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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은 정치파트 힘 빼고 북한에 집중할 듯

좋게는 ‘원칙주의자’, 좀 깎아내리면 ‘딸깍발이’라는 평을 받는 남재준 국정원장 후보자는 국정원의 정치색을 줄이는 개혁을 할 것이란 기대를 받는다. 2003년 5월 남 후보자가 육군참모총장(가운데) 시절 충남 계룡대를 방문한 에릭 신세키 미 육군참모총장(오른쪽)과 함께 육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의 140개 국정과제와 후보 시절 선거공약집에 국정원 개혁은 없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가 국정원을 손볼 것이란 관측이 있다. 지난 10여 년간 국정원이 너무 약화됐고 ‘댓글 사건’ 같은 사례에서 보듯 지나치게 정치화돼 있다는 비판이 줄곧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세훈 현 원장은 이미 미국 스탠퍼드대로 연수를 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국정원 개혁의 유탄을 피하기 위한 ‘도피성 외유’일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남재준 국정원장 체제’가 확정되면 어떤 방향의 개혁이 진행될 것인가.

‘딸깍발이 군인’ 남재준의 국정원 개혁 구상 뭘까

남재준 국정원장 후보는 요즘 ‘열공 중’이다. 정보 관계자는 “남 후보자는 현재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가 상황을 파악한 뒤 개혁안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밑그림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이 당선인이었던 당시에도 ‘국정원을 북한 중심으로 개편한다’는 아이디어가 돌아다녔다. 국내 차장이 맡는 ‘말 많은 정치 파트’는 떼어버리고 북한에 집중한다는 것인데 미국의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 체제처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구상을 실현하려면 법을 새로 만들고 정치적 협상과 논쟁을 거쳐야 하는데 현재 외부로 포착되는 움직임은 없다. 전 인수위 관계자는 “정무분과위원회도 국정원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지만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남재준표 국정원 개혁의 방향과 계획에 대한 추정은 거의 불가능하다.

남 후보 '국정원 대북정보망 문제' 인식
그러나 북한 정보 분야의 개혁은 방향을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내부에선 신임 원장의 개혁이 대북정보망·대공수사·방첩활동 강화 등 3대 과제로 모아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며 “남 후보가 그동안 그런 발언을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북정보 강화와 관련, 남 후보는 ‘국정원의 북한 정보가 엉망’이란 평가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한 관계자는 “특히 장성 모임에서 이런 발언을 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한다.
남 후보자는 또 탈북자들과도 잦은 접촉을 하며 북한 정보 상황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남 후보가 국정원장 후보로 지명되기 이전 수차례 그를 만났던 한 탈북자는 “남 후보가 ‘탈북자들이 북한 정보를 많이 파악한다. 남한 요원을 쓰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며 북한을 좀 더 가까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활용을 잘하면 안보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 좋다’는 말을 하며 북한 정보 실태와 문제를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탈북자와 함께 대북 정보를 수집해온 한 단체의 대표는 “국정원은 문제가 많다”고 했다. 그는 ▶국정원 정보 담당자의 실력이 모자라 정보를 갖다줘도 놓치고 ▶실적에 급급해 탈북자를 지나치게 독촉해 부작용이 발생하며 ▶심지어는 북한 내 정보원이 드러나게까지 몰아치는 문제점들이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고 밝혔다. 워낙 오래됐고 누차 지적을 받지만 개선되지 않는 악성 질환 같은 문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국정원 캐처들의 무능으로 정보를 놓치는 경우=지난해 말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전에 이른바 탈북자 정보권에선 언론사 못지않게 언제 발사하는지 정보를 수집하는 경쟁이 벌어졌다. 대부분은 12일, 14일로 알려왔는데 탈북자 A씨는 13일 몇 시라는 정보를 알려줬다. 실제로 비슷한 시간에 발사됐다. 그런데 A씨가 정보를 보고했을 당시 국정원 담당자는 “다른 사람들은 12일, 14일이라는데 왜 당신은 13일이냐. 증거를 대라”고 따졌다는 소문이 탈북자 사회에 돌고 있다.
2009년 4월 북한을 방문했던 국정원 정보원 조선족 B씨는 ‘3일 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다’는 첩보를 듣고 서울로 전했다. 그러자 한국의 담당자는 “헛소리 같다. 언제 누구와 무슨 말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적어 팩스로 보내라”고 했다. B씨는 하지 않았다. 그는 “뭘 그런 것까지 일일이 적어서 팩스로 보내나. 말로 전하면 되지”라고 했다. 미사일은 3일 뒤 발사됐다. B씨는 한 달 뒤 또 북한의 2차 핵실험 정보를 얻어 국내로 전했지만 또 “증거를 달라”는 요구를 듣고 없던 것으로 해버렸다.

#국정원의 ‘짠손’=북한의 3차 핵실험 뒤 증거를 찾으려고 각국 정보망이 총력을 기울였다. 탈북자들에게 손을 벌렸고 C씨에겐 일본의 요청이 들어왔다. 그는 “핵실험장 주변의 흙을 가져오되 정확하면 5만 달러를 준다고 했다”며 “그런데 북에선 10만 달러를 부른다. 목숨이 달린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국정원은 ‘갖고 오든지 말든지’ 식이었다”고 말했다. 돈 문제가 관련되면 국정원은 한없이 작아지고 치사해지는 사례가 왕왕 들린다. 그는 “월별 활동비를 주지 않거나, 비용도 주지 않고 자료를 갖고간 뒤 돈을 안 주는 사례도 있다. 그래서 원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남 후보자는 이런 대북 정보망을 개선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보 관계자는 “직원들은 남 원장이 취임사에서 ‘김정일 사망도 몰랐고 미사일 발사 날짜도 모른 국정원’이라고 질타할 것이 분명하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탈북자들이나 조선족이 중요한 소스이긴 해도 그들은 과장되거나 부풀린 정보를 가져오기도 하며 탈북자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며 “따라서 이들을 휴민트의 핵심 정보 소스로 삼으면 안 되며 이란·쿠바처럼 북한과 가까운 나라로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혁 과정서 육사·공채 출신 갈등 가능성
대공수사·방첩 강화는 ‘국정원의 대공·방첩 기능이 너무 약해 종북세력이 판을 친다’는 진단 때문이다. 정보 관계자도 “국정원에 대공수사와 방첩 기능이 있지만 개점 휴업 상태인 측면이 있다. 간첩인지 모호한 상태에서 상명하복 조직에서 윗사람 눈치를 보다 보니 그렇게 된다”며 “그런데 남 원장이 ‘지금까지 뭐했느냐’고 질타하면서 원인을 찾고 실적을 요구하면 옛날 일이 들춰져 내부 숙청이 벌어지고 외부적으로는 간첩 찾기 광풍이 벌어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다른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로 미루어 급격한 개혁보다는 문제를 서서히 찾아 뿌리를 뽑는 방식을 주문할 수 있다”며 “섣부르게 종북세력 척결에 나서다 소동만 벌이고 오히려 종북세력을 숨게 만드는 우를 범하기보다 서서히 조이는 방식으로 완벽한 체질 개선을 하려 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우려되는 것은 내부의 파벌식 알력으로 개혁이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다. 지난 9일 남 후보자의 임명 직후 한 정보 관계자는 “국정원 내에 육사 출신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로부터 불만이 나오며 육사 출신과 정규과정의 갈등이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일부 언론에도 ‘육사 출신’에 대한 불만이 표출됐고 최근엔 정규과정들의 불만이 더 커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정원의 인력 구성은 공채를 의미하는 정규과정(1년 교육), 단기교육생(3개월 교육)이 주축이며 여기에 행시, 육사, ROTC·해사·공사 출신 등으로 다양하다.
육사 16기인 천용택 원장 시절 간부였던 한 국정원 관계자는 “당시 육사 출신들을 인사 때 급을 높여주거나 비서관·보좌관과 같이 내부 정보를 꿰뚫을 수 있는 자리로 이동시키고, 감찰실·감사관실 같은 소위 ‘꽃 보직’을 주거나 해외 파견관, 해외 연수 기회를 주는 식으로 혜택을 많이 줬다”고 말했다.
현재 육사 출신 국정원 고위 간부로는 육사 35기인 이종명 3차장이 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육사 출신 대장들이 안보 라인을 다 잡고 있어 창의적이어야 할 정보 공작이 경직되고 토론을 용납하지 않고 상명하복 분위기가 더욱 강해지면 국정원이 극우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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