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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는 소리꾼이 풀어야 귀가 즐겁고 말마디가 살죠

창극이 출렁이고 있다. 독일의 세계적인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가 2011년 주도한 ‘수궁가’의 스펙터클한 무대를 시작으로 지난해 국립극장 레퍼토리로 선보인 스릴러창극 ‘장화홍련’, 코믹창극 ‘배비장전’ 등은 전석매진을 기록했다. 그 신선한 충격의 중심에 김성녀(63)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 있다.

창극 대중화 나선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마당놀이를 30년간 지켜온 국악인이자 연극배우인 그는 지난해 초부터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을 맡아 골동품화되어 가던 창극 대중화에 온 힘을 쏟고 있다. 2013년의 첫 시도는 ‘서편제’. 3월 27일부터 31일까지 국립극장에 오를 이 무대는 18대 대통령 취임식을 총 감독한 ‘명성황후’ ‘영웅’의 뮤지컬 감독 윤호진을 연출로 기용했다. 또 아시아를 대표하는 크로스오버 뮤지션 양방언이 음악감독을, 안숙선 명창이 작창을 맡았고, 뮤지컬 ‘영웅’ ‘서편제’에서도 활약한 무대 디자이너 박동우까지 투입된 ‘창작 드림팀’이다. 영화와 뮤지컬에 선수를 뺏겼던 우리 소리 콘텐트를 되찾아 오려는 국립창극단의 야심찬 시도다. 4일 오후 김성녀 예술감독을 만나 요동치는 창극의 현재를 물었다.

-지난 1년간 다각도로 창극의 변신을 이끌었다. ‘장화홍련’ ‘배비장전’은 전석매진되며 화제몰이에 성공했는데, 내용 면에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창극역사 100년, 국립창극단 50년이 되는 동안 판소리 다섯 바탕을 벗어나지 못했다. 고정 레퍼토리화되어 관객의 저변을 넓히지 못한 것이다. 이제 창극도 공연계 정중앙으로, 음악극들 경쟁구도에 뛰어들어야 한다. 무형문화재 발표로 끝나서는 의미가 없다. 요즘 이야기도 다뤄야 하고, 작품이 논란이 되기도 해야 한다. 장화홍련은 예전 관객이 아니라 연극·뮤지컬 관객이 왔고, 창극의 변신에 대한 놀라움과 비판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많은 연출가가 와서 창극을 다시 보고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참여를 끌어낼 수 있게 된 것도 수확이다.”

1 이병훈 연출의 코믹창극 ‘배비장전’(2012) 2 독일의 명장 아힘 프라이어 연출의 ‘수궁가’(2011) 3 한태숙 연출의 스릴러창극 ‘장화홍련’(2012)
4 ‘서편제’는 주인공 송화를 나이에 따라 3명의 배우가 나눠 맡으며 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좌로부터 중년의 송화 김미진, 노년의 송화 안숙선 명창, 어린 송화 민은경)
-윤호진 감독도 그래서 참여하게 된 건가.
“국립극장이 레퍼토리 시즌제로 가면서 사실 첫 공연을 서편제로 하고 싶었다. 안호상 극장장에게 소리의 길을 찾아가는 소리꾼들의 얘기를 창극단이 안 하고 왜 영화와 뮤지컬이 하느냐, 창극단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소재 아니냐 했더니 윤호진 감독이 해보고 싶어한다고 했다. 자신은 소리를 전혀 모르지만 극이 있으니, 극에 소리를 입히면 어떻게 되나 꼭 해보고 싶다더라. 그런데 영화·뮤지컬과 차별화 작업이 너무 어렵다. 작가가 중간에 바뀌고 윤 감독도 대통령취임식 총감독으로 불려가는 등 서편제는 1년 동안 입덧이 심했다.”

김성녀 1950년생. 여성국극 스타였던 고 박옥진의 딸로 다섯 살 때부터 천막극장 무대에 올랐고 1976년 극단 민예의 ‘한네의 승천’으로 데뷔했다. 1978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박귀희·김소희 명창 등에게 판소리를 사사했고, 81년부터 국립극단에서 활동하다 86년 남편 손진책 연출가와 함께 극단 미추를 창단해 30여 년간 연극계와 국악계를 종횡무진했다. 81년 허생전을 시작으로 김종엽·윤문식과 더불어 마당놀이를 이끌었다. 2000년 중앙대 국악대학 교수로 영입되어 음악극전공 학장, 대학원장을 역임했고 지난해 3월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에 취임했다.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해 백상예술대상 연기상(86년 ‘돈키호테’),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96년 ‘7인의 신부들’)을 수상했고, 2005년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으로 동아연극상, 올해의 예술상, 2007한국연극협회 자랑스러운 연극인상, 2010 제20회 이해랑 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결국 어떻게 차별화될까.
“어차피 소리꾼 얘기다. 우린 전체를 소리로 풀 수 있으니 대목마다 귀가 즐겁고, 소리꾼들이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니 말 한마디도 살아 있다. 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직접 소리로 표현한다는 건데, 마지막에 늙은 송화와 동호가 만나 소리하는 대목이 소리의 본질을 보여주는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다.”

-양방언 음악인만큼 기존 창극보다 음악요소가 강화될 것 같다.
“양 감독이 서편제 속편 격인 ‘천년학’ 영화 음악도 했었고, 우리 것과 현대적인 사운드를 잘 어우러지게 할 수 있다고 봤다. 양악기와 전통악기가 어우러진 그의 음악이 배경에 깔리면서 사계절 자연을 나타내는 무대와 소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

-100년 역사의 창극이 존재감이 없었던 이유는 뭘까.
“순수예술이나 전통은 소수의 사람들이 맥을 이어온 거다. 골동품처럼 모셔놓고 귀히 여기기만 하니 생명력이 없다. 판소리는 보존해야 하지만 창극은 대중을 폭넓게 흡수해야 한다. 판소리는 듣는 사람도 10년쯤 들어야 좋은 걸 알 정도로 대중화되기 힘든 소린데, 그 소리를 대중화시키는 역할을 창극이 해야 한다.”
김성녀 감독의 창극변신 코드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판소리 다섯 바탕은 외국 연출가를 기용해 세계를 겨냥한 작품으로 변신시키고 외국 고전들은 우리 연출가들이 만들어 주고받는 식이다. 둘째는 소리가 전승되지 않은 일곱 바탕의 복원 작업. 작년 ‘배비장전’에 이어 올해는 ‘숙영낭자전’이다. 셋째, ‘젊은 창작 창극’을 개발해 관객과 배우 모두 청소년층까지 끌어들여 저변을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5월엔 그리스 비극을 최초로 창극으로 푼 서재형 연출, 한아름 작가 콤비의 ‘메디아’, 6월엔 이자람의 판소리 브레히트를 탄생시킨 남인우 연출의 청소년 창극 ‘내 이름은 오동구’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레퍼토리 첫 작품 아힘 프라이어의 수궁가가 한국인 입장에선 썩 와닿지 않았다.
“우리 정서에 맞는 수궁가는 많이 해왔으니 세계인이 공감하게 만들어 보자는 거다. 우리 것은 우리만 알지 않나. 외국 명장들 손을 거치면 유럽 순회도 하고 글로벌시대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

-내년 1월 예정인 ‘흥보가’는 어떤 무대가 될까.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을 직접 만나고 왔다. 그런 사람이 손대면 창극에 대한 관심을 유발할 수 있다. 우리로선 박타령의 재해석이 관건이다. 옛날엔 박에서 돈과 쌀, 비단, 집이 나왔는데 현대인이 박 속에서 원하는 것이 뭘까 하는 거다. 결국 결과보다 과정이고, 창극이 이런 과정 겪지 않으면 안 되는 힘든 시점이다. 예술은 모험도 필요하다.”

-‘메디아’는 그리스 비극인데 소리와 잘 어울릴까? 우리 소리는 흥겨운 신명이 매력 아닌가.
“신명 못잖게 비장미도 있다. 오히려 ‘장화홍련’ 같은 스릴러가 힘들었다. 긴장감을 주다가 우리 가락만 들어가면 흥겨워지거나 슬퍼지니까. 결국 한태숙 연출이 가락을 없애고 말처럼 했다. ‘메디아’도 ‘장화홍련’을 보고 의욕을 보인 서재형 연출이 작창이 아닌 작곡을 하겠다고 하니, 또 전혀 새로운 창극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다양한 시도 중에 창극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있겠다.
“뮤지컬도 다양하다. 노래 위주, 연기 위주, 춤 위주 제각각이다. 창극도 마찬가지다. 꼭 소리만 강조해야 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연극성 있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너무 이쪽만 어떤 틀 안에 넣으려고 하는데, 공연예술은 시대와 같이 변하면서 새로운 걸 추구할 수밖에 없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끌어들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청소년창극 ‘내 이름은 오동구’는 아이들의 성정체성에 관한 얘기다. 소리를 매개로 현실에 깊숙이 관여하려는 시도다. 그동안 젊은 피가 수혈이 안 됐다. 10년 만에 신입단원 6명과 인턴 10명을 보완했다. 젊은이들이 해야 젊은 관객이 온다. 새로운 작품은 젊은 인재가 맡고, 고참이 되면 고전 작품으로 옮겨 가도록 이원화시켜 재주꾼을 많이 끌어오는 게 내 꿈이다.”
김 감독은 마당놀이에도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서른다섯 나이에 뒤늦게 학업을 시작한 것도 마당놀이를 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연극을 하려면 호흡·리듬·고저 등 말을 정확하게 해야 하고, 나는 그걸 판소리에서 배웠다”면서 “판소리는 한국말을 가장 맛있게 할 수 있는 요소를 다 갖고 있다. 판소리 다섯 바탕을 배운 건 그걸 연기에 접목시켜 연기자로서 메소드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교수가 된 것도 마당놀이 배우를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30년 동안 마당놀이를 지키다 창극으로 옮겨 온 셈인데, 각각의 매력은.
“흔히 하는 연극은 서양 연극이고, 우리가 한국 연극의 원형을 찾아보니 전통연희더라. 탈춤이나 판소리나 꼭두각시인형놀이 같은 가무극이 합쳐진 종합 연희의 원형에서 마당놀이를 만든 거다. 관객과 함께 정말 재미있게 놀면서 관객들에 의해서만 30년을 유지했다. 외국인이 보면 자기네 흉내내지 않은 진짜 한국적인 게 마당놀이다. 연극 배우가 하니까 음악적인 건 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도 오히려 한국적 음악 전통을 현대화시키는 교량역할을 해 왔다. 마당놀이 때문에 관객이 판소리에도 관심을 갖게 됐으니까. 반면 창극은 서양 연극의 틀에 소리를 입힌 것인데 하던 것만 되풀이하니 자생력이 없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공연예술인 만큼 정통 판소리에 접근하는 중간 단계의 음악극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언제까지 나라 후원 받아서 하는 행사 수준에 머물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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