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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 첫 유니폼 스폰서 광고 … 경기 침체에 깨진 113년 전통

2일 오후 4시(이하 현지시간)가 되자 스페인 바르셀로나 해변의 번화가 지역인 바르셀로네타가 순간 고요해졌다.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 열린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프리메라리가 경기를 보기 위해서다. 두 팀의 경기는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클럽 더비로 꼽힌다. 한산해진 거리와는 반대로 식당들은 홈팀을 응원하는 주민들로 가득 찼다. 팬들은 FC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응원가를 불렀다. 얼굴엔 한·일전을 보는 듯한 비장함이 감돌았다. 전반전 메시가 골을 넣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주변 건물엔 스페인 국기 대신 바르셀로나가 속한 카탈루냐 국기가 걸렸다.



시민구단 FC 바르셀로나의 변신

 오후 6시가 되자 주민들이 우르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날 FC 바르셀로나는 레알 마드리드에 1대2로 패했다. 지난달 26일 열린 스페인 국왕컵(코파 델 레이)에서 1대3으로 완패한 데 이어 2연패다. 팬들은 “정규 시즌 경기는 많다. 두 경기가 전부는 아니다. 언제나 이길 순 없다”며 애써 자위했지만 패배의 씁쓸함을 감추진 못했다.



라이벌 항공사 후원 경쟁



 두 팀의 경기는 ‘엘 클라시코(El classico·고전)’라고 불린다. 1936년 프랑코 장군의 쿠데타 이후 스페인 내전이 2년간 지속됐다. 이후 이어진 독재 속에서 카탈루냐의 저항정신이 발산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축구였다. 프랑코 장군은 레알 마드리드의 열성 팬이었다. 최근 카탈루냐 지역의 독립을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두 팀의 경기는 더욱 치열해졌다.



 축구 마케팅에서도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맞수 대결을 펼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스폰서 중 하나는 같은 중동지역 항공사로 카타르항공과 경쟁관계인 에미레이트항공이다. 라이벌 팀 간의 경기를 라이벌 항공사들이 각각 후원하는 모양새다.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 스폰서를 맡고 있는 스포츠 베팅업계 비윈은 한때 FC 바르셀로나에 스폰서십을 제의하기도 했다. 축구용품 스폰서도 FC 바르셀로나는 나이키, 레알 마드리드는 아디다스다.



또한 두 팀은 정반대 전술을 펴는 경우가 많았다. 레알 마드리드가 ‘갈락티코(은하수)’ 전략으로 전 세계 유명 스타들을 한데 모을 때 이에 대항했던 FC 바르셀로나의 주축 선수들은 유소년 육성 시스템으로 성장한 선수들이었다. 주민들에게 FC 바르셀로나가 클럽 이상의 의미를 가진 존재로 자리매김한 이유다.



 하지만 최근 FC 바르셀로나가 흔들리고 있다. 팀은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에 2연패를 당했다. 지난달 20일 열린 유럽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AC밀란에 0대2로 지는 등 결정적인 순간에 3연패를 했다. 지난달 전 세계 클럽 랭킹도 1위에서 5위로 떨어졌다. 리오넬 메시는 “최근의 패배로 상처를 받았다”며 “팀 동료들과 최근의 부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스페인의 경기 침체로 인한 구단 수입 감소도 골칫거리다. 이 같은 도전을 극복하는 방식은 지극히 ‘FC 바르셀로나식’이다. "기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4일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캄프누(Camp Nou). 산드로 로셀 FC 바르셀로나 회장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이날 로셀 회장은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중요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나는 113년의 전통을 깨고 카타르 항공과 맺는 첫 상업 유니폼 스폰서십 발표였다. 또 다른 하나는 최근의 연패와 관련한 회견이었다. 도전받고 있는 FC 바르셀로나의 정체성, 그리고 축구 철학에 대한 답이었다.



 스페인 언론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기자 100여 명이 참석해 그의 말에 집중했다. 어릴 적 FC 바르셀로나의 볼보이를 하기도 했던 로셀은 2003년 부회장에 취임했다. 이 시절 1990년대 FC 바르셀로나 전성기 때의 명감독이었던 요한 크루이프의 기술 자문을 받아 FC 바르셀로나 특유의 전술을 부활시켰다. 호나우지뉴 영입도 그의 작품이었다. 2010년 그는 회장 투표에서 61%라는 역대 최대 지지율로 당선됐다.



 하지만 이날 그는 신중한 모습이었다. 그는 “카타르항공과 3년간 유니폼 후원 계약을 맺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음 시즌부터 FC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카타르항공이란 글자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된다. 카타르항공으로부터 시즌당 4500만 달러를 받는다.



 유니폼 스폰서십은 FC 바르셀로나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1899년 창단한 FC 바르셀로나는 그동안 유니폼에 상업 광고를 부착하지 않았다. 나이키 등 용품 광고를 받아들인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시민구단으로서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구단 운영비는 18만 조합원의 등록비와 방송 중계권, 티켓 판매 수입 등으로 충당된다. 팬들은 ‘시민의 클럽’을 내세우며 축구 상업화를 경계해 온 구단에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 유니폼 광고를 유치하려던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다. 구단의 주요한 결정은 ‘소시오’라고 불리는 시민주주들의 투표를 통해 이뤄진다. 전 세계 누구나 150유로를 내면 소시오 조합원이 될 수 있다. FC바르셀로나 구단 박물관 2층 입구에는 ‘바르샤의 주인은 조합원’이란 글귀가 쓰여 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FC 바르셀로나 구단을 사들이는 게 불가능한 까닭이다.



 2006년 유니세프 유니폼 광고는 상업 목적이 아니라 후원을 위해서였다. 구단 수입의 0.7%를 유니세프에 지원했다. 2010년부터 유니폼에 새겨진 카타르 재단도 교육과 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자선단체라는 점에서 민간 기업인 카타르항공과는 다르다. 본격적인 민간기업 유니폼 광고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민간 기업 스폰서에 대한 찬반 논란은 여전히 거세다. 영국 출신으로 FC 바르셀로나의 광팬이 됐다는 폴 로프투스(40)는 “유니세프를 후원하는 게 맘에 들어 좋아하게 됐는데 상업화되는 건 가슴 아프다”며 "클럽 이상의 클럽이란 말이 무색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축구가 좋아 FC 바로셀로나 박물관에서 일하는 세르게이(30)는 “축구가 머니게임이 됐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좋게만 생각할 순 없겠지만 팀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립적인 스폰서를 구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바르셀로나의 선수당 평균 연봉은 791만 달러(약 85억원)다.



 로셀 회장도 현실적인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클럽 전통이란 측면에서 볼 때 오늘은 슬픈 날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그렇지 않다. 행복한 날 아니냐”고 반문했다. “우리는 엄청난 경쟁을 하고 있다. 최고의 위치에 있으려면 자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해결책은 한정적이다. TV 중계료는 앞으로 줄어들 것이다. 스페인 경제 때문이다. 다른 방법은 우리가 선수를 바꾸거나 시설을 파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원치 않는다. 유일한 방법은 마케팅이다. 시민주주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했고, 90%가 찬성했다. 나머지 10%는 계속 설득할 것이다.”



‘클럽 이상의 클럽’ 자부심



 FC 바르셀로나의 경기는 유독 패스가 많다. 드리블보다는 빠른 패스를 통해 점유율을 올리고, 극단적으로 수비진을 올려 압박을 가한다. 최전방 공격수를 2선에 배치해 다양한 공격 옵션을 시도하는 ‘제로톱’ 방식도 FC 바르셀로나의 전매특허다. 이를 통해 FC 바르셀로나는 최근 몇 년간 무적으로 군림했다. 선수는 바뀌어도 전술은 큰 틀에서 계속 유지된다. 이런 전술은 ‘라 마시아(La Masia·농장)’라는 유소년 육성 시스템으로 완성된다. 유소년 리그부터 같은 철학의 전술을 연습하는 것이다. 메시와 사비 에르난데스·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등 주축 선수들 모두 유소년 리그 출신이다. 백승호·이승우 등 우리나라 선수들도 바르셀로나 유소년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충격적인 3연패 이후 FC 바르셀로나 특유의 ‘티키타카(탁구공이 왔다갔다하는 모습)’ 축구가 이젠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이에 대한 로셀 회장의 답은 명쾌했다. “최근 연패에 대해 선수들을 탓할 수 없다. 우린 우리만의 스타일을 고수해 나갈 것이다. 역습 축구는 하지 않겠다.” 현지 언론에선 “바르셀로나다운 대답”이란 평가가 나왔다.



 FC 바르셀로나의 모토는 ‘클럽 이상의 클럽(Mes Que un Club)’이다. 소시오로 활동하는 프란시스 토렌스(32)는 “바르셀로나에서는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아도 FC 바르셀로나에 대해 한두 시간은 떠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경기가 없는 날에도 홈구장 캄프누를 찾는 관광객이 연간 140만 명에 달한다. 이운재 선수도 지난달 FC 바르셀로나를 찾았다. 축구 지도자 수업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는 특히 유소년 양성 시스템과 골키퍼 육성에 관심을 보였다. 지난해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캄프누에서 로셀 회장을 만나기도 했다. 시민구단 특유의 운영 방식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토렌스는 “팬들은 FC 바르셀로나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경기에 뛰는 선수들은 조만간 바뀌겠지만 FC 바르셀로나만의 스타일은 그대로 지켜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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