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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자 낙인 지워질 시간 벌며 정계 복귀 포석

한국에서 유력 정치인이 정치적 실패 후 외국행을 택하는 건 낯익은 패턴이다. 언론을 피해 국민이 과거의 실패를 잊을 시간을 버는 동시에 정계 복귀를 꾀하기 위해서다.

해외로 나가는 정치인들의 숨은 전략

이런 방식의 성공 모델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DJ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취임식 다음 날(1993년 1월 26일) 영국으로 갔다.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였지만 자서전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를 기획했다. 햇볕정책의 초기 구상을 런던대에서 발표했다.

6개월 뒤 DJ가 귀국할 때 공항엔 지지자 수천 명이 나왔다. 비서를 지낸 장성민 전 의원은 “행진곡이 울려퍼져 대선에 패해 스스로 유배를 떠났던 정치인의 귀환이 아니라 개선장군이라도 들어온 분위기였다”고 기억한다. DJ는 아태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다 95년 정계복귀를 선언했다.

이는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모델을 검토한 것이었다. 드골은 54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시골에 칩거했다. 이후 정치가 어수선해지자 드골의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늘면서 정계에 복귀할 수 있었고, 11년간 대통령을 지냈다. 지미 카터는 재임 땐 무능하다는 비판을 듣다 재선에 실패했다. 하지만 퇴임 후 세계 평화를 다루는 카터센터를 만들며 ‘가장 성공한 퇴임 대통령’이란 말을 들었다.

DJ가 머무를 곳으로 영국을 택한 데도 정치적 포석이 있었다. DJ는 본래 고향의 하의도나 미국행을 검토했지만 언론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 “국민의 눈에서 사라져 DJ 향수를 불러일으키자는 계획을 수포로 돌리는 일”(장 전 의원)이었다.

이후 유사한 길을 걷는 이가 많았다. 1998년 당시 이명박 전 의원은 선거자금 과다 지출 의혹(선거법 위반) 때문에 정계를 떠나야 했다. 그는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1년간 칼을 갈았다. 어린 시절의 가난 체험을 자청해 좁은 아파트에서 가구 없이 빈 박스를 엎어 그 위에 전화기를 올려놓고 살았다. 2000년 미국 생활을 정리한 그는 귀국 후 2002년 서울시장, 2007년 대통령에 올랐다. 2002년 대선에서 두 번째 패배를 맛본 이회창 전 총리도 1년 남짓 미국 스탠퍼드대에 머무른 뒤 돌아왔다.

안철수 전 원장도 지난해 대선일(12월 19일) 미국으로 출국한 뒤 샌프란시스코에 머무르며 70여 일 동안 캠프 관계자들과 대선 패배 원인을 분석했다. 신당 창당과 아카데미 개설도 논의했다고 한다. 그가 4월 24일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면 대선 불출마 선언 후 6개월 만에 정치를 재개하는 셈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경선 패배 후 외국에 다녀오라는 조언을 받았지만 거부했다. 대신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미국 스탠퍼드대를 찾아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Pathway to the Disciplined Capitalism)’를 발표했다. 경제민주화의 초기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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