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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흙 속에 씨앗을 묻지 않으면 봄이 아니다

김서령
오래된 이야기 연구소 대표
3월에 비가 오면 봄이 한걸음 다가온다는 신호다. 11월에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비와는 소리부터 다르다. 흙이 빗물을 다디달게 받아 마시는 소리는 애기가 엄마젖을 꿀꺽꿀꺽 삼키는 소리를 닮았다. 그걸 마시고 아무 것도 없던 땅에서 맹렬하게 풀들이 돋아나오고 회초리 같던 나무줄기에선 거짓말처럼 꽃과 잎이 화들짝 피어난다.



 반대로 봄은 흙이 입을 벌려 씨앗을 맹렬히 삼키는 계절이다. 나무라면 꼬챙이만 꽂아둬도 물이 오르고 씨앗이라면 땅바닥에 굴러 떨어지기만 해도 싹이 돋는다. 모든 길짐승·날짐승의 피톨과 핏줄이 요동치는 소리로 지구 전체가 들먹들먹한다. 이런 봄에 인간이 할 유일한 일은 씨앗을 땅에 묻는 일이다. 그게 무슨 씨앗이든 상관없다. 씨앗 한 톨은 가을에 수백 배의 알곡으로 돌아온다. 따로 가꾸지 않아도 햇볕과 바람과 비가 절로 그렇게 만들어 준다. 그게 우주의 법칙이니까!



 땅에 씨앗을 심자는 것은 반드시 ‘수확’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돋아나는 싹을 보자는 것이고 싹이 자라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여무는 것을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우린 다들 ‘힐링’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참을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이 쌓여버렸다. 살짝 건드려도 울화통이 폭발하는 사람, 분노가 목젖까지 치고 올라오는 사람이 수백만명 모여 있다면 도시는 그대로 폭탄이다.



 의외로 대답은 단순한 곳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선 집집마다 텃밭을 하나씩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다. 땅에 씨앗을 심어두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서로 관계를 맺고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서로를 살린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애정을 갈구하지만 거꾸로 애정을 쏟을 대상도 필요하다. 아침마다 햇볕을 받고 넌출넌출 자라는 텃밭 채소를 들여다볼 수 있다면? 반려동물을 기를 형편이 안 된다면 대신 반려식물이다!



 물론 도시에는 땅이 없다. 아무리 우주가 요동치는 봄이 와도 씨앗을 묻을 도리가 없다. 얼마 전 괴산농부 이태근 선생을 만났더니 도시인을 위해 만들었다는 ‘주머니 텃밭’이란 것을 보여줬다. 상추 스무 포기, 얼갈이 배추 열 포기를 심을 만한 크기였다. 방수천으로 만들어 미생물이 살아 있는 흙을 담아둔 것으로 스티로폼 상자나 비닐 쇼핑백에 흙을 채우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괴산농부처럼 디자인을 신경쓰면 금상첨화!). 이미 그런 농사를 짓고 있는 이들도 많으니 오늘 나는 조금 진보적인 제안을 해보겠다. 거기 상추나 배추 같은 잎채소의 모종을 심는 대신 토종 씨앗을 뿌려보자는 것이다. 알다시피 예부터 우리 땅에서 자라던 종자다. 이 땅의 물, 바람, 흙을 먹으며 뿌리내려 우리 풍토에 잘 어울린다. 강인해서 웬만하면 병에도 잘 안 걸리니 굳이 농약을 칠 필요도 없다. 우리 토종 식물은 18만7000종이나 됐는데 해마다 200종 이상씩 줄어들고 있다.



 종자회사가 만들어낸 품종은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높이는 데만 집중해 병충해에 취약하고 영양분도 과하게 필요하다. 종자회사가 대개 농약회사까지 함께 운영하니까! 씨앗이 맺히지도 않게 육종했다. 모종까지 팔아야 하니까! 우린 눈 번히 뜨고 당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땅에 심는 무·배추·상추 씨앗의 대부분은 다국적기업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다. 심지어 청송과 영양을 한 글자씩 따서 만든 매운고추인 ‘청양고추’까지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당근과 토마토가 80% 이상 외국 씨앗인 건 ‘당근이고!’.



 예부터 우리 땅은 콩의 땅이었다. 메주콩만 해도 300종이 넘고, 돌콩이라 불리는 야생콩은 1000종류가 넘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콩 자급률은 지금 5%에도 못 미친다.



 봄이다. 땅에 무언가를 심어야 봄을 맞을 자격이 있다. 심되 토종 씨앗을 심고 이왕이면 토종 콩을 심어 보자. 콩은 열매 말고 잎도 예쁘고 꽃도 예쁘다. 넝쿨을 타고 오르는 종류만도 수백 종이다. 도시의 아파트 베란다에 한 집에 하나씩 토종 씨앗이 자라고 있는 한 이 땅은 건강을 잃지 않는다. 콩꽃을 피운 집이라면 웬만한 층간소음쯤은 웃어넘길 수 있다. 지난주가 경칩이었고 다음 주엔 춘분이다.



 씨앗을 땅에 묻지 않으면 봄은 헛것이다. 금방 지나가 버리리라!



김 서 령 오래된 이야기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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