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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선배’이자 경제·복지 모범생 따라 배우기

손학규 민주통합당 고문, 김두관 전 경남지사,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선택한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전경. [사진 베를린자유대 홈페이지]
“제가 성찰과 모색의 시간을 독일에서 갖고자 한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리는 데 배울 것이 많겠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복지제도와 교육, 노동 문제에서 끊임없는 논쟁이 있는 만큼 배울 것은 배우고 여기서 나타난 문제점은 우리 나름대로 소화하는 지혜를 터득해야 할 거다.”(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지난달 7일 독일에서 지인들에게 보낸 e-메일)

정치권에 부는 독일행 바람, 왜?

“독일엔 강소기업이 많고 통일 문제로도 보고 들을 게 많다. 지방분권도 잘돼 있고 정당 안착이 잘돼 민주 시민 교육이 활성화돼 있다. 정치인으로서의 1막을 독일에서 정리하고 새 화두를 잡으려 한다.”(김두관 전 경남지사, 11일 독일 출국 전 지난달 28일 중앙SUNDAY와 통화)

“경제민주화 이야기가 나오는데 독일에선 기업의 이윤을 사회적으로 재분배하는 과정에 불만이 적다. EU 대부분 국가들이 재정위기를 겪는데 독일이 가장 괜찮다는 건 시스템 자체가 다른 거다. 그 시스템을 보고 싶다.”(독일 연수를 계획 중인 권택기 새누리당 전 의원)

윤영관 통해 안철수·손학규·김두관 연합?
정치권에서 독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경제민주화, 성장과 복지, 통일을 오래 전에 해결한 나라라는 점에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여성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나라라는 점도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자주 거론된다.

여기에 여야를 넘어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정치인들이 독일을 찾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정·관계 인사들의 연수지라면 당연히 미국을 떠올리던 과거와는 다르다.

스타트는 손학규 고문이 끊었다. 그는 1월15일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으로 떠났다. 독일 사회민주당 싱크탱크인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후원으로 6개월간 연구 과정을 밟고 있다. 그의 독일행엔 “인구 구조나 산업 구조 등에서 독일이 한국의 모델에 더 적합하다”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조언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김두관 전 지사도 11일 6개월 일정으로 독일로 떠난다. 손 고문과 같은 재단 후원으로 같은 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한다. 김 전 지사는 “미국은 많이들 다녀오셨고 지금은 독일에서 더 배울 게 많다고 봤다. 특히 정당명부제나 진성당원 등 독일 정당들이 갖고 있는 장점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캠프에서 일했던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도 8일 독일의 같은 대학으로 떠났다. 6개월 일정이다. 윤 전 장관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안식년을 맞아 독일에서 통일 경험을 배우고 싶었다”며 “복지가 잘돼 있는 나라이고 세계 경제가 어려운데 유별나게 경제가 잘 가고 있는 국가여서 왜 저 나라는 경쟁력이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함께 잘 사는 게 가능할까 호기심이 일었다”고 말했다.

야권의 주요 인사들이 독일로 몰리면서 이곳에서 ‘베를린발 정계개편’이 논의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손 고문은 5층짜리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고 있는데, 손 고문의 바로 옆방이 김 전 지사의 숙소다. 김 전 지사는 5, 6월께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 본부를 손 고문과 함께 방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두 사람은 또 비슷한 시기 독일에서 열릴 전 세계 진보 정당 모임에도 함께 참가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 측이 두 사람에게 민주당을 대표해 참가하도록 위임했기 때문이다. 야권 소식통은 “안 전 원장 측은 그동안 손 고문 측과 꾸준히 접촉하면서 협력관계 구축에 공을 들여왔다”면서 “윤 전 장관을 통해 베를린에서 안 전 원장과 손 고문, 김 전 지사 간의 연합이 성사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일단 당사자들은 부인한다. 김 전 지사는 “대학 측에서 어떻게 알고 (숙소를 손 고문의 옆방으로) 배려해 주셨더라”며 “자연스럽게 만날 순 있겠지만 나는 9월에 치러질 독일 총선까지 보고 올 예정이고 손 고문은 그전부터 있었던 만큼 자주 보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장관도 “손 고문은 대학 선배인 데다 서강대 교수도 해 옛날부터 안면이 있었고 김 전 지사는 노무현 정부 때 같이 일해 잘 안다”면서도 “만나긴 하겠지만 별 일정은 없다. 안 전 원장도 잘 갔다 오라고 했을 뿐 다른 역할 없이 개인 자격으로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의 독일행은 미국에서 발전 모델을 찾던 관행을 벗어나 독일에서 한국의 향후 모델을 모색하려 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손 고문은 전후 독일을 부흥시킨 아데나워 총리의 통치학을 공부 중인 것으로 전해졌고 김 전 지사는 독일 경제와 외교를 집중 학습할 계획이다. 연수를 계획 중인 권택기 전 의원은 “우리 경제와 사회가 그동안 미국 시스템을 많이 가져왔는데 한계가 왔다고 봐야 하지 않나”라며 “새로운 흐름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이 미국보다는 유럽으로 눈을 돌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독일어까지 공부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감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퇴임한 김황식 전 총리도 다음 달쯤 독일에서 한국 사회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공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이 사회시스템이 제일 잘 짜여 있는 사회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그동안 여러 강연과 글에서 독일 사회의 윤리의식과 리더십을 언급해 왔다.

수출 중시 공통점…교육·리더십 비중 높아
독일이 정치권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독일 대사관은 바빠졌다. 김태영 공보담당관은 “독일의 강소기업, 히든 챔피언, 파독 광부를 다루는 등 언론과 기업계의 독일 관련 접근이 많아진 건 분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에버트 재단 한국사무소 관계자도 “안 그래도 손학규·김두관 같은 유명 정치인이 각각 지난해 말 일정한 간격으로 직접 접촉해와 이례적으로 같이 보내 드리게 됐다”며 “여당 의원도 연구 주제 등이 맞는지 검토해 보내 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베를린자유대에 한국학연구소가 있고 소장이 한국인(이은정)인 것도 정치인들이 좋게 보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해당 재단은 연수자들에게 한 달에 1500유로(약 220만원)와 기차 값, 3개 나라에 갈 수 있는 출장비를 제공한다. 독일은 집세가 한 달에 800유로(약 120만원) 정도고 생필품 물가도 한국보다 싸 자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고 한다.

독일 본 대학 박사 출신으로 저서『넥스트 코리아』에서 독일을 한국의 다음 국가모델로 제시해온 김택환 (경기대)교수는 “독일은 분단 국가인 한국의 발전에 관심이 많다”며 “미국 연수를 가려면 자비가 들어가는데 독일은 미래 한국의 리더십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통일이 되면 독일 인구 규모(8000만 명)와 똑같아지고, 수출 중심 국가인 데다 교육과 리더십의 비중이 큰 점도 비슷해 정치권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미 1960·70년대에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을 모델 삼아 ‘한강의 기적’을 실현한 전력이 있다. 나아가 독일은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에게 각종 복지 혜택을 주면서도 이들이 모럴 해저드에 빠지지 않고 일자리와 생산성 향상을 추진하도록 유도한다. 10년 동안 일자리를 늘린 중소기업 업주는 상속세를 면제해 준다든지, 기업이 노동자 해고가 자유로운 대신 국가는 실직자들의 복지와 재취업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는 식이다.

이외에도 언어 문제 때문에 연수지로 독일 대신 이웃 나라 영국을 택한 뒤 독일을 오가며 연구하는 이들도 있다. 새누리당의 차기 주자로 꼽히는 원희룡 전 의원은 지난해 6월부터 영국 케임브리지대 아시아중동연구소와 다윈칼리지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생활하면서 수시로 독일을 찾았다고 한다. 독일의 사회 양극화 해소 방안과 정당들의 활동을 집중 학습했다는 것이다.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1993년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6개월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머무르면서 세 번이나 독일에 갔다.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 로타어 데메지에르 전 동독 총리를 만나 남북 통일 모델을 찾으려 했다. 베를린자유대는 2000년 3월 고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 대화를 제안(일명 베를린 선언)한 곳이기도 하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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