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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간 에티오피아 교장 "한국인 놀란점은…"





[현장 속으로] 아프리카를 바꾸는 ‘치타 세대’

















이 청년은 후투족일까, 투치족일까. 중키에 입술이 두툼한 걸 보면 후투족일 것이다. 인중이 길고 몸매가 호리호리하니 투치족일 수도 있겠다. 늦봄 같은 햇볕이 내리쬐는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기자의 머릿속을 맴돈 궁금증이다. 1994년 광란의 80일간 다수 후투족은 소수 투치족 80만 명(일부는 온건파 후투족)을 학살했다. 외국인 눈엔 알아보기도 힘든 종족 차이인데도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이 희생됐다. 르완다에서 종족 문제를 입에 올리는 게 지금까지 터부시되고 있는 이유다.



 이 청년, 28세 잠마리는 제노사이드(대학살) 유족이다. 9살 때 아버지가 어디론가 끌려가 돌아오지 않았다. 잠마리는 누나 둘, 남동생 둘과 어머니를 책임지는 가장이다. 겉보기엔 19년 전 상처가 아문 것만 같다. 그래도 “종종 이웃들이 몽둥이를 들고 들이닥치는 악몽을 꾼다”고 했다. 키갈리 시내 메모리얼 센터에는 당시의 학살극이 어떻게 촉발돼 진행됐는지 숱한 사진들과 함께 기록돼 있다. 어린이 희생자를 기리는 별실엔 네댓 살짜리부터 생후 몇 개월 영아들까지 사진이 빼곡하다. 옆에는 구체적 사인(死因)이 적혀 있다. ‘벽에 던져서 죽임’ ‘머리를 창으로 관통당함’….



 잠마리를 만난 곳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키갈리에 설립한 키추키로 종합기술훈련원. 2008년 문을 연 3년제 직업학교다. 산학 연계프로그램을 통해 자동차 정비, 건설, 설비 등을 가르친다. 2011년 첫 졸업생을 200여 명 배출했다. 동부 아프리카의 금융·정보기술(IT) 허브를 꿈꾸는 르완다에선 고급 기술인력이 부족하다. 키추키로 종합기술훈련원은 이런 산업 요구에 맞춤형 인력을 길러낸다. 잠마리는 제노사이드 유족 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학비를 지원받고 있다. 그는 “이젠 내가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도와준 사회에 보답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젊은 세대에게 기회 많다”



 내전·빈곤·질병의 대륙. 아프리카에 대한 통념이다. 하지만 최근엔 희망을 꿈꾸는 이들이 늘었다. 르완다만 해도 지난 5년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평균 8%에 이른다. 키갈리 시내 니아루겐지 상업지구에는 20층짜리 키갈리 시티 타워를 중심으로 고층 건물들이 속속 세워지고 있다. 밤이 되면 타워에서 내려다보이는 시내에 점점이 불빛이 빛난다.



 최근 인기 웹툰 ‘미생’은 무역상사에서 일하는 주인공 장그래가 “세계에서 화장품 시장이 가장 빨리 성장하는 지역이 아프리카”라고 말하는 장면(107회)을 담았다. 실제로 아프리카에선 전체 소득이 증가하면서 내수 소비시장이 급신장하고 있다. 지난해 아프리카 모바일폰 시장 성장률은 18%로 세계 평균(11%)을 훌쩍 넘었다. 2000년 이후 아프리카의 연평균 GDP 증가율은 4.8%다. 아시아와 중동에 이어 셋째로 빠른 성장세다.



 특히 주목할 것은 아프리카의 인구 구조다. 아프리카 경제 전망(AEO)에 따르면 현재 아프리카엔 15∼24세 젊은이가 2억 명에 달한다. 에이즈·말라리아·기아 등 악재가 점차 극복되면서 평균수명도 빠르게 늘고 있다. 현재 인구증가율(연 3.5%)이 유지된다면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2035년 9억3000만 명으로 중국(9억1000만 명)을 넘어설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유엔 인구예측 2010년).



 “아프리카의 젊은이들은 치타와 같습니다. 치타처럼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며 탐색합니다.” 가나 경제학자 조지 아이테이는 2009년 TED 콘퍼런스에서 현재의 아프리카 청년층을 ‘치타 세대’라고 소개했다. 아이테이에 따르면 이들은 식민지 우물 안에 갇혀 산 부모 ‘하마 세대’와 다르다. 아프리카의 빈곤을 제국주의·서구 침탈 탓으로 돌리며 “더 많은 원조를 달라”고 불평하지 않는다.



 치타 세대는 IT 습득이 빠르고 경제개발에 대한 의지도 강하다. 무엇보다 부모들처럼 아프리카의 빈곤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에겐 아프리카의 미개발이 더 나은 미래의 가능성이 된다.



 나이지리아 KOICA 사무소의 행정직원 나피자(29·여)도 그런 가능성을 믿는 젊은이다. 그는 미국 메릴랜드의 보위주립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유학파다. 예전엔 이렇게 나간 인재들이 외국에서 취업하고 번 돈을 송금하는 식이었지만 요즘은 귀국하는 ‘연어족’이 부쩍 늘었다. 유럽 재정위기 등 서구 경제 악화도 원인이다. 나피자도 미국에 남지 않은 이유를 묻자 “아직 개발 중인 고국에 할 일이 많고, 젊은 세대에게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세네갈 다카르의 서쪽 해안도로변에 들어선 대형 쇼핑몰 시플라자(Sea Plaza) 입구.
 함께 근무하는 토신 오세와(23·여)는 영국 런던에서 환경공학을 공부했다. 그는 “외국 교육을 받은 이들에겐 꿈과 비전이 있고, 조국에는 기회가 있다. 내 손으로 직접 내 나라를 다른 선진국처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아직 정치권 부패와 관료주의 때문에 좌절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서 젊은이들 사이에선 정치 참여를 통해 사회를 바꾸자는 의식도 확산되고 있다”고도 했다. 실제로 에누구·에도·에키티주 등 주요 지역에서는 외국 유학 등을 통해 선진 문물을 직접 경험한 젊은 주지사들이 당선돼 정치 개혁을 이끌고 있다. 먹고사는 게 상대적으로 나은 북아프리카 에선 분노한 젊은 층이 이미 ‘아랍의 봄’을 이끌어냈다.



“한국 발전 보면 해볼만 하다”



나이지리아 라고스주 레키시 모습. 레키~에페 고속도로 초입으로 부촌이 밀집해 있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남동쪽으로 160여㎞ 떨어진 오로미아주 아르시 지역의 이타야. 이곳은 노예집단으로 분류되던 오로모족이 모여 살던 곳이다. 1인당 GDP가 1100달러(약 120만원, 2011년)에 불과한 에티오피아 안에서도 몇 년 전까지 ‘최빈곤지역’으로 분류됐다. 가스나 전기는 꿈도 못 꿀 정도였다. 요즘은 다르다.



 “저기 태양광 발전판이 보이죠? 원래는 변변찮은 도로도 없던 곳이었어요. 애들이 학교를 가려 해도 몇 시간씩 걸어가야 하니 그냥 포기하고 말았죠.”



 이타야에 2011년 문을 연 기술직업훈련원 교장 타파 하이루(44)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마을이 바뀌기 시작한 게 2008년 KOICA가 아르시 지역 농촌종합개발사업을 시작하면서란다. 학교가 들어서고, 태양광 배터리를 충전해 전력을 쓸 수 있게 되면서 마을에 활기가 생겼다. 당시 하이루는 재정경제개발부 코디네이터로 일하던 중이었다. 에티오피아의 향후 먹거리가 제조·건설·IT라는 생각에 기술교육기관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2011년 문 연 기술직업훈련원의 초대 교장을 자임했다.



 학교 건물과 전력 시설 등 하드웨어 부문은 한국 등 외국 원조를 받았다. 첫해 175명이던 등록생은 2년 만에 240명으로 늘었다. 하이루는 “언제까지 외부 도움을 받을 수 있겠느냐”며 궁극적으로 졸업생들이 취업하고 그들이 일으킨 사업 덕에 마을 전체가 골고루 잘사는 날을 꿈꾼다. 그게 언제쯤 가능하겠느냐고 묻자 그는 “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변화”라고 강조했다.



 “제가 재정부에서 일하던 2009년에 한국 구미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에티오피아에 새마을운동을 접목하는 프로젝트 때문이었죠. 그런데 제가 한국에서 가장 놀란 게 뭔지 아세요? 번듯한 도로나 건물이 아니었어요. 여전히 한국인들이 어떻게 하면 앞으로 더 잘살까 고민한다는 점이었어요.”



 그는 “한국의 발전을 보면 에티오피아도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이 국제원조 무대에서 주목받는 이유도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유례 없는 경험 때문이다. 원조 자체는 많이 하지도 못한다. 한국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은 올해 처음으로 2조원을 넘어섰다(2조411억원). 많은 것 같지만 국민총소득(GNI) 대비 0.16%에 불과하다.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의 평균 0.31%에 한참 못 미친다.



시플라자에 입점한 삼성전자 매장에서 세네갈 여성이 최신형 스마트폰을 둘러보고 있다.
 대신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대목이 있다. 흔히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기’로 요약되는 개발경험 전수다. 농업을 기반으로 한 먹거리 해결부터 제조업 육성 전략까지 포괄한다. KOICA도 2011년부터 DEEP라는 이름으로 개발경험 공유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공무원·지식인·기업인들을 초청하는 KOICA 연수에는 지난해에만 아프리카 41개국에서 1565명이 참가했다. 누적 숫자는 1만2692명에 이른다. 이런 ‘코리아 장학생’들은 이제 사회 곳곳에서 자신감과 희망을 뿌리내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원조는 개발경험 그 자체, 할 수 있다는 자세입니다. 원조 받았던 역사에다 압축성장의 경험이 있으니 아프리카 빈국엔 해볼 만한 모델로 여겨지는 거죠.” KOICA 박대원 이사장의 설명이다.



 정말 ‘해볼 만한 모델’인지는 알 수 없다. ‘할 수 있다는 자세’가 어디까지 통할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한국의 발전을 엿보는 경험이 ‘치타 세대’에게 자극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르완다 취재 기간 한국 KOICA 연수 동창생들의 연례 세미나가 열렸다. 자리에 모인 20여 명 젊은이 모두가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년간 한국에서 교육 및 기술 연수를 받고 왔다. 2시간 남짓한 세미나 동안 한국이 얼마나 인상적인 곳이었는지, 삼성이나 LG가 얼마나 능동적으로 기술변혁에 대처하는지 서로 토론했다. “한국은 아직 분단국가다. 하지만 우리는 이전의 갈등(제노사이드)을 극복하고 하나가 되지 않았느냐”라고 말할 땐 자부심마저 드러났다. 마지막 발표를 맡은 연수생은 결연한 표정으로 “가난하고 싶다면 그대로 있어라. 하지만 잘살고 싶다면 변화하라”고 강조했다. 그가 아프리카의 속담을 인용하며 말을 맺었다. “빨리 가고 싶을 땐 혼자 가라. 멀리 가고 싶을 땐 함께 가라.”



특별취재팀



취재=박소영(모로코·튀니지)·강혜란(르완다)· 유지혜(나이지리아·세네갈)·이현택(케냐·DR콩고)· 민경원(우간다·에티오피아) 기자

사진=박종근·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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