아들인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교회를 강조하는 가운데 화려함을 줄인 검소한 교황청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 시대의 가톨릭 교회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교황이 예수회 소속이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지성적, 합리주의적 성향이 강한 예수회는 권위에 대한 회의와 저항으로도 유명하다. 가톨릭 교회 입장에서 라틴아메리카는 오순절파 개신교와 세속주의의 도전이 가장 거센 곳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김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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