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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 맞은 아내, 의료보험 안된다고 하자…

그날(지난달 28일)은 남편 A씨(47)의 마흔일곱 번째 생일이었다. 이웃들을 집으로 불러 함께 저녁을 먹었다. 아내 B씨(53)는 소박한 생일상을 차렸다. 술이 몇 차례 돌았고, 남편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밤 10시쯤 이웃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강원도 양구군의 겨울밤이 깊어갔다. 설거지를 마친 아내는 안방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종일 생일상을 차리느라 고단했던 터라 온몸이 쑤셔왔다. 그때 술 취한 남편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들이 곧 올 테니까 술상 다시 차려.”

 아내는 순간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벌써 다 치웠는데 이 밤에 어떻게 상을 다시 차리라는 말이야.”

 “네가 감히 남편을 무시해?”

 얼굴이 시뻘게진 남편이 누워 있는 아내에게 달려들었다. 갑자기 아내의 배 부위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남편은 배를 안고 뒹구는 아내에게 발길질을 계속했다. 그날 밤, 아내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내장이 꼬인 듯 복통이 심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의 폭행 사실을 의사에게 털어놓지 않았다. 폭행을 당한 경우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수년간 술 취한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면서 익힌 나름의 노하우였다. 아내는 병원에 “나뭇짐을 메고 가다가 넘어졌다”고 둘러댔다. 남편의 일용직 노동으로 근근이 살림을 꾸려 가는 마당에 병원비까지 비싸게 치를 순 없었다. 엿새 뒤 아내는 장파열로 숨지고 말았다. 사망 원인은 ‘병사(病死)’로 기록됐다. 이웃들은 “남편이 아내를 때려 숨지게 해놓고도 모른 체한다”며 수군댔다. 이 소문은 경찰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경찰은 아내의 타살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를 계속했다. 그러는 사이 남편은 태연하게 아내의 장례 절차를 진행했다. 남편이 아내를 화장하려던 순간, 경찰이 달려가 다른 가족들을 설득, 화장 절차를 중지시켰다. 그러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결과는 ‘타살’ 소견. 남편은 그제야 체념한 듯 “아내가 저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홧김에 배를 찼다”고 실토했다. 강원도 양구경찰서는 지난 11일 남편 A씨를 구속했다.

 가정폭력이 해마다 늘고 있다. 가정폭력으로 검거된 사람은 2011년 7272명에서 지난해 9345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가정폭력으로 한번 처벌받은 사람이 다시 적발된 경우는 지난해 기준 3095명(32.1%)이었다. 3건 중 1건은 재범이라는 얘기다. 특히 남편이 아내에게 폭행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찰 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아내 학대 건수는 전체 가정폭력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남편의 폭행으로 숨진 사례도 적지 않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아내는 83명에 달했다.

 경찰청은 13일 “이처럼 심각한 가정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 가정폭력 전담 경찰관을 경찰서마다 1명씩 배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의 4대 사회악 근절의 일환이다. 경찰은 올해 가정폭력 전담 경찰관 137명을 대형 경찰서 위주로 배치할 계획이다. 이후 112명을 추가로 배정한다. 전담 경찰관은 가정폭력 사건의 초동 조치부터 가·피해자 조사, 사건 송치까지 전 과정을 책임진다.

 경찰은 또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의 수사를 방해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가해자가 퇴거·격리 등을 거부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 도입도 추진 중이다.

정강현 기자

◆4대 사회악=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 등을 4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임기 내에 이를 척결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박 대통령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경찰청은 지난달 27일 ‘4대 사회악 근절 추진본부’ 출범식을 열었다. 전국의 16개 지방경찰청과 249개 경찰서에도 4대 사회악 근절 추진본부가 잇따라 문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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